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발표곡으로 다시 읽는 모차르트[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단 94초. 전 세계의 많은 클래식 애호가들이 이 짧은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21년 2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열린 한국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사진)의 연주를 보기 위한 것이었죠. 대체 무슨 곡이길래 연주 시간이 2분도 채 되지 않았을까요. 또 순식간에 끝나버릴 공연을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이 곡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의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입니다. 248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잠들어 있다가, 이날 마침내 조성진의 손끝에서 깨어났습니다. 조성진은 모차르트의 265번째 생일을 맞아, 그의 고향인 잘츠부르크에서 이 곡을 세계 초연으로 선보였습니다. 우리가 발견하지도 못하고 들어보지도 못한 모차르트의 작품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많은 화제가 됐고, 큰 기대를 모았죠.

'알레그로 D장조'는 어떤 곡이었을까요. 완성된 형태의 협주곡, 소나타 등이 아닌 습작처럼 만든 피아노 소품곡입니다. 하지만 처음 듣는 순간부터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시작부터 '아, 모차르트의 곡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으셨을 텐데요. 그의 음악적 특성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산책 가는 길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 듯한 경쾌한 선율이 흘렀습니다. 어떤 화려한 수식이나 군더더기 없이 담백했죠.

이 곡은 모차르트가 17세였던 1773년에 쓴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27살의 젊은 연주자 조성진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데요. 이날 조성진은 그때의 모차르트 모습을 재현하듯, 호기롭고 익살스러운 표정과 함께 발랄한 타건을 보여줬습니다.
미발표곡으로 다시 읽는 모차르트[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그런데 이 작품엔 모차르트의 남모를 고통이 담겨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가 이 작품을 쓸 당시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그의 빛나는 천재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로부터 시작됩니다.

궁정 음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6살이 되자, 그를 데리고 음악 여행을 떠났습니다.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을 두루 다녔습니다. 마냥 즐거운 여행처럼 보이지만, 그 여정은 엄격한 교육에 가까웠습니다. 레오폴트는 모차르트가 수많은 예술인과 다양한 음악을 접하며 성장하고, 성공 가도를 달리길 원했죠.

그렇게 모차르트의 여행은 10여 년간 수차례 반복됐습니다. 그가 35세에 생을 마감한 것을 감안하면, 인생의 3분의 1을 길 위에서 보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정의 대단원은 1773년 이탈리아 여행으로 끝이 났는데요. 하지만 모차르트는 레오폴트의 기대와 달리 좋은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최근 발표된 ‘알레그로 D장조’는 이 여행이 끝날 무렵 혹은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모차르트가 자괴감과 고통을 느끼던 중 이 곡을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모차르트는 많은 사람들에게 '천재'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죠. '음악의 신동'이라고도 불릴 정도니까요. 하지만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란 예로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 레오폴트의 정교하게 설계한 프로그램과 계획에 따라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죠. 물론 그 힘으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건 맞습니다. 그러나 레오폴트의 큰 기대로 모차르트는 방황도 거듭했죠. 그 갈등과 고뇌는 뮤지컬 ‘모차르트!’, 영화 ‘아마데우스’ 등에서 그려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탈피해 스스로 천재성을 완성한 인물입니다. 그는 여행이 끝나고 잘츠부르크로 돌아와 한동안 궁정 음악가로 활동했습니다. 그러다 1781년 레오폴트의 반대에도 빈으로 훌쩍 떠났는데요. 이는 세계 최초로 전업 작곡가의 길을 걷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왕실과 교회의 의뢰를 받아 작곡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감과 의지에 따라 창작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일어난 산업혁명도 그의 결정에 영향을 미쳤는데요. 산업혁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시민들은 왕과 귀족으로부터 자유와 평등을 외쳤습니다. 모차르트도 이런 분위기에 자극을 받았고, 이들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등 세계적인 명작도 이를 기점으로 탄생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에서 유독 밝고 경쾌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것도 그가 구축한 독특한 음악 철학 덕분입니다. 모차르트는 본인이 느낀 고통을 음악에 담으려 하지도 않았고, 과장해 표현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순수하고 아름다운 음악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려 했죠. 그런 그의 철학은 이 얘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열정이 넘치든, 격렬하든 아니든, 음악은 혐오감의 원인으로 표현되지 않아야 한다. 음악은 가장 공포스런 상황에서도 듣는 사람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아야 하며, 기쁘게 하고 매료시켜야 한다.”

그렇게 모차르트는 피아노 협주곡부터 오페라, 교향곡, 미사곡 등에 이르기까지 600여곡에 달하는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젠 또 하나의 아름다운 소품곡이 추가돼,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환하게 비추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지난달 27일 열린 조성진의 모차르트 미발표곡 '알레그로 D장조' 연주 영상. 유니버설뮤직 제공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