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신약 명가’로 불리는 한미약품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신약 후보물질을 사들였던 글로벌 제약사들의 ‘반납 릴레이’에 시달리더니 이번에는 미국 시판허가를 눈앞에 둔 항암제가 ‘보류’ 판정까지 받아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재임상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시판이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해석이 업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2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FDA는 아테넥스가 신청한 전이성 유방암 치료제 ‘오락솔’ 시판 허가에 대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최근 결정했다. 오락솔은 정맥주사로 맞는 항암제 ‘파클리탁셀’을 먹는 형태로 바꾼 신약으로, 주사제를 경구용으로 바꾸는 한미약품의 플랫폼 기술 ‘오라스커버리’가 적용됐다. 한미약품은 이 기술을 2011년 아테넥스에 넘겼다.

FDA는 오락솔이 정맥주사 형태 항암제에 비해 호중구 감소증 우려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항암제 등으로 인해 백혈구에 있는 호중구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들면 감염에 취약해져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FDA는 또 임상 1차 평가 변수인 객관적 반응률(ORR) 결과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며 “추가적인 안전성 평가를 위해 미국에서 신규 임상시험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아테넥스는 중남미 환자 등을 대상으로 한 임상 결과만 갖고 있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새로 임상을 하려면 엄청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며 “오락솔 시판이 불투명해졌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한미약품은 아테넥스와 함께 보완해야 할 임상시험 설계와 범위에 대해 논의한 뒤 FDA에 미팅을 요청할 계획이다.

신약 개발 기술을 앞세워 ‘국가대표급 제약사’로 도약한 한미약품의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2016년부터다. 2010년대 들어 성사시킨 10건의 해외 기술수출(총 8조6431억원) 가운데 절반인 5건이 반환된 탓이다. 이로 인해 지난해 매출과 영업이익이 동반 하락하면서 오랜기간 지켜온 제약·바이오업계 ‘빅5’ 자리마저 내줬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약품의 ‘1호 기술수출’ 주인공인 오락솔이 ‘퇴짜’를 맞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나올 수 있는 모든 악재가 한미약품에 쏟아지는 것 같다”는 얘기가 업계 일각에서 나오는 이유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오락솔의 수익 기여도가 높지 않은 만큼 FDA 허가가 보류돼도 별다른 타격은 없다”며 “호중구 감소증 치료제 ‘롤론티스’ 등 연내 FDA에 허가를 신청할 다른 신약이 있는 데다 28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곧 신약 명가의 위상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