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인간의 망각 때문에"

'버냉키-가이트너-폴슨'의 조언…'위기의 징조들' 번역출간

세계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으로 지난해 큰 폭의 역성장을 기록한 가운데 부채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10여 년 만에 다시 거론되고 있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수습에 나섰던 '소방수 트리오'가 쓴 책 '위기의 징조들'(이레미디어 펴냄)은 "금융위기는 반드시 다시 온다"고 경고한다.

금융위기 발발 당시의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헨리 폴슨 재무장관, 티머시 가이트너 뉴욕연방준비은행 총재가 함께 쓴 이 책은 미국에서 2019년 'FIREFIGHTING'이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저자들은 "금융위기가 재발하는 것은 이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이라며 이런 이유로 당시의 상황을 자료로 남겨 교훈을 전달하고자 책을 쓰게 됐다고 말한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들은 금융위기 이후 각종 금융 개혁을 단행해 금융기관은 더 많은 자본을 확충하고, 유동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불이 나지 않는 건물이 없는 것처럼 금융위기에 대한 완벽한 예방책은 없다고 저자들은 지적한다.

특히 미국은 민간 금융시장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 국민의 반발이 심한 국가로 정치권은 향후 구제금융을 동원해야 할 상황이 없기를 바라면서 정부의 금융위기 관리 기능을 상당 부분 축소해왔다고 진단한다.

따라서 정책 당국자의 권한 제한은 선의의 의도에서 시도됐더라도 다음에 금융위기가 발생할 때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고, 이에 따른 경제적 피해는 당연히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저자들의 판단이다.

이들은 "구제금융을 금지한다는 입법이 모든 시나리오에서 실제로 구제금융 상황을 막을 거라는 믿음은 강력하지만, 위험한 착각"이라고 강조한다.

또한, 금융 시스템이 본질적으로 불안정하다는 점에서 금융 공황을 피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없다며 "금융위기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발생할지는 모르지만, 사람은 누구나 결국 한 번은 죽는 것처럼 금융위기도 반드시 발생하게 되어 있다"고 역설한다.

책은 금융위기가 현실화하기 이전에 나타난 징후들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해 금융위기의 전개 과정, 공황 상태였던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실행했던 대응책들, 고비를 넘긴 이후 위기관리 등을 상세히 회고한다.

이어 금융위기 10여 년이 지난 시점에 미국의 경제와 금융 시스템을 진단한 결과로 "상대적으로 작은 위기에는 과거보다 잘 대처할 것으로 보이지만, 대규모 금융위기에는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이는 경제적 수요 붕괴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을 활용해 경기 부양을 시도하는 정책 수단이 상당 부분 없어졌다는 분석에서 비롯한다.

이런 상황을 "정책 입안자들이 팬데믹 같은 공중 보건 재앙에 잘 대처하기 위해 예방접종을 확대하고 건강을 위해 충분한 영양 섭취를 권고한 다음 정기적인 검진을 장려하면서 가장 중요한 응급실을 폐쇄한 것"이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이들은 손자병법에 나오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에 대비하라'는 경고를 인용하며 다시 금융 개혁을 추진하라고 조언한다.

마경환 옮김. 380쪽. 1만7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