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맞았다"…학폭 피해자들이 침묵을 깬 이유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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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폭로 이어져, 만연한 폭력에 경각심
스포츠·연예계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
피해자들 한풀이…'판춘문예'도 주의해야
실효성 있는 학폭 대처 나와야…진위여부 판단도 관건
스포츠·연예계부터 사회 전반으로 '확산'
피해자들 한풀이…'판춘문예'도 주의해야
실효성 있는 학폭 대처 나와야…진위여부 판단도 관건
어린 시절의 '장난'이었다니…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TV에서 뻔뻔하게 웃는 모습을 보며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 학폭 폭로 글 중에서
사회 전반에 걸쳐 이른바 '학폭 미투'가 번지고 있다. '철없던 시절'의 장난으로 치부됐던 과거와는 달리, 학교 폭력(학폭)이 범죄로 인식되며 많은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어린 시절 학폭을 당한 피해자들은 도덕성 발달 장애, 정서적 공포감을 야기하며 피해 망상, 분노 장애, 낮은 자존감 등 문제로 성인이 되어서까지 '트라우마'를 호소한다.
이들은 온라인 커뮤니티, SNS 등으로 학폭이라는 상처를 드러내고 있지만 일부 네티즌의 허위 폭로라는 역기능 또한 수반하고 있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팬심도 차갑게 식었다…스포츠계 '학폭' 도미노
스포츠계에 학폭은 고질병과 같다. 학창 시절부터 전문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경우 폭력에 자주 노출돼 왔다. 학연으로 얽힌 폐쇄적인 문화로 일부 선수나 지도자가 '왕'처럼 군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배구계 학폭 사건은 '군기'를 잡는다며 쉬쉬해온 선수들 간의 폭력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팬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특히 여자배구계에서 탄탄한 팬덤을 보유 중인 인기 배구 선수인 이다영, 이재영 선수의 얼룩진 학창 시절은 많은 팬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이다영, 이재영 자매와 전주 근영중학교 배구팀에서 소속됐다고 자신을 밝힌 네티즌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만난 이 자매 때문에 불행이 시작됐다"고 토로했다.
이 네티즌은 이다영, 이재영 자매가 개인 빨래를 동료, 후배 가리지 않고 시켰고, 칼로 협박해 금전을 상습적으로 갈취하고 부모 욕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괴롭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다영이 SNS에 선배 김연경을 저격하며 올린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글을 언급하며 "본인이 했던 행동들은 새까맣게 잊었나 보다. 본인도 하나의 사건 가해자면서, 제대로 된 사과나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지도 않고 도망치듯이 다른 학교로 가버렸으면서 저런 글을 올렸다는 것이 너무나 화가 나면서 황당하다"고 비꼬았다.
논란이 커지자 이다영과 이재영은 소속팀을 이탈하고 SNS를 통해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다영은 "학창 시절 같이 땀 흘리며 운동한 동료들에게 어린 마음으로 힘든 기억과 상처를 갖도록 언행을 했다는 점 깊이 사죄드린다"라고 썼다.
이재영은 "철없었던 지난날 저질렀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많은 분들께 상처를 드렸다. 머리 숙여 사죄한다"며 "앞으로 제가 했던 잘못된 행동과 말들을 절대 잊지 않고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도록 하겠다"고 했다.
소속팀인 흥국생명 측은 김연경에 이어 팀의 '얼굴'격인 이 자매의 징계 수위를 놓고 고민하다 늦장 대응을 해 비판을 받았다. 결국 구단은 두 사람에게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내렸다. 배구협회도 이 자매의 국가대표 자격증을 무기한 박탈했다.
이다영, 이재영이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은 서둘러 두 사람의 흔적을 지우기에 바빴다. 찍어놓은 광고에서도 사실상 퇴출 돼 거액의 위약금을 물어야 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K금융그룹 송명근, 심경섭도 학폭 가해자임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한 온라인 게시판을 통해 한 네티즌이 올린 피해 주장 글은 놀라웠다. 그는 "가해자들이 급소를 가격해 고환 봉합 수술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또 지각하면 창고에서 무차별 폭행을 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송명근, 심경섭은 구단 조사에서 학폭 가해 사실은 인정하고 구단을 통해 사과했다. OK 금융그룹은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선수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삼성화재 블루팡스 소속 선수 박상하 또한 새롭게 학폭 가해자로 지목됐다. 박상하와 제천중학교 동창이라는 네티즌은 박상하는 왕따 주동자이며 돈을 빼앗고 폭행을 일삼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오후 4시부터 오전 6시까지 사정없이 때려서 기절했다"면서 "코 뼈 골절, 앞니 2개가 나가고 갈비뼈에도 금이 가 한달 동안 병원 생활을 했는데, 박상하와 일진들은 교내 봉사활동으로 징계가 끝났다"고 억울함을 드러냈다.
그는 "어이없고 분해 죽어 버리면 편할까 생각했는데 가족 생각에 꾹 참았다"며 "요즘 학폭 제보 물타기 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니다.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다. 이렇게 글 써서 마음속 응어리를 덜어내면 그뿐이라 생각해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화재 구단은 논란을 접한 뒤 박상하와 개인 면담을 했다. 이 면담에서 박상하는 "학폭에 가담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구단 측은 정확한 사실 확인 전까지 박상하를 경기에 출전 시키지 않을 계획이다.
여론은 선수 개인뿐만 아니라 구단의 대처에 대해서도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 학폭의 심각성에 비해 미온적 태도를 보이며 가해자들의 사과 또한 '보여주기식'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이에 한국배구연맹(KOVO)은 최근 학폭 선수들은 완전히 퇴출하겠다는 규정을 신설, "학교 폭력 연루자에 관해 최고 영구 징계를 내릴 수 있는 규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한체육회는 "청소년기 무심코 저지른 행동에 대해 평생 체육계 진입을 막는 것은 가혹한 부분도 일부 있을 수 있다"며 "형사처분을 받은 범죄자에 대해서도 사회진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선수들도 반성하고 교화해 사회에 재진입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에 학폭 가해자를 옹호하고, 가해자 지원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질책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낙인 찍히면 끝장…연예계도 학폭 주의보
가수 진달래는 학폭으로 '뜰' 기회를 놓친 스타다.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 TV조선 '미스트롯2'에 참여해 데뷔 이후 처음으로 각광받았으나 준결승을 앞두고 학폭 폭로로 하차했다. 진달래 학폭 피해자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귀가 붓고 멍이 들 정도로 얼굴만 때리다가 티 난다며 몸을 때렸다. 가슴을 맞고 순간적으로 숨이 안 쉬어졌던 기억도 생생하다"고 글을 올렸다.
진달래는 학폭 폭로 하루 만에 본인의 잘못을 인정했다면서 '미스트롯2'에서 하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어린 시절 철없는 행동이 아직까지 트라우마로 남았다는 말에 가슴이 찢어지게 후회스럽고 스스로가 원망스럽다"고 사과했다.
반면 학폭 의혹이 불거졌으나 '허위사실'이라며 강경 대응을 예고한 스타들도 있다.
JTBC '싱어게인' 파이널 무대를 앞두고 가수 요아리가 중학교 시절 일진 출신이라는 폭로가 나왔다. 글쓴이는 요아리에 대해 "일진 출신에 애들도 엄청 때리고 사고 쳐서 자퇴했으면서 집안 사정으로 자퇴했다니 웃음만 나온다"며 "뻔뻔하게 TV 나와서 노래하는 거 보니 여전하다"며 분노했다. 이어 "거짓말하면 본인 과거가 없어질 줄 알았나"라면서 "학폭 당했던 사람들은 이가 갈릴 텐데"라고 덧붙였다.
생방송 결승 무대를 앞두고 제작진은 요아리가 학폭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고 전했다. 방송이 종영된 후 요아리는 직접 "단정하고 훌륭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이유 없이 누구를 괴롭히거나 때리는 가해자였던 적은 없다"며 반박했다. 그는 "가해자라는 낙인이 찍혔지만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대응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그룹 TOO 멤버 차웅기는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술자리를 갖는 대학 동료들을 저격해 '소신있는 스타'로 칭찬받다가 학폭 가해자라는 오명을 썼다.
한 네티즌은 "차웅기가 슈퍼맨인 것처럼, 대단한 사람으로 남는 건 싫다. 술자리 소신 발언으로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는 건 차마 못 보겠다"며 "피해자들에게 했던 짓을 기억하면 절대 아이돌을 할 수 없다"고 비난했다.
그는 차웅기와 친구들이 속적인 언어폭력, 집단 괴롭힘, 부모에 대한 욕설, SNS를 이용한 괴롭힘 등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차웅기 측은 "학창 시절 차웅기와 사이가 좋지 않아 서로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인물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특정인을 괴롭히는 방법으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등의 주장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향후 당사 아티스트에 대한 근거 없는 악의적 비방과 허위 사실 유포 등이 지속될 경우 저희는 단호한 방법까지도 강구할 생각"이라고 경고했다.
'SKY캐슬', '스토브리그', '경이로운 소문'까지 연타석 홈런을 친 배우 조병규도 학폭 사태로 곤욕을 치르는 중이다. 조병규와 뉴질랜드에서 같은 학교를 다녔다는 네티즌은 조병규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조병규의 학폭 의혹이 커지자 소속사인 HB엔터테인먼트는 강력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하지만 수사를 의뢰한 직후 이 네티즌은 소속사로 연락해 글이 허위사실이라며 사과했고 선처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병규 학폭 의혹이 일단락되나 싶더니 또 다른 동창생의 추가 폭로가 나왔다. 글쓴이는 조병규의 초등학교 1년 후배라면서 "조병규가 유학 가기 전 같은 동네에 살았는데 일진이나 질 안좋은 친구로 유명했다"면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사자 면대 면으로 보고 발뺌할 수 있는지 보고 싶다"면서 "사과 선에서 끝나길 바라지만 법정 싸움으로 가게 된다면 갈 생각도 있다"고 했다.
추가 폭로 글이 일파만파 퍼지자 조병규의 또 다른 동창생은 친구의 억울한 누명을 벗기기 위해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활발하고 인기가 많아서 관심을 많이 받던 애고 절대 나쁜 짓 하며 살지 않았던 애"라며 "연기한다는 이유로 시기, 질투 엄청 당했고 애들이 엄청 괴롭혔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되니까 아니면 말고 식의 증거없는 헛소리를 계속 나오는 것 같다"면서 "익명이 보장되어 글 올리면 그만이지만 조병규는 10년 동안 쌓아온게 이런 글로 무너지는 것 같아서 글을 올린다"고 덧붙였다.
조병규의 학폭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또 다른 네티즌은 그는 조병규와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다며 학폭 피해를 호소했다. 그는 "조병규는 2010년 유학 온 후 잘생긴 외모로 유명해졌고 한인 사회에서 잘나가는 일진들로 인맥이 불어났다. 반강제로 노래방에 데려가 노래를 못한다고 했더니 마이크를 잡고 때렸다. 싫은 내색을 한 후 폭행은 더 심해졌고 발로 차거나 때리고 손에 있는 모든 게 무기였다"고 주장했다.
글쓴이는 "조병규가 보고 있다면 사과할 생각 없냐고 묻고 싶다.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본인은 최소한의 미안함이라도 있는지"라며 "권선징악, 진실은 결국 밝혀진다는 순진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고 싶다. 그가 잘못한 것에 대한 마땅한 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조병규 소속사 측은 재차 공식입장을 내고 학폭 의혹을 다시 한번 부인했다. HB엔터테인먼트 측은 "첫 번째 허위사실 유포자에 대해서는 본인의 반성과 재발 방지를 약속받고 선처했지만, 악의적인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게재한 이들을 대상으로 모욕죄와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을 근거로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사건은 강남경찰서 사이버수사대가 맡았다.
사회 각 분야로 번진 학폭 '미투'…진위여부 파악 '한계'
스포츠, 연예계를 넘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학폭 미투가 번지고 있는 양상이다. 교사, 소방관, 경찰 등 다양한 직업인들이 가해자로 지목됐다. 전북의 소방관으로부터 학폭 피해를 주장하는 네티즌은 "더러운 슬리퍼에 침을 뱉은 뒤 양 뺨을 부을 때까지 수차례 때리며 조롱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연히 인터넷 기사에 가해자가 공무원이 되어 가족과 환하게 웃는 사진을 봤다"면서 "내게 악마 같은 짓을 했던 사람이 처자식들과 함께 웃고 있는 모습에 소름이 끼쳐 사과 요청을 목적으로 내용증명을 보냈으나 결국 회신을 받지 못했다"면서 폭로 이유를 밝혔다. 가해자로 지목된 소방관은 학폭 의혹에 대해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뿐만 아니라 학폭 가해자가 경찰 공무원으로 재직 중이라는 폭로, 학폭 했던 육상부 선배가 교사 임용시험에 합격했다는 폭로도 있었다. 커뮤니티에는 학창시절 학폭을 당한 피해자들이 가해자가 유명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며 폭로를 예고하는 글들도 게재됐다.
피해자들은 왜 십수 년이 지난 후 가해자들의 학폭을 폭로하고 나선 것일까. 전문가들은 유명인의 학폭 미투가 대중에게 공개되며 질타를 받자 용기를 얻어 연쇄 폭로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심리학과 교수는 "일반인들도 가해자가 욕을 먹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모습을 보며 자존감을 회복하고 보상심리를 얻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학폭 미투로 직장 내 괴롭힘, 갑질 등 사회에 만연한 폭력 사태에 경각심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풀이도 있다. 하지만 일명 '판춘문예'(판+신춘문예, 네이트 판에서 작성된 자작글)와 같은 허위 폭로의 문제도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과거에는 학폭 피해를 내세울 수 있는 공간이 없었으나 지금은 SNS 등으로 직접 토로할 수 있게 됐다. 상처를 혼자 떠안았던 과거에 비해 고질적 문제를 꺼낼 수 있게 된 것은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학폭은 과거사이기 때문에 진위 파악이 어려워 무고한 피해자가 또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문제 제기 되는 순간 가해자는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에 허위사실이 없는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일부에서는 학교폭력을 조기에 진단하지 못한 구조적인 문제도 지목하고 있다. 학폭을 경험한 어린 시절에는 '내 잘못으로 맞는다'는 인식이 있었지만 성인이 된 후 가해자의 잘못임을 인지하고 폭로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을 받지 않는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 연령을 하향 조정하겠는 계획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실효성 있는 대처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폭을 당하더라도 신고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피해 학생들의 심리 상담 시간을 늘리고 학폭을 하면 반드시 처벌받는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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