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승부조작 사건 이후 V리그 가장 큰 위기 한국프로배구가 '학폭(학교 폭력) 스캔들'로 휘청이고 있다.
2012년 승부 조작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면서 길고 고된 정화 작업을 펼친 한국프로배구는 이제 '폭력 근절'을 위해 썩은 살을 도려내야 할 또 한 번의 위기를 맞았다.
V리그 남자부 삼성화재의 베테랑 센터 박상하(35)가 22일 학교 폭력 사실을 인정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박상하는 19일 자신을 학교 폭력 가해자로 지목한 글이 올라오자 이를 부인했다.
하지만 사흘 만에 학교 폭력 사실을 일부 인정했다.
그는 구단을 통해 "학교 폭력 논란으로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
학창 시절 학교 폭력을 범했다.
중학교 재학 시절 친구를 때렸고, 고교 재학 시절 숙소에서 후배를 때렸다"고 시인하며 "상처를 받은 분들께 죄송하다.
이에 책임을 지고 은퇴하겠다"고 밝혔다.
감금 폭행 주장에 대해선 부인했지만, 코트에 남을 수는 없었다.
삼성화재 구단은 "박상하가 구단에 은퇴 의사를 전해 이를 수용했다"고 전했다.
박상하는 V리그 남자부 역대 블로킹 득점 6위(712개)를 달리는 '국가대표 센터'다.
하지만 학창 시절의 과오 탓에 '폭력 선수'라는 오명을 썼다.
지도자로 코트에 돌아오기도 쉽지 않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학교 폭력 가해자로 판명된 선수는 지도자 자격을 획득할 때도 '결격 사유'가 생긴다.
지도자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중징계 경력은 '제한 사항'이 된다"고 밝혔다. 박상하와 삼성화재는 가장 높은 수위의 '은퇴' 결정을 했다.
이는 타 구단에도 '학교 폭력 선수 징계'의 기준이 될 수 있다.
가장 먼저 학교 폭력 논란에 휩싸인 여자부 이재영·이다영(25) 쌍둥이 자매도 과오를 인정했다.
소속팀 흥국생명 구단은 두 선수에게 '무기한 출장 정지' 징계를 내렸다.
남자부 송명근(28)과 심경섭(30·OK금융그룹)은 선수가 "2020-2021 V리그 잔여 경기에 출장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구단이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잔여 경기 출장 정지'를 택했다.
여기에 국가대표 코치 시절이던 2009년 선수(박철우)를 폭행해 2년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던 이상열 KB손해보험 감독도, 과거 이력을 두고 비판이 거세지자 잔여 경기 출장을 포기하기로 했다.
배구계에서도 "폭력은 근절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래도 10년 이상 지난 일로 선수(혹은 지도자) 생명까지 끊는 건, 지나치다"는 여론도 있다.
강경한 팬들은 이런 분위기를 '배구계 온정주의'라고 비판한다.
학교 폭력 의혹을 받는 선수, 감독들 대부분이 '추후에 복귀 가능성이 열려 있는 징계'를 받은 점에도 싸늘한 눈길을 보내는 팬들이 있다.
박상하가 다른 선수들에 비해 나이가 많긴 하지만, 박상하가 은퇴를 택한 상황에서 다른 폭행 혐의 연루 선수와 지도자가 짧은 시간 안에 복귀하기는 부담스럽다.
2012년 3월, 한국배구연맹은 승부조작에 가담한 현역 선수 11명을 영구제명했다.
자진 신고한 선수 1명은 무기한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고, 은퇴한 선수 4명은 배구와 관련한 모든 업무에 종사할 수 없게 했다.
특정 구단에서 현역 선수 4명이 동시에 영구제명을 받는 등 프로배구가 받은 상처는 컸다.
하지만 리그를 되살리기 위해서 당연히 감내해야 할 고통이었다.
승부 조작의 상처를 딛고, 인기를 되찾은 V리그는 또 한 번 시련을 맞았다.
이미 V리그를 크게 흔든 학교 폭력 문제가 어디까지 번질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그러나 미봉책은 상처를 덧나게 할 수 있다.
한국프로배구가 또 한 번 고통을 감내하고, 냉정하게 메스를 들 때가 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