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고대 북방을 호령한 부족국가 옥저·읍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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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저와 읍루
강인욱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230쪽│ 1만원
강인욱 지음
동북아역사재단
230쪽│ 1만원
한국의 우수한 전통문화 가운데 하나인 온돌 시설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에서 시작돼 지금은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온돌은 기원전 3세기부터 철기 문화의 전파와 함께 한반도 전역에 퍼진 것으로 알려졌다.
옥저는 기원전 4~3세기경부터 지금의 함경도 지역부터 동해안을 따라 연해주로 이어지는 환동해 지역에 살았던 집단이다. 역사 교과서에는 민며느리제를 시행했다는 짤막한 소개 정도뿐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옥저의 북쪽에 있던 집단인 읍루는 더욱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읍루인들은 옥저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내려와서 자연스럽게 섞여 살았고, 나중에 고구려와 백산말갈을 형성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쓴 《옥저와 읍루》는 한국 고대사에서 한 축을 담당한 북방민족인 옥저와 읍루를 고고학 자료를 통해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다양한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밝히고, 알려지지 않은 북방의 역사를 소개한다.
옥저와 읍루는 ‘환동해 문화권’이라고 알려진 러시아 아무르강 하류 유역부터 연해주를 거쳐 한반도 동해안에 이르는 지역에서 살았다. 두만강 건너편 평야지대에서는 발해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2000년 전의 옥저 사람들이 온돌집을 짓고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유적이 드러났다. 옥저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태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철제 농기구를 통해 농사를 지으며 고조선, 중국과 원거리 교역을 했다.
고고학에서 ‘폴체 문화’라고 불리는 읍루는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산속에 요새처럼 마을을 만들고 살았다. 옥저와 교역하거나 때로는 충돌하기도 했다. 산속에서는 모피동물을 사냥하고 양과 염소를 목축했지만, 평지에서는 잡곡 농사를 지었다. 이들은 어느 지역에나 적응할 능력이 있었으므로 북방으로 큰 범위에 걸쳐 존재했다.
최신 고고학 자료들은 옥저와 읍루를 변방의 작은 오랑캐 집단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저자는 “이들은 동해안의 독특한 지리환경에서 문화를 발달시킨 사람들이고 문화적 저력이 매우 컸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들 북방지역 연구를 통해 남한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았던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옥저는 기원전 4~3세기경부터 지금의 함경도 지역부터 동해안을 따라 연해주로 이어지는 환동해 지역에 살았던 집단이다. 역사 교과서에는 민며느리제를 시행했다는 짤막한 소개 정도뿐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옥저의 북쪽에 있던 집단인 읍루는 더욱 알려지지 않은 존재다. 읍루인들은 옥저인들이 살고 있는 곳에 내려와서 자연스럽게 섞여 살았고, 나중에 고구려와 백산말갈을 형성했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가 쓴 《옥저와 읍루》는 한국 고대사에서 한 축을 담당한 북방민족인 옥저와 읍루를 고고학 자료를 통해 살펴본 책이다. 저자는 다양한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밝히고, 알려지지 않은 북방의 역사를 소개한다.
옥저와 읍루는 ‘환동해 문화권’이라고 알려진 러시아 아무르강 하류 유역부터 연해주를 거쳐 한반도 동해안에 이르는 지역에서 살았다. 두만강 건너편 평야지대에서는 발해 유적이 집중적으로 발견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2000년 전의 옥저 사람들이 온돌집을 짓고 밭농사를 지으며 살던 유적이 드러났다. 옥저인들은 한국의 전통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형태의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철제 농기구를 통해 농사를 지으며 고조선, 중국과 원거리 교역을 했다.
고고학에서 ‘폴체 문화’라고 불리는 읍루는 기원전 8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이어졌다. 이들은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고 산속에 요새처럼 마을을 만들고 살았다. 옥저와 교역하거나 때로는 충돌하기도 했다. 산속에서는 모피동물을 사냥하고 양과 염소를 목축했지만, 평지에서는 잡곡 농사를 지었다. 이들은 어느 지역에나 적응할 능력이 있었으므로 북방으로 큰 범위에 걸쳐 존재했다.
최신 고고학 자료들은 옥저와 읍루를 변방의 작은 오랑캐 집단으로 보는 것을 거부한다. 저자는 “이들은 동해안의 독특한 지리환경에서 문화를 발달시킨 사람들이고 문화적 저력이 매우 컸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들 북방지역 연구를 통해 남한이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유라시아 대륙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았던 한반도의 역사를 다시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