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 만한 판은 직접 만들어야죠. 여러 판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엮이면 기발한 음악이 나오는 법입니다.”

서울 국립국악원에서 최근 만난 소리꾼 이희문(45·사진)은 다채롭게 음악 활동을 펼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희문은 여러 밴드에 몸담고 있다. 무속요 장단에 전자음악, 민요 가락을 섞은 ‘이희문프로젝트 날’, 펑키한 박자에 소리를 얹는 ‘오방신과’ 등에서 메인 보컬로 활동 중이다. 지난해에는 재즈밴드 프렐류드와 손잡고 ‘한국남자 2집’을 내놨다. 재즈피아니스트 고희안과는 경기소리와 피아노 선율이 어우러진 ‘에고프로젝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밴드 하나에만 주력해도 모자랄 판에 협업의 폭을 확대하는 이유가 뭘까. 그는 “2018년 국악밴드 ‘씽씽’ 해체 후 고민이 많아졌다. 내가 부르는 소리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지 고민이었다”며 “다양한 음악인과 만나 스스로를 실험대에 올리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 공연에도 나선다. 이희문은 4일 국립국악원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온라인 공연 시리즈 ‘사랑방중계’의 첫 주자로 나선다. 이희문프로젝트 날을 이끌고 무대에 올라 경기잡가와 선소리타령, 강원도아리랑 등을 들려준다.

이희문프로젝트 날은 2019년 이희문을 주축으로 박범태(장구), 임용주(신시사이저), 한웅원(드럼)으로 결성된 밴드다. 멤버 구성이 특이하다. 박범태는 동해안별신굿 이수자이고, 임용주는 소리를 음절 단위로 쪼개서 들려주는 모듈러 신시사이저를 다룬다. 이희문은 무속요 장단에 전자음악 반주를 얹은 채 경기소리를 불렀다. 그는 “멤버가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같은 곡이라도 다르게 풀어낼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여러 밴드 활동을 하는 그의 기준은 ‘독창성’이다. 전에 없던 음악을 선보이고 싶어서다. 다른 음악인들의 작품을 참조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는 “지루한 걸 못 견디는 성격이 라 전통예술이 지닌 아우라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싶지 않다”며 “정선아리랑을 록밴드처럼 노래할 수도 있고, 디스코로 풀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음악이란 장르도 넘어서고 있다. 지난 설 연휴에는 KBS 드라마 ‘구미호 레시피’에서 연기를 선보였다. 지난해에는 책 《깊은사랑 디렉토리》를 펴냈다.

“여러 장르에 손을 뻗다 보니 깊이가 없다고 지적하는 분도 있어요. ‘B급 소리꾼’이라고요. 그래도 뭐 어떤가요. 전통예술에 빠져들도록 진입장벽을 낮추다 보면 젊은 세대에서도 ‘귀명창’(국악 애호가)들이 나타날 겁니다.”

글=오현우/사진=신경훈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