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J에서 다루려면 한일 합의 필요한데 양쪽 모두 부담 커
강제징용·위안부 입장차 확연해 '중립지대' ICJ가 해법으로 부각될 수도
'위안부문제 ICJ제소 검토' 먼저 치고 나간 한국…실현 가능성은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배경이 주목된다.

그간 일부 전문가나 일본 정치권 등에서 ICJ 제소를 언급한 적이 있지만, 정부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검토 방침을 밝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정례 브리핑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ICJ 제소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위안부 할머니 등의 입장을 조금 더 청취해보고자 하며 ICJ 제소 문제는 신중하게 검토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국제법으로 일본의 죄를 밝혀달라"며 "일본이 잘못을 깨닫고 반성하도록 ICJ 판단을 받아달라"고 호소한 데 따른 정부의 답변인 셈이다.

'추가 청취'와 '신중히'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외교부 대변인이 공식 브리핑에서 'ICJ 제소 검토'를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외교부는 그동안 일본 정치권 등에서 'ICJ 제소' 얘기를 꺼내는 데 대한 입장을 물어도 "진정성 있는 일본의 사죄가 먼저"라는 식으로 답하고 넘어갔는데, 분위기가 달라진 것이다.

이는 우선 직접 당사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ICJ 제소를 언급한 만큼 이를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반하는 위안부 문제는 한국이 국제여론에서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에 ICJ 제소에 있어서도 굳이 방어적인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깔려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도 일본 자민당이 요구하는 ICJ 제소에 대해선 언급을 삼가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ICJ에서 위안부 문제가 다뤄져 재판 과정이 공개되면 일본을 향한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이 이날 이용수 할머니의 ICJ 회부 발언에 대해 "어떤 의도로, 어떤 생각으로 발언한 것인지 저는 알지 못하기 때문에 논평을 삼가겠다"고 답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ICJ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루려면 한일 정부가 먼저 합의해야 한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ICJ의 강제 관할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는 일본이 ICJ에 제소하더라도 한국이 응하지 않으면 재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의미지만, 한국이 제소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돼 재판을 위해선 상대방의 동의가 필수다.

현재로선 일본 정부는 차치하더라도 한국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ICJ 제소는 결코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카드라는 분석이 많다.

그러나 위안부 판결과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대한 한일 간 입장차가 뚜렷한 상황에서 '중립지대'인 ICJ에서 결판을 보는 게 마지막 해법으로 부각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일본은 강제징용 배상판결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이 문제까지 같이 ICJ에서 다루려 할 수 있다.

상황에 따라선 ICJ에서 1965년 체결된 한일청구권협정과 일본의 과거 식민지배와 관련한 판단까지 내릴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는 "ICJ 제소는 이론적, 평화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한일관계가 악화한 지금은 적절한 타이밍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라며 "또 다른 한일 간 분쟁 확산 요인이 되는 건 아닌지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