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회장 "양지가 그늘, 그늘이 양지…긴 세월이 다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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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 펴낸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 직접 써
아프고 어두웠던 가족사도 꺼내
'자연인 박용만' 솔직하게 보여줘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 직접 써
아프고 어두웠던 가족사도 꺼내
'자연인 박용만' 솔직하게 보여줘
“살다 보면 양지 아래 그늘이 있었고, 그늘 안에도 양지가 있었다. 양지가 그늘이고 그늘이 양지임을 받아들이기까지 짧지 않은 세월이 걸렸지만, 그게 다 공부였지 싶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66·사진)이 첫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마음산책)를 17일 출간했다. 박 회장은 소비재 중심의 두산을 인프라 지원사업 중심의 중공업그룹으로 변모시킨 경영인인 동시에 사진작가, 아마추어 요리사, 미식가, 주말 봉사자 등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 한때 언론인을 꿈꿨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해 SNS로 다양한 사람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파워 유저’다. 책에는 기업인으로 성장해온 개인사와 경영 일선에서 흘린 땀과 눈물, 다양한 활동 속에서 길어올린 ‘자연인’ 박용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박 회장은 책 전반부에서 아프고 어두웠던 가족사를 꺼냈다. 18세 때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뒤였다. 이복 큰형(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동생이다.” 적자가 아니었던 그는 모호한 가족 내 위치 때문에 젊은 시절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 했다. 능력만이 살길이라 믿고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직후인 1978년 두산이 아니라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런 그늘이 있었기에 현재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의존할 곳 없고 정해진 삶의 길이 없었던 게 오히려 독립심과 적극성을 갖게 했고, (가족 내) 기득권이 없으니 스스로 균형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고 지난 삶을 긍정한다.
이런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박 회장은 말단 사원들과도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일상을 공유한다. 대중과도 SNS로 소통한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최선을 다하되 긍정을 잃지 않는 여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다운 그의 면모는 69개의 길고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 회장은 가장 행복했던 때를 회장 취임식이 아니라 ‘아내와 김치밥을 해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어제저녁’이라고 고백한다. 세 번의 허리 수술과 대장농양 수술을 이겨내며 얻은 좋은 기억들, 빨간 짬뽕 국물을 옷에 묻혀가며 먹고, 지갑을 놓고 와 장충동 냉면집에서 대기업 총수로는 최초로 외상값 5만2000원을 달아놔야 했던 웃지 못할 사연은 읽는 동안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그는 “내 삶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그것이 불편하면 내가 삶을 바꾸면 될 일이지, 바꾸지 않으면서 감추거나 포장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기업인으로서의 고뇌도 진솔하게 풀어놨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의 극한 파고를 넘기고 여러 획기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가는 동안 악역을 자처했다. 그는 “구조조정, 위기 극복, 변화와 혁신은 모두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싫어도 먼저 나서서 감내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회사 젊은 사원들에게 닥쳤던 가슴 아픈 기억들을 소환해 공감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회장님 식사하셨어요?’라는 메일로 시작해 2년간 메일로 짧은 인사와 안부를 주고받던 한 기간제 여직원의 퇴직을 막아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대표적이다. “그의 재계약에 개입하면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내 재량으로 예외를 만드는 일이었다. 선아라는 예쁜 이름의 그 친구가 이 책을 읽게 되면 ‘내가 소심해서 그랬다’는 고백만이라도 전했으면 좋겠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 회장이 직접 썼고, 편집자가 거의 손대지 않았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두산인프라코어 회장·66·사진)이 첫 산문집 《그늘까지도 인생이니까》(마음산책)를 17일 출간했다. 박 회장은 소비재 중심의 두산을 인프라 지원사업 중심의 중공업그룹으로 변모시킨 경영인인 동시에 사진작가, 아마추어 요리사, 미식가, 주말 봉사자 등 다양한 면모를 갖고 있다. 한때 언론인을 꿈꿨을 만큼 글쓰기를 좋아해 SNS로 다양한 사람과 격의 없이 소통하는 ‘파워 유저’다. 책에는 기업인으로 성장해온 개인사와 경영 일선에서 흘린 땀과 눈물, 다양한 활동 속에서 길어올린 ‘자연인’ 박용만의 진솔한 이야기를 담았다.
박 회장은 책 전반부에서 아프고 어두웠던 가족사를 꺼냈다. 18세 때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이 끝난 뒤였다. 이복 큰형(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말했다. “이제부터 너는 내 동생이다.” 적자가 아니었던 그는 모호한 가족 내 위치 때문에 젊은 시절 눈칫밥을 먹으며 살아야 했다. 능력만이 살길이라 믿고 서울대 경영대를 졸업한 직후인 1978년 두산이 아니라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그런 그늘이 있었기에 현재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는 “의존할 곳 없고 정해진 삶의 길이 없었던 게 오히려 독립심과 적극성을 갖게 했고, (가족 내) 기득권이 없으니 스스로 균형감을 갖는 데 도움이 됐다”고 지난 삶을 긍정한다.
이런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박 회장은 말단 사원들과도 이메일이나 메신저로 일상을 공유한다. 대중과도 SNS로 소통한다. 일이든 인간관계든 최선을 다하되 긍정을 잃지 않는 여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휴머니스트다운 그의 면모는 69개의 길고 짧은 이야기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 회장은 가장 행복했던 때를 회장 취임식이 아니라 ‘아내와 김치밥을 해 식탁에 마주 앉아 있던 어제저녁’이라고 고백한다. 세 번의 허리 수술과 대장농양 수술을 이겨내며 얻은 좋은 기억들, 빨간 짬뽕 국물을 옷에 묻혀가며 먹고, 지갑을 놓고 와 장충동 냉면집에서 대기업 총수로는 최초로 외상값 5만2000원을 달아놔야 했던 웃지 못할 사연은 읽는 동안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그는 “내 삶의 상당 부분을 공유하는 것이 불편하지 않다. 그것이 불편하면 내가 삶을 바꾸면 될 일이지, 바꾸지 않으면서 감추거나 포장할 일은 아니다”고 말한다.
기업인으로서의 고뇌도 진솔하게 풀어놨다. 외환위기 당시 구조조정의 극한 파고를 넘기고 여러 획기적 인수합병(M&A)을 통해 그룹의 포트폴리오를 확장해 가는 동안 악역을 자처했다. 그는 “구조조정, 위기 극복, 변화와 혁신은 모두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에 누군가는 싫어도 먼저 나서서 감내해야 했다”고 설명한다.
회사 젊은 사원들에게 닥쳤던 가슴 아픈 기억들을 소환해 공감하는 장면이 인상 깊다. ‘회장님 식사하셨어요?’라는 메일로 시작해 2년간 메일로 짧은 인사와 안부를 주고받던 한 기간제 여직원의 퇴직을 막아줄 수 없었던 안타까운 사연이 대표적이다. “그의 재계약에 개입하면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내 재량으로 예외를 만드는 일이었다. 선아라는 예쁜 이름의 그 친구가 이 책을 읽게 되면 ‘내가 소심해서 그랬다’는 고백만이라도 전했으면 좋겠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박 회장이 직접 썼고, 편집자가 거의 손대지 않았다는 게 출판사의 설명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