지난해 라임자산운용 대신증권 피해자들이  피해자보호분쟁 조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지난해 라임자산운용 대신증권 피해자들이 피해자보호분쟁 조정 촉구 집회를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1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 시스템은 신체의 혈관과 같습니다. 때문에 금융 시장 붕괴는 경제 전체의 붕괴로 이어집니다. 세계의 어느 국가든 금융 위기가 발생하면 전력을 다해 회복시키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금융 시스템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은행은 주식회사 형태입니다. 하지만 영업권은 정부가 특별 관리하고 감독하며 금융기관으로 불립니다.

금융기관 경영 실패는 일반적인 기업의 경영 실패와는 다릅니다. 국민 경제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금융기관 경영은 위험관리가 핵심'이라는 이유입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은 1998년 IMF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위험관리에 대한 개념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위험 관리에 소홀했던 겁니다.

물론 지금은 위험관리 전담 조직을 두고 회사 자산에 대해서 정교하게 위험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부실 대출의 부당 취급 사실이 밝혀지면 취급 직원에 징계도 내려지고 금전 배상 책임도 부과합니다. 하지만 고객이 믿고 맡기는 '자산'에 대해서는 위험관리에 대한 개념조차 없습니다.

고객 자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을지라도 직원들은 오히려 실적 우수직원으로 우대받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로 불리는 사모펀드 문제가 대표적입니다. 고객들은 자산에 막대한 손실을 입었지만, 판매한 직원은 성과를 칭찬받았다고 합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고객들이 분통을 터뜨린 건 당연합니다.

은행의 사모펀드 피해자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은행이 변했다는 겁니다. 예전의 은행은 '1원 틀리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한해 한해 장사에 목숨 거는 곳으로 변했습니다. 사모펀드에 가입할 때 고객들은 '절대 손실이 발생할 우려가 없는 안전한 고금리 상품'을 특별히 소개해 준 친절한 프라이빗 뱅커(PB)에게 고마워했을 겁니다. 은행예금 신청서에 서명하 듯 그렇게 가입 신청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국내 주요 은행 그룹들은 매출과 이익이 꾸준히 성장해 왔습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예년보다 많은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도 양호한 실적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경영 정보의 총합체라 할 수 있는 주가는 여전히 10여년 전 가격을 훨씬 밑돌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잠재가치를 보여주는 주가순자산비율(PBR)은 지속적으로 하락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권입니다. 국내 다른 업종과 비교해도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1995년 3월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서는 고(故)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수많은 임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애니콜 화형식'을 진행했습니다. 무리한 양적 성장만을 추구한 결과 휴대폰 불량률이 치솟았기 때문입니다. "품질은 나의 인격이요, 자존심!"이라는 외침과 함께 진행한 애니콜 화형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늘의 삼성을 있게 한 새로운 출발점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 사모펀드 사태로 인해 금융회사 영업 현장 직원인 PB들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금융기관을 믿고 거래해 온 수많은 고객들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만일 최고 경영자가 이건희 회장 같은 사람이라면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계속)

<한경닷컴 The Moneyist> 이연정 CFA한국협회 위원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