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음식의 대가 정관스님이 바라본 비건
전남 장성군 백양사 천진암. 산 중턱에 자리잡은 정관스님(사진)의 텃밭엔 경계가 없다. 어디까지가 밭이고, 어디까지가 숲인지 알 수 없었다. 작물들은 볼품없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탐스럽고 싱싱한 채소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님은 2월의 싸락눈을 맞으며 한 손에 광주리를 들고 텃밭으로 걸어들어갔다. 배추를 따서 그대로 한 입 베어 물더니 “고소하다”며 감탄했다. 그는 “겨울바람을 견딘 채소는 생명력이 더 강해요. 벌레먹은 잎도 아름답고 완벽하죠. 그대로 자연이니까요. 더 빨리, 더 크게 자라도록 하는 건 인간의 욕심”이라고 했다.

한국은 비건이 살기에 척박한 곳이라고 한다. 비건 메뉴, 비건 제품이 다양하지 않다. 하지만 한국은 대표적인 비건 음식 가운데 하나인 사찰음식이 가장 발달한 곳이다. 정관스님은 ‘한국 사찰음식의 대가’로 꼽힌다. 넷플릭스의 음식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에 출연하면서 글로벌 셰프들 사이에서도 유명해졌다. ‘글로벌 셰프계의 BTS’란 별명도 붙었다. 뉴욕타임스의 음식 담당기자 제프 고디너는 “정관스님의 음식은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었다”고 썼다.

비건이 중시하는 ‘연결’이란 키워드를 불교에선 ‘인연법’으로 설명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이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정관스님은 “단기간에 급격하게 살을 찌운 소를 먹으면 욕심과 탐욕으로 가득찬 에너지가 들어올 것”이라며 “이런 과도한 욕심이 인간 스스로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도 파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채식은 정신을 맑고 건강하게 한다”며 “식물은 생명치만큼의 햇빛과 물만 받아 생멸하는 단순한 생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관스님의 요리에 정해진 레시피는 없다. 계절과 성장 단계에 맞춰 씻고, 다듬고, 조리하고, 양념한다. 그에게 요리는 수행의 일부다. 채소를 기르고 요리하는 전 과정에서 교감한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연결의 순간’이다.

정관스님은 백양사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의 일부로 천진암 사찰음식 체험을 진행한다.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은 뒤 ‘음식 명상’을 한다. “음식이 내 몸과 마음에 어떻게 흐르는지 바라보는 것”이 음식 명상이다.

세계 각지의 유명 셰프들이 정관스님의 사찰음식을 배우기 위해 찾아온다. 정관스님은 스위스 취리히, 독일 베를린 등 세계 각지에서 발우공양하고 명상하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는 “100여 명의 외국인이 음식 명상 후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사찰음식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와 인생의 소명을 묻자 같은 답이 돌아왔다. 정관스님은 “나누기 위해서”라며 “사찰음식을 나누고 알리고 가르치는 일이 소명”이라고 말했다.

글=전설리/사진=김범준 기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