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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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이자’ 이야기는 인류 역사에서 정말 많이 등장합니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게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이죠. 오래된 법인 함무라비 법전에서부터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 성경 구절, 중세 교회, 셰익스피어 소설을 거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찬반 논쟁은 엎치락뒤치락했습니다. 경제학이 성립한 이후 이자를 받는 게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모두 정당하다는 게 입증되긴 했지만요. 논쟁의 역사를 되짚어 봅시다.

BC 18세기 고대 바빌로니아의 왕이 제정했다는 함무라비 법전(Code of Hammurabi)은 이자를 받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자율 상한을 정했습니다. 은(銀)을 빌려줄 때 20%, 곡물을 빌려줄 때는 33%로 제한했습니다. 왜 차이를 뒀을까요? 곡물이 은보다 위험도가 높았기 때문입니다. 작황이 나빠질 경우, 곡물을 되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았던 것입니다. 위험과 수익 간의 관계를 고대 사람들도 생각했다니 놀랍지 않습니까? 자본을 빌리면 비용을 지불한다는 것이었지요. 돈을 빌려 쓰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부채로 자본을 조달해서 이자보다 더 벌면 되었지요.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죄악시했습니다. 당대 지식인이던 아리스토텔레스는 ‘화폐불임 이론(doctrine of the sterility of money)’으로 자기 논리를 무장했습니다. 그는 동식물은 자연스럽게 번식할 수 있지만, 화폐가 증식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라고 봤습니다.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대출과 대부는 그에게 부도덕한 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상업을 통한 이윤 획득도 비난했습니다. 이윤을 위한 생산이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용을 위한 생산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본 것이죠. 상인과 장사꾼을 사악한 존재로 본 철학자였습니다. 경제에 관한 한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소 무지했다는 게 정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서양 사상에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유대-기독교적 전통 역시 돈을 버는 행위, 이자를 받는 행위를 좋지 않게 봤고 심지어 부도덕한 일로 간주했습니다. ‘빌려주되 아무것도 바라지 마라’, ‘돈을 빌려주고 고리대금을 얻지 말지어다’라는 문장도 구약성서에 있습니다. ‘낯선 사람에게는 고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는 예외 구절도 있습니다만, 이자에 대한 반감이 지배적입니다. 이자나 고리대금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관은 중세 기독교 성직자에게도 이어졌습니다. 5세기 교황 레오는 “사고 파는 일을 하면서 죄를 범하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며 상업과 이윤, 이자를 교회법으로 막았습니다. 1139년 라테란 종교회의 포고령은 ‘가증스럽고 수치스러우며 만족할 줄 모르는 대금업자들의 탐욕’을 비난했습니다. 아무리 이자율이 낮아도 그랬습니다. 40여 년 뒤 교회는 고리대금업자를 파면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이 그때라면 은행들은 모조리 불탔을지 모릅니다.

현실 비판적인 소설가들도 돈과 이자를 좋지 않게 그렸습니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가 쓴 ‘베니스의 상인’은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을 재산을 탕진해서 돈을 빌려야 하는 바사니오보다 더 악마화했습니다. 이유는 바사니오를 대신해서 돈을 빌리러 온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를 싫어했던 샤일록이 돈을 빌려주는 대가로 잔인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돈을 기한 내 갚지 못할 경우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베어내겠다는 조건이었죠. 이야기의 결말을 여기에 길게 쓸 수는 없습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은 악마가 되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고리대금업(금융업)은 우수한 인종이 아닌 나쁜 인종이 하는 사악한 사업이라는 당대 유럽의 인식 때문에 유대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금융업뿐이었고, 결국 유대인 금융기업이 세계 금융시장을 석권하게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경제학이 정립되면서 자본과 이자는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있으나 자본이 없는 사람은 이자를 주고 자본을 빌릴 수 있게 됐습니다. 금융의 시작입니다. 이런 금융은 16세기 네덜란드에서 이미 꽃피기 시작했습니다. 신대륙을 발견하고, 인도에서 나는 향신료 무역을 하려면 자본이 필요했고, 사업가는 자본가로부터 돈을 빌렸습니다. 현대에서도 저축을 통해 축적된 자본이 새로운 사업으로 이어지고, 사람을 고용하고, 결국 좋은 일자리와 소득을 만들어냅니다. 이제 우리는 자본을 빌려 쓰는 데 따르는 비용으로 이자를 당연하게 부담하게 됐습니다.

대입 자기소개서 독서 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토드 부크홀츠의 《러쉬!》는 ‘금리가 인간을 화합하게 한다’고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은행을 매개로 모르는 사람끼리 신용(credit)을 전제로 돈을 빌려주고 받습니다. 신용이라는 의미의 영어는 원래 믿음(trust)을 뜻합니다. 평판, 신용이 좋으면 우리는 더 좋은 이웃이 됩니다. 이자를 보는 시각은 이렇게 변해 왔습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함무라비 법전을 검색해서 채권자와 채무자가 이자를 어떻게 주고 받으라고 했는지를 알아보자.

② 아리스토텔레스는 상업과 이윤, 이자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이유를 알아보자.

③ 토드 부크홀츠의 책 《러쉬》를 읽어 보고 그 내용을 독후감으로 써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