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칼럼] 누가 비트코인에 돌을 던지랴
요즘 정치, 스포츠, 기업 성과급 이야기보다 사람들 사이를 더 갈라놓는 논쟁거리가 등장했다. 디지털 암호화폐인 비트코인이다. 전 세계적 투자 열풍이 불고 가격이 연일 치솟으면서 ‘그럴 만한 자산이냐’를 놓고 논란이 뜨겁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다.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5만달러를 넘본다. 지난 11일 가격(4만8227달러) 기준으로 1년 새 358%나 올랐다. 지금까지 채굴된 1860만 개 비트코인의 시가총액(8770억달러)이 미국 최대 은행인 JP모간의 두 배, 골드만삭스에 비해선 여덟 배에 이른다.

지난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가 대규모 비트코인 매입과 함께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폭등세에 불을 붙인 데 이어, 장단을 맞추는 기업이 늘고 있다. 신용카드회사인 마스터카드가 비트코인을 결제시스템에 추가했고, 세계 최대 사모펀드인 블랙록은 비트코인을 투자적격 자산에 포함시켰다. 트위터는 직원들 급여를 비트코인으로도 지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시정부는 급여 지급과 세금 징수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고, 캐나다 증권당국은 비트코인 ETF(상장지수펀드)를 승인했다.

비트코인의 위상이 솟구치자 전문가들이 그 요인을 짚어내기에 바빠졌다. 공통적인 진단은 비트코인이 특정 국가의 정부나 중앙은행에 휘둘리지 않는 ‘독립적이고 분권화된 글로벌 공동통화’여서 인위적인 절하나 권위주의적인 통제를 당할 위험이 없다는 것이다. 발행총량이 2100만 개를 넘지 못하게끔 상한(上限)이 설정돼 있다는 것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는 달러나 유로화보다 더 안전한 자산’이라는 주장의 근거로 제시된다. 코로나 사태 이후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경기부양을 위한 돈을 앞다퉈 찍어내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을 더욱 비트코인 시장으로 내몰고 있다. 기축통화의 가치 하락 우려가 높아져서다.

미국 정부가 홀로 세계를 이끌던 ‘팍스 아메리카나’ 기세가 꺾이고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세계 산업과 경제의 혁신 심장부로 떠오른 것도 비트코인 돌풍의 요인으로 지적된다. “다극화 세계에서는 정부 규제를 받지 않고 정치적 압력에 덜 노출돼 있는 디지털 통화가 보다 적합하다”는 게 글로벌 시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빅테크 기업들의 인식이다. “빅테크 컨센서스가 워싱턴 컨센서스나 베이징 컨센서스보다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온다.

반론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 세계에서의 기호일 뿐 아무런 실체가 없는 비트코인은 17세기 네덜란드를 투기 광풍으로 몰아넣었던 튤립과 다를 게 없다는 지적이다. ‘월가의 닥터 둠(대표적인 비관론자)’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의 비판은 특히 신랄하다. “아무 가치도 없고 계량도 할 수 없는 디지털 기호를 통화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 비트코인의 근본 가치는 영(零)이며, 탄소세를 제대로 부과하면 마이너스다.”(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 비트코인을 온라인으로 채굴하는 데 엄청난 전력이 들어간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2017~2018년에도 비트코인 가격이 1000달러에서 2만달러로 20배나 치솟았다가 3000달러로 고꾸라졌듯이, 글로벌 초(超)저금리의 거품이 걷히면 순식간에 무너질 ‘금융 피라미드’를 쌓아올리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렇게 찬반양론이 엇갈리고 있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게 있다. 주요국 정부와 중앙은행, 법화(法貨)의 타락이 비트코인을 비롯한 유사통화에 대한 쏠림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저금리와 양적완화(대규모 통화 살포)가 금융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을 무력화하면서 온갖 시장 왜곡을 일으켰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 진단이다. 그런데도 상황이 바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가 긴급 경기부양 명목으로 1조9000억달러를 더 찍어내기로 한 게 단적인 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 등 같은 진영 내 전문가들조차 “필요성이 제대로 검증되지 않았고, 더 이상의 거품은 감당할 수 없다”고 경고했지만 정치논리에 밀려버렸다. “비트코인 열풍은 제동장치가 고장 난 달러화 거품의 거울이자 달러의 쇠락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경보”라는 진단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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