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규모 블록체인 투자사인 해시드의 강병진 법무팀장(사진 왼쪽)과 블록체인 보안기업 헥슬란트의 최지혜 리서치센터장(오른쪽)은 지난달 28일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특금법 시행과 더불어 업권법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이 최근 공동 발간한 '특금법 개정안 시행령 쟁점과 개선방향 제언' 보고서에서는 특금법 내 일부 용어나 규정들이 포괄적이어서 사업자들이 혼란을 겪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 같은 불확실성이 가상자산 서비스 기업들의 해외 이탈을 촉진할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해외에 법인이 있어 특금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반면, 국내 기반을 둔 가상자산 사업자들에게는 특금법의 모호한 규정이 자칫 사업 의지를 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특금법이 거래소 규제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가상자산 서비스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도 짚었다.
강 법무팀장과 최 센터장은 "실물자산이 가상자산 거래소를 거쳐 디지털 세상으로 들어온 이후부터는 지갑 서비스를 비롯해 다양한 가상자산 서비스들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성장해야 업계가 커지고 경쟁력이 생길 수 있는데, 해당 부분에 대한 고려가 아쉽다"고 덧붙였다.
-특금법에 대해 설명해달라.
강병진 해시드 법무팀장(이하 '강') "특금법은 가상자산을 다루는 사업자들이 정부에 신고해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무조건 신고를 한다고 해서 사업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자금세탁방지(AML)와 테러자금조달방지(CFT) 부분 등에서 규제 당국이 요구하는 수리 요건을 만족시켜야만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요건을 만족시켜야 하나?
강 "업종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서 발급하는 정보보호 및 개인정보보호 관리체계인증(ISMS)이나 은행의 실명확인계좌 등이 필요하다."
-해당 요건을 만족시키면 큰 문제는 없는 것 아닌가?
최지혜 헥슬란트 리서치센터장(이하 '최) "대형 거래소들 위주로 보면 큰 문제는 없다. 문제는 가상자산 업계에 거래소만 있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형 거래소 외에도 가상자산을 활용해 다양한 서비스를 하는 중소형 기업들이 많은데, 이들에는 이 같은 요건이 높은 문턱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거래소 외 다른 사업에는 저런 요건이 없어도 괜찮을까.
강 "사업 영역에 맞춰서 정밀하고 효율적으로 꼭 필요한 규제만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해외에서 이에 대한 선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참조하면 한층 더 진보된 규제안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해외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나?
강 "예컨대 영국에서 제정한 가상자산 관련 법을 보면 '가상자산 수탁서비스 제공자'에 대한 정의를 '가상자산 보유, 저장, 전송을 위해 개인 암호키(Private Key)를 보호 또는 관리하는 기업'이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 기술을 이해한 후 특정 항목들만 '핀셋 규제' 할 수 있다면 훨씬 효율적인 규제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규제안을 잘 만들더라도 모든 케이스를 세분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강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유권해석을 통해 사업자들이 무엇을 해도 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 지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 통화감독청(OCC)에서는 '은행이 가상자산의 수탁이 가능하다', '은행도 스테이블코인 결제가 가능하다'와 같은 식으로 유권해석을 명확하게 해주고 있다. 당국에서 이러한 해석을 내려준다면 사업자들이 규제를 지키면서 명확하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지 않을까."
-국내에서는 이러한 가상자산 관련 유권해석 사례가 있나?
강 "아쉽게도 2017년 '가상자산공개(ICO) 금지' 발언 이후로는 유권해석이 나온 적은 없다."
-협회에서 유권해석 사례 모아서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후 특별한 해석 사례가 있었나?
강 "아직까지는 특별히 나온 게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특금법에 대해서 업계 내 아쉬운 목소리가 나올 것 같다.
최 "특금법에서 포괄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많아서, 업체들에 자의적인 해석을 부추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부분들이 사업자에게 혼란을 준다고 생각한다. 다만 당국에서 트래블 룰(Travel Rule·자금이동규칙) 관련해서는 어느 정도 유보를 해주면서 충분한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 또 업계의 요구를 반영해 가상자산 사업자(VASP) 범위 자체를 3가지로 줄여주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는 다른 나라 대비해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본다."
-다른 국가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강 "미국 같은 나라는 가상자산도 현존하고 있는 은행비밀보장법 등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는 경우 같은 법안을 따라야하는 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영국은 자금세탁방지법 개정안을 통해서 우리와 비슷한 형태로 적용하긴 했는데, 반드시 규제를 해야 하는 부분에만 핀셋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팩트(Pacte) 법을 만들어 개인 및 기업들이 합법적으로 가상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줬다. 팩트법에서는 '기업이 가상자산공개(ICO)를 한다면 은행은 계좌를 꼭 열여줘야 한다'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지시를 해주고 있다."
-특금법은 어떻게 개선돼야 할까
강 "업권법을 만들되 핀셋 규제 형태로 꼭 필요한 부분은 규제를 하고, 이외의 부분들은 허용 범위를 넓게 잡아준다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해주면 해외로 나갔던 가상자산 사업자들이 다시 국내로 들어와 크게 성장하고, 궁극적으로 우리나라가 이 시장의 점유율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최 "현재 가상자산사업자를 나누는 세가지 기준이 모든 업태를 포함하지는 못하고 있다. 여러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업자나, 서비스간 상호관계에 의해 애매해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는 셈이다."
-구체적인 사례 하나만 든다면?
최 "현재의 특금법에서 디파이(탈중앙화 금융) 프로젝트 운영 주체 성격에 따라 가상사업자 구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명확하지 않다. 탈중앙화 거래소는 규제대상이 아닐 수 있는 반면 거버넌스 토큰은 가상자산으로 해석될 확률이 크다. 또 디파이 프로젝트에서 스테이블 코인을 발행하면 이 또한 가상자산의 정의에 포함될 수 있다. 따라서 현재 당국에서 제시한 업태보다는 업체가 운영하는 서비스 유형에 따라 가상자산사업자 해당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현재는 '이건 이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라는 애매한 기준들을 바탕으로 비즈니스의 비전을 설정해야 하다 보니 고충이 있다. 전반적으로 정확한 기준에 대한 설명과 근거 해설이 보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업계에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
강, 최 "비트코인 시총이 1조달러(약 1108조원)에 육박할 만큼 가상자산 시장이 커졌지만 여전히 투기, n번방 및 불법자금 활용과 같은 부정적 인식이 쌓여 있다.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특금법 목적에 맞춰 자금세탁방지와 테러자금조달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는 한편 산업 변화에 대한 긍정적인 장점이나 사례를 알려서 인식 변화가 이뤄지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
김산하 한경닷컴 기자 san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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