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이슈 넘어 보편적 감성 가득…팬데믹 시대 따뜻한 위로 건네"
척박한 땅, 모진 비바람. 그 속에서도 어떻게든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것이 인생이다. 영화 ‘미나리’는 이런 보편적 인간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그 강인한 생명력은 향긋하게 피어난 초록빛 미나리와 함께 스크린 가득 뿜어져 나온다.

다음달 3일 국내 개봉을 앞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가 베일을 벗었다. 지난 18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첫 언론배급 시사회를 통해서다. ‘미나리’는 미국영화연구소(AFI) 올해의 영화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대상·관객상을 수상하는 등 세계 영화제에서 68관왕을 휩쓸었다. 오는 4월 25일 열리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수상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이날 시사회에서도 호평이 쏟아졌다.

아이의 눈으로 담아낸 이민자·가족 이야기

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미나리’는 1980년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한국 가족의 여정을 그렸다. 이민자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 이상의 보편적 감성까지 담아냈다. 병아리 암수를 구분하는 감별사로 일하는 아빠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엄마 모니카(한예리 분)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농사를 시작한다. 바퀴 달린 컨테이너 집에서 아이들,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 분)까지 가족들이 고통을 견디며 옹기종기 사는 모습이 공감을 자아낸다.

강유정 영화평론가는 “이민자의 아메리칸 드림이 지녔던 가치를 잘 그려냈을 뿐 아니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 있고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재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말했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인내심과 희망이 필요한 팬데믹 시대에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다른 영화에서 자주 나온 이민자와 가족 이야기를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것도 참신하다. 영화는 자동차 뒷좌석에 앉은 막내아들 데이빗(앨런 김 분)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시작된다. 윤 평론가는 “목표지향적인 아버지와 관계지향적인 어머니 사이에서 아이의 시선이 두드러진다”며 “어린 시절 관객 각자의 모습도 떠올리게 하면서 향수를 자극한다”고 설명했다. 강 평론가도 “아이는 다 알진 못하지만 가족의 모든 걸 보고 있는 존재”라며 “어떤 상황에서도 자라나는 아이는 미나리의 이미지와도 잘 어우러진다”고 말했다.

미나리 외에 수많은 메타포(은유)의 향연이 펼쳐진다. 척박하지만 가족의 꿈을 품은 땅, 그 땅에 흐르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물, 연약하지만 열심히 뛰고 있는 아이의 심장 등이 그렇다. 이 펄떡이는 생명력은 담담하게 전개되는 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다채로운 연기에 윤여정 수상 기대감↑

오스카 여우조연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윤여정의 연기에 대해서도 호평이 이어졌다. 극중 순자는 초반엔 요리도 할 줄 모르고 아이에게 화투를 가르쳐주는 발랄하고 장난스러운 캐릭터로 나온다. 그러다 후반엔 짙은 농도의 감정 연기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윤 평론가는 “다채로운 모습을 연기하며 조연으로서 작품을 훌륭하게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호평했다.

평단에선 아카데미 여우조연상뿐 아니라 감독상, 각본상 등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강 평론가는 “영화에 담긴 시대적 메시지의 의미가 깊고, 전형성을 탈피한 특별한 연기도 빛난다”며 “지난해 ‘기생충’의 수상에 따른 역차별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후보까지는 충분히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이날 영화 상영에 앞서 배우들도 인사를 전했다.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윤여정은 영상을 통해 “정 감독의 헌신에 정말 감동을 받으면서 이 영화를 찍어내자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렇게 큰 영광을 얻게 됐다”며 “우리의 진심을 봐주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한예리는 상영관을 찾아 “‘미나리’는 제게 좋은 추억을 준 특별한 영화”라며 “그 힘으로 지금도 잘 버티고 있으니 관객들도 이 영화를 보고 기운을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