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공항 줄게, 표 다오'
강원 양양공항은 2019년 이용객이 5만4000명에 그쳐 142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작년엔 이용객 수가 23만8000명으로 증가했지만, 총수용가능 인원(317만 명)의 7.5%에 불과했다. 2002년 개항 이후 수요 부족으로 ‘유령 공항’의 대명사가 됐다. 김영삼 대통령 공약 중 하나였다가 묻힐 뻔했으나, 15대 총선을 앞둔 1995년 말 건설계획이 확정돼 부활한 것이 두고두고 짐이 된 것이다.

선거 표심을 잡기 위한 ‘공항 정치’가 유령 공항을 만든 예는 수두룩하다. 전국 15개 공항 중 인천, 김포, 김해, 제주, 대구를 제외한 10곳이 적자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데는 이런 요인이 크다. 이들 공항의 최근 5년간 누적적자만도 3800억원에 이른다. 지금은 문 닫은 예천공항(군공항으로만 사용), 울진공항(항공대 비행훈련원으로 전용)과 공사 중단 후 배추밭으로 변한 김제공항 사례도 있다. 수요예측은 뒷전이고, ‘하늘길’을 연다며 정치인과 지자체가 불문곡직 밀어붙인 ‘지방공항 잔혹사’다.

정치 공항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수없이 등장했다. 선거를 치를 때마다 공항이 하나씩 생긴다고 할 정도였다. ‘노태우 공항’(청주), ‘김영삼 공항’(양양)은 물론, 유치에 공을 세운 정치인 이름을 딴 ‘한화갑 공항’(무안), ‘김중권 공항’(울진)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 탓에 미국에선 군함에 역사적 정치인 이름을 붙이는데, 우리는 공항에 붙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대구에선 대구·경북신공항특별법을, 광주는 광주공항이전특별법을 왜 안 해주느냐고 아우성이다. 국무총리까지 매년 100억원대 적자를 내는 무안공항에서 1시간 거리인 새만금국제공항 건립 의지를 다시 밝혔다. 경기 남부신공항, 충남 서산국제공항, 심지어 울릉도·백령도 등 섬 공항 건설도 거론된다.

‘공항 줄 테니, 표 다오’ 식이니, 이런 ‘가덕신공항 나비효과’는 정치인들이 자초한 셈이다. 뒷감당은 공항공사가 하는 듯하지만 결국 적자를 혈세로 막아야 한다. 이런 판국에 가덕도 주변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일가족 회사가 수만 평에 이르는 땅을 갖고 있다는 의혹마저 제기됐다. 자칫 공항 정치의 악취가 심하게 날 수 있다. 가덕신공항을 ‘노무현 공항’이라고 이름짓자는 주장도 있는데, 고인의 이름에 누가 되지 않을까 조금은 걱정된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