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엔 애써 눈감는 '좋은 채무론' [여기는 논설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국제 원자재 가격 강세와 미국 국채 수익률(금리) 고공행진으로 세계 금융시장이 연일 요동치고 있다. 지난 주말엔 미국 상원이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슈퍼 부양책'을 50대 49라는 아슬아슬한 표 차이로 통과시키면서 물가상승 기대심리를 반영하는 미 국채 수익률의 상승세에 기름을 부었다. 지난 5일 연 1.54%까지 오른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작년 코로나 쇼크에 따른 저점(0.51%)과 비교하면 거의 3배 급등했다. 이 여파로 미국 증시는 물론, 한국 종합주가지수도 지난 5일 한때 3000선이 무너지며 살얼음판을 연출했다. 그만큼 주식시장은 금리 상승을 싫어하고, 결과적으로 인플레이션과는 상극이다.
이처럼 '한 세대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한 현실 자체를 부인하긴 어렵다. 제롬 파월 미국 증앙은행(Fed) 의장도 "일시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더라도 인내하겠다"며 인플레 현실화 위험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런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애써 눈감고 보지 않으려는 듯한 관점이 있으니, 바로 '좋은 채무론'이다.
최근 그런 주장을 펼칠 근거가 하나 나오긴 했다. 작년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우리나라 국고채 발행이 2019년 계획보다 45조원 가량 증가했지만, 관련 이자비용이 예상보다 2조6000억원 줄어든 17조3000억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연 2.6%였던 국고채 예상 금리가 글로벌 초저금리의 영향으로 1%포인트 이상 떨어져 국고채 발행비용이 현저히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경제성장률이 국고채 발행의 이자비용보다 높으면 국가순부채 비율이 감소한다는 주장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한 나라 재정의 건전성을 평가할 때 채무 규모,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 뿐 아니라 이자비용 부담까지 다각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 자체가 물론 틀린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파월 의장도 인플레이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이른바 '좋은 채무론'은 인플레이션의 도래를 마치 딴나라 얘기처럼 못본 체 하고 있다. 단기(短期)도 아닌, 중기(中期) 이상의 금리 수준을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은 낮은 금리 부담을 내세워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국가순부채 비율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더라도 앞으로 그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저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와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의도적으로 펼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고 하는 결과론적 설명 이상이 아닌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은 추세가 2000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도 인플레이션이 그 기간동안 세계 경제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랑 다를 게 없다. 중국이라는 '세계의 공장'이 글로벌 물가를 떨어트리고, 아마존 유통혁명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저물가를 오랜동안 고착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결국 퇴조하고 인플레가 세계 경제의 전면에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물가상승은 어느 정도 예상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필요에 따라 '좋은 채무'나 '좋은 적자'를 설명하는 근거로 과거 뉴노멀 시대 잣대만 들이대는 꼴이다.
재정적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통화이론(MMT)도 정부가 걱정해야 할 일로 인플레이션을 들고 있다. MMT 주창자들은 경제정책이 소득과 부를 공평하게 분배한다면 적자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물가상승률을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전제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일각의 '좋은 채무론'은 이런 부분을 도외시한 반쪽짜리 주장이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장률은 제자리인데 무리한 부양책을 쓰게 되면 경제 체질은 바뀌지 않은 채 인플레로 인한 실질성장률 하락만 초래할 위험이 크다. 중요하게는 글로벌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저물가의 혜택을 누렸지만, 그 비용과 대가는 아직 거의 치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빚으로 쌓아올린 경제와 과잉유동성의 가장 큰 적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란 점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좋은 채무론'이 주장하는 '성장률>이자율'의 환경이 인플레 시대엔 금세 역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
이처럼 '한 세대 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인플레이션이 글로벌 경제에 먹구름을 드리우기 시작한 현실 자체를 부인하긴 어렵다. 제롬 파월 미국 증앙은행(Fed) 의장도 "일시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더라도 인내하겠다"며 인플레 현실화 위험을 인정했다. 그런데 이런 세계 경제의 흐름을 애써 눈감고 보지 않으려는 듯한 관점이 있으니, 바로 '좋은 채무론'이다.
최근 그런 주장을 펼칠 근거가 하나 나오긴 했다. 작년 네 차례 추가경정예산 편성으로 우리나라 국고채 발행이 2019년 계획보다 45조원 가량 증가했지만, 관련 이자비용이 예상보다 2조6000억원 줄어든 17조3000억원에 그쳤다는 것이다. 연 2.6%였던 국고채 예상 금리가 글로벌 초저금리의 영향으로 1%포인트 이상 떨어져 국고채 발행비용이 현저히 감소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경제성장률이 국고채 발행의 이자비용보다 높으면 국가순부채 비율이 감소한다는 주장으로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한 나라 재정의 건전성을 평가할 때 채무 규모, 국가채무비율, 증가 속도 뿐 아니라 이자비용 부담까지 다각적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이 자체가 물론 틀린 주장은 아니다. 그러나 파월 의장도 인플레이션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데, 이른바 '좋은 채무론'은 인플레이션의 도래를 마치 딴나라 얘기처럼 못본 체 하고 있다. 단기(短期)도 아닌, 중기(中期) 이상의 금리 수준을 예측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은 낮은 금리 부담을 내세워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하고 국가순부채 비율이 오히려 감소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더라도 앞으로 그런 상황이 지속될 것이란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저금리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국 중앙은행이 양적완화와 마이너스금리 정책을 의도적으로 펼친 결과이기도 하다. '지나고 보니 그렇더라'고 하는 결과론적 설명 이상이 아닌 것이다.
경제성장률이 이자율보다 높은 추세가 2000년 이후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도 인플레이션이 그 기간동안 세계 경제의 전면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랑 다를 게 없다. 중국이라는 '세계의 공장'이 글로벌 물가를 떨어트리고, 아마존 유통혁명과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 저물가를 오랜동안 고착시킨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정상'(New Normal)이 결국 퇴조하고 인플레가 세계 경제의 전면에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도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얘기하면서 물가상승은 어느 정도 예상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도 필요에 따라 '좋은 채무'나 '좋은 적자'를 설명하는 근거로 과거 뉴노멀 시대 잣대만 들이대는 꼴이다.
재정적자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현대통화이론(MMT)도 정부가 걱정해야 할 일로 인플레이션을 들고 있다. MMT 주창자들은 경제정책이 소득과 부를 공평하게 분배한다면 적자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고 한다. 다만, 물가상승률을 적정한 수준에서 유지하는 전제는 필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일각의 '좋은 채무론'은 이런 부분을 도외시한 반쪽짜리 주장이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장률은 제자리인데 무리한 부양책을 쓰게 되면 경제 체질은 바뀌지 않은 채 인플레로 인한 실질성장률 하락만 초래할 위험이 크다. 중요하게는 글로벌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저물가의 혜택을 누렸지만, 그 비용과 대가는 아직 거의 치르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빚으로 쌓아올린 경제와 과잉유동성의 가장 큰 적은 인플레이션과 금리 상승이란 점을 똑똑히 인식해야 한다. '좋은 채무론'이 주장하는 '성장률>이자율'의 환경이 인플레 시대엔 금세 역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장규호 논설위원 daniel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