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 급락의 원인으로 작용했던 국채 장기물 금리는 23일(현지시간) 채권 시장에서 다소 진정됐지만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10년물 수익률은 이날 연 1.37%로 전날과 같았으나 30년물의 경우 0.02%포인트 올라 연 2.21%를 기록했습니다. 작년 1월 22일 이후 최고치입니다.

그나마 10년물 금리의 추가 상승을 막아준 건 제롬 파월 미 중앙은행(Fed) 의장의 발언이었습니다.

파월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상원 금융위원회에 화상 방식으로 출석해 약 2시간 40분동안 경기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의원과 질의응답을 진행했습니다. 여기서 ‘비둘기파’(통화 완화)적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골자는 다음과 같습니다.

- 경제의 진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속도 및 통제 정도에 좌우된다
- 코로나 재확산으로 경기가 크게 둔화했고 ‘약한 고리 업종’에 타격이 집중됐다
- 경기 회복은 고르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상태이며, 전망 역시 매우 불투명하다
- 작년 11월~올해 1월 신규 일자리가 평균 2만9000개에 그쳤을 정도로 개선 속도가 늦다
- 인플레이션 목표는 2.0%인데, 이를 약간 웃돌아야 장기 평균을 2%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 고용과 인플레 목표를 충족할 때까지 Fed 정책(초저금리 및 채권매입)을 유지하겠다


즉 현재 경기가 여전히 좋지 않은 상황이고, 이 때문에 통화 완화 정책을 거둬들일 이유가 ‘전혀’ 없다는 데 방점을 찍었습니다. Fed의 목표는 완전고용(3.5~4.0%의 실업률)과 인플레이션(2.0% 초과)이란 걸 다시 한 번 강조했습니다.

최근 유가 급등과 같은 이유로 물가가 서서히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파월은 “장기 평균을 내 2.0%를 초과해야 한다”고 못박았습니다.(참고로 작년 12월과 올 1월의 물가 상승률은 1.4%였습니다.)
파월 또 구원투수로 등장?…하원에서 YCC 언급하나 [조재길의 지금 뉴욕에선]
국채 10년물 수익률은 이날도 상승 추세였는데 파월 발언 이후 진정됐고, 이틀 연속 떨어지던 주가 역시 안정됐습니다.

사실 파월의 경기 진단은 종전과 달라진 게 없었습니다. 시장이 원했던 ‘추가 완화’ 정책을 시사하지도 않았지요. 그런데도 시장은 파월의 모든 언사를 호재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미 전날 급락에 따른 반등을 준비하고 있었고, 파월 발언이란 계기가 필요했던 것인지 모릅니다.

파월 발언 중 “우리 행동이 가계와 기업, 지역사회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는 대목도 있었습니다. 주식·부동산 시장의 붕괴를 Fed가 원하지 않고 있다는 뉘앙스로 들렸습니다.

파월은 24일 오전 10시(한국시간 자정) 하원에 또 출석합니다. 여기서도 소속 위원회 의원들과 화상 방식의 질의응답을 갖습니다.

국채 금리가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한 상황이어서, 이에 대해 어떤 발언을 내놓을 지 주목됩니다.

일각에선 파월이 수익률곡선관리(YCC·Yield Curve Control)에 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블룸버그는 “치솟는 물가 상승률이 YCC 정책을 펼 수밖에 없도록 Fed를 압박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이 23일(현지시간) 상원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온라인 청문회 캡처
제롬 파월 미 Fed 의장이 23일(현지시간) 상원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온라인 청문회 캡처
YCC는 장기물(10~30년) 금리가 특정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국채를 적극 매수·매도하는 비(非)전통적인 통화정책 수단입니다.

예컨대 국채 금리 타깃을 설정해 놓고, 이를 초과해 상승할 경우 당국이 채권을 무제한 매입해 강제로 떨어뜨리는 방식입니다. 금리 상승에 따른 기업·가계의 대출이자 부담을 낮출 수 있지요.

다만 실물경제와의 괴리에 따른 통제력 상실 위험이 상존하고, 언젠가 YCC를 중단할 때 금리 상승 압력이 한꺼번에 터진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출구 전략을 시행하는 게 매우 어렵다는 겁니다.

파월을 포함한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위원 다수는 작년까지 “YCC를 검토할 수는 있으나 실제 시행하는 건 어렵다”는 입장을 보여 왔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다소 달라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국제 유가가 예상과 달리 급등세를 보이고 있고, 1조9000억달러에 달하는 슈퍼 부양책 역시 물가를 자극할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작년만 해도 “경기가 나쁘다”는 파월 발언이 유동성 확대로 해석됐으나, 더 쓸 카드가 많지 않은 지금은 호재로만 인식되기 어렵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국채 금리 급등이란 발등의 불을 끌 수 있는 YCC 카드. 파월이 이 카드를 쓸 수 있을까요.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