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개성음식'을 통해 고려·조선을 맛보다
남북한은 물론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던 2018년 봄 남북한 정상회담이 끝난 후 평양냉면집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전국적으로 북한 음식에 관심이 커진 계기였다. 30년 넘게 한식을 연구해 온 정혜경 호서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통일 후 우리 민족의 밥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봤다”고 했다.

정 교수는 특히 황해도 개성을 주목했다. 그가 쓴 《통일식당 개성밥상》에는 개성 지방의 음식부터 주류, 차, 식재료 등에 이르기까지 밥상에 올라오는 모든 것이 망라돼 있다. 그는 “개성은 500년 역사를 지닌 고려 수도이자 고려시대 식문화의 최정점에 섰던 곳”이라며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를 담고 있는 개성 음식 연구는 필수”라고 강조한다.

저자에 따르면 개성음식은 ‘중용’의 미덕을 갖췄다. 지리적 조건 때문에 남부지방의 짜고 매운 맛과 북부지방의 싱겁고 심심한 맛 가운데서 균형을 맞췄다는 것이다. 저자는 “개성은 한반도 중심에 있고 바다와 산맥, 평야를 품은 지역”이라며 “다양한 식재료를 다루며 식문화가 성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적인 요소도 개성음식의 토대를 갖추는 데 한몫했다. 고려시대엔 도읍지로서 왕실 문화를 흡수했고, 조선시대 들어선 부를 축적한 개성상인들이 화려한 개성 식문화를 이어왔다.

개성음식의 다양성도 빼놓을 수 없다. 국제 무역이 활발해 여진과 거란, 송나라, 원나라 등으로부터 식문화를 받아들였다. 저자는 “설렁탕과 곰탕은 원나라에서, 증류주는 페르시아 지방에서 들여온 것으로 추정된다”며 “국제무역은 개성음식을 한층 다채롭게 했다”고 설명한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개성 밥상을 차리는 법을 소개한다. 이규보, 이색, 황진이부터 작가 박완서까지 개성을 대표하는 인물 네 명이 즐겨먹은 식단을 알려준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