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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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4월7일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의 시장을 뽑는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보궐선거란 선거에서 당선인이 임기 개시 이후 기타 범법 행위로 인한 유죄판결로 피선거권을 상실하거나 사망, 사퇴 등의 사유로 궐석되었을 때 실시하는 선거다.

잘 알려진대로 서울의 경우 박원순 전 시장이 성추행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자 극단적 선택을 해 선거를 실시한다. 부산 역시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물러나고 검찰이 그를 기소까지 하는 상황이 벌어져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이번 보궐선거에서 서울·부산 시장에 당선되는 사람의 임기는 2022년 6월까지다. 재임기간이 1년2개월밖에 안 된다.

선거가 치러지게 된 경위가 불미스런 성추행 사건이었고 당선인의 임기가 매우 짧다는 점을 감안하면 보궐선거에 임하는 각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제시할 공약이나 선거운동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물론 이번 보궐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되면 차기 지방선거에서 여타 후보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서 재선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은 있다. 아무리 그렇지만 각 당의 후보들이 최우선 공약으로 내세워야 하는 것은 성추행 재발방지 대책 아닌가. 유권자들에게 다시는 이런, 권력을 악용한 성추행 사건이 서울이나 부산시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다양하고 철저한 방지책을 제시하고 약속부터 하는 게 극히 자연스런 수순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와는 너무나도 딴판이다.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두 명의 전임 시장을 모두 배출한 더불어민주당은 사실 이번 보궐선거에 후보자를 내지 않아야 한다. 정치 도의상으로도 그렇고 자신들의 당헌에도 어긋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 대표시절 만든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 96조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뻔뻔하게도 민주당은 이 당헌을 개정하고 서울 부산 모두에 후보자를 내기로 했다. 현재 서울 부산 모두에서 다수의 예비후보가 나와 경합을 벌이는 중이다.

어처구니 없는 것은 이들 예비후보들 중 성추행 방지를 내세운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무슨 대통령 선거전이라도 하듯, 앞다퉈 부동산 정책이니 각종 포퓰리즘성 복지공약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여당은 부산에서는 이미 없었던 일로 돼 있던 '가덕도 신공항'카드까지 살려 내며 매표 행위에 앞장서고 있다.

더욱 한심한 것은 국민의힘이다. 이번 선거가 왜 치러지는 지를 부각시키면서 "서울특별시와 부산광역시를 성추행 없는 지자체로 만들자"고 캐치프레이즈라도 내걸만 한데 후보들은 여당을 따라 퍼주기 공약 경쟁이나 하고 있다. 특히 부산에서 여당이 가덕도 신공항 카드를 먼저 들고 나오자 이를 비난하기는커녕 혹시라도 부산 민심이 여당으로 기울까봐 자신들도 가덕도 신공항 지지로 기울어 버렸다.

사실 이번 보궐선거는 어떻게 봐도 야당이 지기 힘든 선거다. 그런데 야당은 성추행 전임 시장들의 소속 정당인 여당과 공약 등에서 차별화를 하지는 못할 망정, 오히려 여당을 따라가며 포퓰리즘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직까지는 야당 후보들이 우세하다고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이번 선거의 본질은 잊은 채 여당에 질질 끌려다니다가는 지난 몇번의 선거처럼 여당에게 또 다시 참패할 수도 있다.

아무리 정치가 이권이 걸린 정치인과 유권자간의 거래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지켜야할 정치 윤리와 상식선에서 움직여야 한다. 성추행 피해자들의 아픔과 고통은 외면한 채, "나에게 표만 준다면 뭐든 해주겠다"는 식의 여야 모두의 공약 경쟁은 참으로 보기 불편하다.

다른 선거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이번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만은 여야 정치권 모두가 자숙하고 반성하는 마음으로 재방방지책을 약속하는, 차분한 분위기에서 치러야 한다. 그런데도 무슨 축제의 장이라도 되는냥, 여야가 벌이는 공약 경쟁을 보고 있자면 정말 정치에 대한 끝없는 환멸만 느껴진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