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때 그리워지는 스승이 있다면 탄허스님이 아닌가 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할 수 있는 스승, 탄허스님밖에 없다고 봅니다.
"
승려 탄허(呑虛·1913∼1983)는 한국 근현대사를 대표하는 고승이다.
불승으로는 유일하게 '유불도(儒佛道)' 삼교의 사상을 종합하고, 회통한 장본인이다.
생전 그는 유학자로서 불교에 해박했고, 불승으로서 유가와 도가의 철학에 통달했다.
무엇보다 탄허가 남긴 대표적인 업적은 '신화엄경합론(新華嚴經合論)'(이하 화엄경)을 우리말로 간행한 일이다.
1956년 시작해 9년 반만인 1966년 탈고했다.
하루 14시간씩 200자 원고지에 꾹꾹 눌러 적어가며 번역 작업에 매달렸다.
이렇게 남긴 원고지 분량만 약 6만2천500매다.
역해 작업을 마치고 오른팔에 마비증세가 와 심하게 고생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남긴 화엄경은 1975년 완간됐다.
번역에 착수한 지 19년 만의 결실이다.
전체 47권짜리 화엄경은 총 페이지가 1만2천400여쪽에 이른다.
그는 1976년부터 입적한 해인 1983년까지 전통 강원의 교과서인 '사교(四敎)', '사집(四集)', 사미과 교재를 모두 번역해 간행하기도 했다.
탄허가 번역 출간한 책은 모두 18종, 무려 77권에 달한다.
계보상 탄허의 증손 제자로 볼 수 있는 자현스님은 최근 발간한 '탄허의 예언과 그 불꽃같은 생애'(민족사)에서 탄허의 생애와 그의 사상을 조명한다.
자현스님은 탄허가 유불도를 회통한 승려였음에도 예언자라는 이미지에 가려져 온 면이 크다고 아쉬워한다.
탄허는 1975년 끝난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의 패전을 예언하고 1977년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이 훗날 세계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를 예견했다고 한다.
생전 내놓았던 예언들이 하나둘 적중하면서 '화엄학 대가'라는 수식어보다는 '예언가'라는 호칭이 앞섰다.
자현스님은 24일 서울 종로구 민족사에서 연 간담회에서 "그간 탄허스님 책은 예언과 관련된 책이 많았다"며 "탄허스님에게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이번 책에서는 (그의) 삶이 어떠했는지 인생을 조명했다"고 말했다.
탄허의 사상은 많은 논문의 주제이기도 했다.
학문적으로 접근하다 보니 불자나 일반인에게는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자현스님의 탄허 단행본은 고승의 삶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접근성을 높였다고 볼 수 있다.
자현스님은 스승 탄허를 생각하며 '멸사봉공(滅私奉公·사욕을 버리고 공익을 위해 힘씀)'을 떠올렸다.
"단순히 불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를 계몽하려 했던 어른이었죠. 이 시대에 조명돼야 할 어른,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 최근 종교인 중에서는 (우리) 민족에게 비전을 제시하고, 사회 계몽을 하려는 분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탄허스님은 굉장히 의의가 크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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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행본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탄허의 휘호, 서간문 등 스님과 관련된 귀중한 자료들이 수록됐다.
30여편의 서간문 풀이를 통해 탄허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중앙승가대 교수로 있는 자현스님은 '공부하는 승려'로 잘 알려져 있다.
동양철학과 미술사학, 철학, 역사교육학, 국어교육학 등 5개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왕'으로도 유명하다.
그간 160여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실었다.
그는 '불교미술사상사론', '사찰의 상징세계', '스님, 기도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등 50여권의 책을 썼다.
자현스님은 "이번 책이 54번째"라며 "저도 탄허를 주제로 논문은 썼지만 이렇게 단행본을 내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344쪽. 1만6천5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