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온의 '날개 없는 추락'…새로운 반전의 기회 잡을까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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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니컬 데트(technical debt, 기술적 부채)라는 개념이 있다. 시간에 쫓겨 완성품을 만들려다 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기술적 결함을 ‘묻어두고 간다’는 의미다. 이 같은 봉합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치 갚아야 할 빚처럼 돌아오기 마련이다. 주로 IT(정보통신) 업계에서 쓰는 말인데, IT와 비(非)IT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요즘엔 어떤 기업과 조직도 ‘기술적 부채’의 함정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테크니컬 데트라는 개념은 기업 경영이라는 좀 더 확장적인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좀 더 의미를 정확하기 위해 조어(造語)를 하자면, ‘조직의 부채(a organizationl debt)’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그동안 감춰뒀거나 부지불식간에 봉합했던 조직상의 결함이 전에 겪어보지 못한 도전이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부채로 돌아온다는 개념이다. 업력(業歷)이 오랜 기업일 수록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한때 국내 유통산업의 독보적인 1위였던 롯데쇼핑의 ‘날개없는 추락’은 테크(기술)와 경영상의 봉합된 부채가 어떻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5년 30조원에 육박했던 롯데쇼핑 매출은 지난해 16조762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영업이익도 2015년 8537억원에서 지난해 346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순이익은 2017년 206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작년까지 내리 4년 연속 '마이너스'다. 4년 동안 적자로 날아간 금액이 1조9730억원에 달한다.
'테크니컬 데트'에 관한 롯데쇼핑의 결정적인 사례는 작년 4월 선보인 롯데ON(이하 롯데온)이다.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하이마트, 홈쇼핑, 롯데닷컴 등 기존 7개 계열사의 온라인 쇼핑을 통합한 조직으로 ‘롯데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1996년 롯데인터넷백화점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쇼핑의 개척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경영 수업' 시절 롯데닷컴 대표를 맡기도 했다.
정확한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롯데는 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롯데온을 만들었다. IT 계열사인 롯데정보통신을 비롯해 외부의 IT 서비스 회사들을 총동원하는데 수천억원이 소요됐다. 쿠팡, 네이버 등 디지털 유통 공룡들과의 일전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터라 롯데 내부 뿐만 아니라 유통업계의 관심도 컸다. 롯데는 그룹 임직원들에게 공짜 쿠폰을 나눠주는 등 롯데온의 흥행에 사활을 걸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온라인 쇼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찾는 물건이 안 보이고, 막상 사려고 들어가보면 품절이란 안내문이 뜨기 일쑤였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에 필적할 만한 배송 서비스가 없다는 것도 이용자들을 실망시켰다.
롯데온의 탄생 과정을 아마존이나 쿠팡의 초기와 비교해 보면 완벽하게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쇼핑에 IT 관련 자문을 해주는 한 전문가는 이렇게 비유했다. “아마존과 쿠팡은 허허벌판에 최첨단 기능으로 중무장한 신도시 혹은 신개념 공장을 지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 롯데도 무언가를 해야했는데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아마존처럼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던가, 아니면 기존 것을 '수리'하던가. 롯데는 후자를 택했다. 문제는 수리를 하려고 지하실을 뜯어보려고 했는데 설계도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일단 덮어두고 시간에 쫓겨 겉만 리모델링을 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롯데온은 롯데쇼핑에 소속돼 있는 7개 사업부문의 상품을 하나의 '코드'로 통일하는데에만 수개월을 보냈다. 백화점에서 파는 기저귀와 마트에서 파는 기저귀의 상품 코드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코드를 일일히 통일시키는 작업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IT 하청업체에 일감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우위의 기업 문화는 롯데온 출범 이후에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온에서 팔린 물건을 어느 사업부 실적으로 잡을 것인 지를 두고 옥신각신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롯데그룹 내부에선 “롯데홈쇼핑 실적이 좋은 건 롯데온에 깊숙히 발을 담그기 어려웠던 덕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롯데홈쇼핑은 태광그룹이 2대 주주여서 롯데쇼핑이라는 큰 우산에 편입돼 있지 않은 유일한 계열사다.
『베조노믹스』의 저자인 브라이언 두메인은 아마존이 정상에 오른 과정을 세 단어로 요약했다. 데이터, 진실, 최고의 실적이다. 최고의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는 것에서부터 사업의 기반을 세우고, 이들이 만든 데이터를 통한 계량화만을 진실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이를 통해 극단의 고객 서비스를 구현해 최고의 실적을 낳았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신동빈 롯데 회장은 롯데온을 총괄하던 조영제 사업부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롯데지주는 롯데온의 정상화를 위해 조만간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0년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롯데쇼핑이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테크니컬 데트라는 개념은 기업 경영이라는 좀 더 확장적인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다. 좀 더 의미를 정확하기 위해 조어(造語)를 하자면, ‘조직의 부채(a organizationl debt)’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그동안 감춰뒀거나 부지불식간에 봉합했던 조직상의 결함이 전에 겪어보지 못한 도전이나 위기에 직면했을 때 부채로 돌아온다는 개념이다. 업력(業歷)이 오랜 기업일 수록 이런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한때 국내 유통산업의 독보적인 1위였던 롯데쇼핑의 ‘날개없는 추락’은 테크(기술)와 경영상의 봉합된 부채가 어떻게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015년 30조원에 육박했던 롯데쇼핑 매출은 지난해 16조762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영업이익도 2015년 8537억원에서 지난해 3461억원으로 쪼그라들었다. 순이익은 2017년 206억원 적자를 시작으로 작년까지 내리 4년 연속 '마이너스'다. 4년 동안 적자로 날아간 금액이 1조9730억원에 달한다.
'테크니컬 데트'에 관한 롯데쇼핑의 결정적인 사례는 작년 4월 선보인 롯데ON(이하 롯데온)이다. 백화점, 마트, 슈퍼, 롭스, 하이마트, 홈쇼핑, 롯데닷컴 등 기존 7개 계열사의 온라인 쇼핑을 통합한 조직으로 ‘롯데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롯데쇼핑은 1996년 롯데인터넷백화점이라는 이름으로 온라인 쇼핑의 개척자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경영 수업' 시절 롯데닷컴 대표를 맡기도 했다.
정확한 규모를 알 수는 없지만, 롯데는 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롯데온을 만들었다. IT 계열사인 롯데정보통신을 비롯해 외부의 IT 서비스 회사들을 총동원하는데 수천억원이 소요됐다. 쿠팡, 네이버 등 디지털 유통 공룡들과의 일전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인 터라 롯데 내부 뿐만 아니라 유통업계의 관심도 컸다. 롯데는 그룹 임직원들에게 공짜 쿠폰을 나눠주는 등 롯데온의 흥행에 사활을 걸었다.
결과는 대참사였다. 온라인 쇼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찾는 물건이 안 보이고, 막상 사려고 들어가보면 품절이란 안내문이 뜨기 일쑤였다. 쿠팡의 로켓배송, 마켓컬리의 새벽배송에 필적할 만한 배송 서비스가 없다는 것도 이용자들을 실망시켰다.
롯데온의 탄생 과정을 아마존이나 쿠팡의 초기와 비교해 보면 완벽하게 정반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롯데쇼핑에 IT 관련 자문을 해주는 한 전문가는 이렇게 비유했다. “아마존과 쿠팡은 허허벌판에 최첨단 기능으로 중무장한 신도시 혹은 신개념 공장을 지었다. 이들과 맞서기 위해 롯데도 무언가를 해야했는데 방법은 두 가지였다. 아마존처럼 완전히 새로운 '도시'를 만들겠다고 마음 먹던가, 아니면 기존 것을 '수리'하던가. 롯데는 후자를 택했다. 문제는 수리를 하려고 지하실을 뜯어보려고 했는데 설계도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일단 덮어두고 시간에 쫓겨 겉만 리모델링을 할 수 밖에 없던 것이다”
롯데온은 롯데쇼핑에 소속돼 있는 7개 사업부문의 상품을 하나의 '코드'로 통일하는데에만 수개월을 보냈다. 백화점에서 파는 기저귀와 마트에서 파는 기저귀의 상품 코드가 서로 달랐던 것이다. 한 IT업계 관계자는 "코드를 일일히 통일시키는 작업을 하기 위해 베트남에 IT 하청업체에 일감을 맡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화점 우위의 기업 문화는 롯데온 출범 이후에도 장애물로 작용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롯데온에서 팔린 물건을 어느 사업부 실적으로 잡을 것인 지를 두고 옥신각신이 벌어지는 일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롯데그룹 내부에선 “롯데홈쇼핑 실적이 좋은 건 롯데온에 깊숙히 발을 담그기 어려웠던 덕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롯데홈쇼핑은 태광그룹이 2대 주주여서 롯데쇼핑이라는 큰 우산에 편입돼 있지 않은 유일한 계열사다.
『베조노믹스』의 저자인 브라이언 두메인은 아마존이 정상에 오른 과정을 세 단어로 요약했다. 데이터, 진실, 최고의 실적이다. 최고의 프로그래머를 고용하는 것에서부터 사업의 기반을 세우고, 이들이 만든 데이터를 통한 계량화만을 진실의 기준으로 삼았으며, 이를 통해 극단의 고객 서비스를 구현해 최고의 실적을 낳았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신동빈 롯데 회장은 롯데온을 총괄하던 조영제 사업부장의 사의를 수용했다. 롯데지주는 롯데온의 정상화를 위해 조만간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2020년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겪고 있는 롯데쇼핑이 새로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