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기사 과로사 대책'이 불러온 나비 효과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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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쇼핑, G마켓, 11번가 등 마켓 플레이스라고 불리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마진’이다. ‘남는 장사’여야 사업을 지속할 이유가 있는 것인데, 이를 위한 핵심이 택배비다.
구매자에게 고지된 택배비는 2500원이지만, 택배 대리점들과 협상을 잘 하면 여기에서 ‘이문’을 남길 수 있다. 업계에선 이를 ‘백마진’이라 부른다. 택배 물량이 많을수록 온라인 판매상의 협상력도 커진다. 취급 물량이 수만 건 이상인 대형 판매상들은 택배사와 박스당 1700원으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택배가 최근 전국 대리점에 공문을 발송, 온라인 쇼핑 택배비를 최대 21% 올리겠다고 했다. 대리점들이 온라인 판매상들과 협상할 때 기본 단가를 올려받으라는 얘기다. 가장 기본이 되는 상자(80cm, 5㎏ 이하)에 대한 운반비를 기존 1750원에서 2000원으로 상향 조정하라는 식이다.
롯데택배는 지난해 택배 시장 기준으로 점유율(13.4%) 3위사다. CJ대한통운(50.1%)이 압도적인 1위고, 한진(13.8%)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로젠택배(7.6%), 우체국택배(7.3%)가 뒤를 잇고 있다. 업계 3위가 먼저 치고 나온 만큼 다른 택배사들도 단가 인상에 나설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당분간 택배비 단가 인상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비 인상은 출혈 경쟁에 지쳐 있는 업계의 오랜 숙원”이라면서도 “과거에도 택배사 전체가 일괄적으로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담합에 대한 우려에다 소비자 저항 등 경우의 수가 복잡해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선 롯데택배가 단가 인상에 나설 수 밖에 없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발단은 올 1월 당정이 주도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다.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정은 택배사에 자동 분류 시설 설치 및 분류 인력 투입을 사실상 강제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회적 합의기구는 택배사가 택배비를 인상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국내 3위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롯데택배는 그동안 물류 자동화 등 시설 투자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한진, 로젠택배 등도 마찬가지다. 자동화 설비는 고사하고, 당장 분류 인력을 수천명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단가 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은 전국을 ‘커버’하는 곤지암 물류센터 내에 자동화 설비를 완비한 데다 분류 작업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투자도 진행 중이다. CJ대한통운이 4일 소형 택배 상품 전담 분류기인 '멀티 포인트'를 서브터미널 40곳에 추가 설치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CJ대한통운이 택배비 인상에 나서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쿠팡과의 경쟁이다. 오는 11일 미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있는 쿠팡은 약 4조원을 조달해 전국에 물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쿠팡은 상장 신청서에서 자사 물류 시설과 전국 모든 가구의 거리를 11㎞ 이내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마존의 ‘16㎞ 이내’를 뛰어넘는 것으로 사실상 국내 1위 택배사가 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물류업계의 평가다.
이에 대해 유통업체 관계자는 “쿠팡이 제3자 판매를 강화하고, 더 나아가 3자 물류로까지 사업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마켓 플레이스 업체들 입장에선 판매자들을 뺏길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1번가, G마켓 등 여러 채널에서 물건을 판매 중인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 A씨는 “송장 업무 등 편의 차원에서 보통 택배사 한 곳과 거래한다”며 “현재 거래 중인 택배사가 단가를 올리면 아직 올리지 않은 다른 곳으로 갈아탈 수 밖에 없는데 쿠팡도 유력한 대안”이라고 했다.
11번가가 우체국택배와 제휴해 최근 상생택배를 도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스당 2300원에 운송을 해주는 서비스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른 쇼핑몰에 비해 200원의 택배비를 절약할 수 있다. 판매업체는 ‘백마진’을 얻을 수는 없지만 낮은 택배비로 구매가 늘어나면 이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온라인 판매상 B씨는 “11번가에서 MD(상품기획자)가 상생택배를 이용하면 상품 노출을 한 번 더 해준다고 제안이 왔다”며 “한진택배를 이용했는데 우체국택배로 갈아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CJ대한통운까지 가세해 택배사들이 일괄적으로 단가 인상에 나설 경우 온라인 소상공인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 관계자는 “택배비는 물류회사(정확히는 대리점)와 화주인 온라인 판매상들이 모두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는다”며 “기본 단가를 올린다고 하더라도 많이 파는 대형 화주들에겐 적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덩치가 작은 소상공인들만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구매자에게 고지된 택배비는 2500원이지만, 택배 대리점들과 협상을 잘 하면 여기에서 ‘이문’을 남길 수 있다. 업계에선 이를 ‘백마진’이라 부른다. 택배 물량이 많을수록 온라인 판매상의 협상력도 커진다. 취급 물량이 수만 건 이상인 대형 판매상들은 택배사와 박스당 1700원으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택배가 최근 전국 대리점에 공문을 발송, 온라인 쇼핑 택배비를 최대 21% 올리겠다고 했다. 대리점들이 온라인 판매상들과 협상할 때 기본 단가를 올려받으라는 얘기다. 가장 기본이 되는 상자(80cm, 5㎏ 이하)에 대한 운반비를 기존 1750원에서 2000원으로 상향 조정하라는 식이다.
롯데택배는 지난해 택배 시장 기준으로 점유율(13.4%) 3위사다. CJ대한통운(50.1%)이 압도적인 1위고, 한진(13.8%)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다. 로젠택배(7.6%), 우체국택배(7.3%)가 뒤를 잇고 있다. 업계 3위가 먼저 치고 나온 만큼 다른 택배사들도 단가 인상에 나설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와 관련, CJ대한통운 관계자는 “당분간 택배비 단가 인상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택배업계 관계자는 “택배비 인상은 출혈 경쟁에 지쳐 있는 업계의 오랜 숙원”이라면서도 “과거에도 택배사 전체가 일괄적으로 올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담합에 대한 우려에다 소비자 저항 등 경우의 수가 복잡해 성공을 거둔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선 롯데택배가 단가 인상에 나설 수 밖에 없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문제의 발단은 올 1월 당정이 주도한 ‘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을 위한 사회적 합의’다. 과로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정은 택배사에 자동 분류 시설 설치 및 분류 인력 투입을 사실상 강제했다.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사회적 합의기구는 택배사가 택배비를 인상하는 방안을 ‘권고’했다.
국내 3위 사업자임에도 불구하고, 롯데택배는 그동안 물류 자동화 등 시설 투자에 공을 들이지 않았다. 이런 사정은 한진, 로젠택배 등도 마찬가지다. 자동화 설비는 고사하고, 당장 분류 인력을 수천명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단가 인상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CJ대한통운은 전국을 ‘커버’하는 곤지암 물류센터 내에 자동화 설비를 완비한 데다 분류 작업을 손쉽게 할 수 있는 시설에 대한 투자도 진행 중이다. CJ대한통운이 4일 소형 택배 상품 전담 분류기인 '멀티 포인트'를 서브터미널 40곳에 추가 설치한다고 발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CJ대한통운이 택배비 인상에 나서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쿠팡과의 경쟁이다. 오는 11일 미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있는 쿠팡은 약 4조원을 조달해 전국에 물류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쿠팡은 상장 신청서에서 자사 물류 시설과 전국 모든 가구의 거리를 11㎞ 이내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마존의 ‘16㎞ 이내’를 뛰어넘는 것으로 사실상 국내 1위 택배사가 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물류업계의 평가다.
이에 대해 유통업체 관계자는 “쿠팡이 제3자 판매를 강화하고, 더 나아가 3자 물류로까지 사업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높다”며 “마켓 플레이스 업체들 입장에선 판매자들을 뺏길 위험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1번가, G마켓 등 여러 채널에서 물건을 판매 중인 온라인 쇼핑몰 판매자 A씨는 “송장 업무 등 편의 차원에서 보통 택배사 한 곳과 거래한다”며 “현재 거래 중인 택배사가 단가를 올리면 아직 올리지 않은 다른 곳으로 갈아탈 수 밖에 없는데 쿠팡도 유력한 대안”이라고 했다.
11번가가 우체국택배와 제휴해 최근 상생택배를 도입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박스당 2300원에 운송을 해주는 서비스다. 소비자 입장에선 다른 쇼핑몰에 비해 200원의 택배비를 절약할 수 있다. 판매업체는 ‘백마진’을 얻을 수는 없지만 낮은 택배비로 구매가 늘어나면 이로 인해 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온라인 판매상 B씨는 “11번가에서 MD(상품기획자)가 상생택배를 이용하면 상품 노출을 한 번 더 해준다고 제안이 왔다”며 “한진택배를 이용했는데 우체국택배로 갈아탈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능성이 낮긴 하지만, CJ대한통운까지 가세해 택배사들이 일괄적으로 단가 인상에 나설 경우 온라인 소상공인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 관계자는 “택배비는 물류회사(정확히는 대리점)와 화주인 온라인 판매상들이 모두 개별적으로 계약을 맺는다”며 “기본 단가를 올린다고 하더라도 많이 파는 대형 화주들에겐 적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고, 결과적으로 덩치가 작은 소상공인들만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