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 금리가 빠르게 치솟으면서 글로벌 투자자들이 신흥국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 돈을 빼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 등 선진국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신흥국에 대한 투자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7일 국제금융협회(IIF) 데이터를 인용해 지난주 중국 러시아 인도 등 30개 신흥국에서 하루 평균 2억9000만달러(약 3280억원) 규모의 자본이 빠져나갔다고 보도했다. 주간 기준으로 신흥국에서 자본이 순유출된 것은 작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코로나19 백신 개발 소식 등에 따라 지난해 4분기 신흥국 주식·채권 시장에 1800억달러의 자금을 쏟아부었다. 올 들어서도 이 같은 분위기는 크게 바뀌지 않았다. 지난 1월 신흥국 시장에 순유입된 자본은 200억달러에 달했고, 2월에도 약 100억달러 규모의 자금이 추가로 유입됐다.

하지만 최근 미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신흥국에서 발을 빼는 투자자가 늘고 있다. 신흥국 자산은 일반적으로 선진국 채권 수익률이 오르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 금리가 낮은 선진국에서 돈을 빌려 금리가 높은 신흥국에 투자하는 방식이 효과를 내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미 국채 금리는 지난 5일 한때 연 1.6%를 넘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된 작년 3월 9일 연 0.54%로 역대 최저치를 찍은 뒤 1년 만에 1.0%포인트 이상 뛴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미 국채 금리가 올해 말 연 1.9% 수준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2013년 글로벌 금융 시장을 강타한 이른바 ‘긴축 발작’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당시 미 중앙은행(Fed)이 자산 매입 규모를 축소하겠다는 뜻을 내비치자 미 국채 금리가 폭등하기도 했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통화 완화 정책을 지속한다는 방침을 밝혀왔지만, 물가 상승과 경기 회복 속도가 예상보다 빠를 경우 긴축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로빈 브룩스 II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세계 경제가 여전히 회복 초기 단계인 점을 감안할 때 신흥국에서 자본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은 놀랄 말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