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2019년 플랫폼 종사자 지침 보면 '답' 보여
당사자, 작업 장소ㆍ일시 등 정보를 반드시 서면 제공해야
이 연구를 포함해 플랫폼 종사자 관련 연구보고서가 외국 사례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2019년 유럽연합 지침이다. 2019년 7월 31일부터 발효된 이 지침의 정식 명칭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근로조건에 관한 지침’이다. 0시간 계약, 가사노동, 바우처기반노동 등 다양한 고용 형태에 적용되고, 유럽연합 국가들 사이에선 ‘조약’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이 지침은 현재 정부가 마련 중인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의 윤곽을 어느 정도 짐작케 해 준다.
플랫폼 종사자 보호를 위한 입법 방안으로는 크게 보아 3가지 유형이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지난 2019년 발간한 ‘플랫폼노동의 주요 현황과 향후 과제’에 따르면, ▲노동관계법 적용 ▲특수형태근로종사자에 포함 ▲제3의 영역에서 보호하는 방안이다.
노동관계법을 전면 적용하는 방안은 모든 플랫폼 종사자를 근로자로 본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노동계가 줄곧 요구해 온 사항이다. 실제 양 노총은 정부가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노동관계법을 전면 적용하지 않고 별도의 법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내놓자마자 반대 성명을 내놨다.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기 하루 전인 12월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대책 내용이 알려지자 양 노총은 “별도의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은 이들을 노동권 사각지대로 내모는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특고 종사자나 제3의 영역에서 플랫폼 종사자를 보호하는 방안은 프랑스, 독일 등의 제도다. 플랫폼은 사용자와 종사자 사이의 거래를 매개하는 데 역할이 한정되기 때문에 이들 종사자를 전통적인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현실을 감안한 것이다.
정부 대책의 핵심은 먼저 플랫폼 종사자 가운데 근로자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최대한 가려내 노동관계법을 적용한다는데 있다. 전문가 중심의 고용형태 자문기구를 구성해 법률상 근로자인데도 자영업자로 오분류되는 것은 방지하겠다고 한다.
근로자로 분류될 수 없는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서는 기본적인 노무제공 여건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을 법제화한다. 유럽연합의 지침과 배경이 유사하다.
유럽연합 지침은 5개 장(章) 26개 조항으로 구성돼 있는데 크게 보아 7가지로 요약된다. ▲서면 정보 제공 ▲수습 기간 제한 ▲타 직업 병행 허용 ▲예측 가능성 부여 ▲보충계약 ▲보다 안정적인 고용형태로의 전환 요청권 ▲교육 훈련 제공 의무 등 7개 사항 가운데 핵심적인 보호 조치는 당사자 사이에 서면 계약을 통해 기본적인 근로조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플랫폼 종사자는 사용자로부터 당사자, 장소, 노무의 성격, 시작일 및 종료일, 기본금액, 작업 시간, 사회보장 범위 등 총 15가지의 정보를 서면으로 제공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보급하겠다는 것과도 맥이 통하는 조치다.
정부가 다음달 법안 내놓자마자 노동계 반발에 부딪칠 전망그 외 수습 기간은 6개월로 제한되고 플랫폼 종사자들은 다른 직업도 병행해서 가질 수 있고, 이를 이유로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 노무 제공 시간이나 기간, 작업 형태 등이 예측 가능해야 한다. 만일 아무런 보상 없이 작업배치를 취소하는 경우에는 플랫폼 종사자가 보상을 받게 된다.
특정 기간 동안 최소한의 유급 근로시간이 있다면 온디맨드 계약이 곧바로 고용계약으로 간주하는 등의 보충 규정과 함께 보다 안정적인 고용 형태로 전환해 줄 것을 종사자들이 요청할 수 있다. 작업 수행에 필요한 교육 훈련은 무료로 제공돼야 한다는 규정도 포함돼 있다.
다음 달 중에 정부가 내놓을 플랫폼 종사자 보호법안의 윤곽은 이미 마련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유럽연합의 2019년 지침 내용이 상당 부분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노동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어느 선까지 입법화할지가 관건이다.
최종석 전문위원 js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