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이 국내 증시에서 50거래일 연속으로 주식을 내다팔며 사상 최장기간 순매도 기록을 이어갔다. 이 기간 순매도 금액만 약 15조원에 달한다. 연기금의 순매도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처럼 연기금이 국내 증시를 짓누르자 개인투자자는 물론 자산운용업계에서도 “연기금의 운용 전략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연기금은 11일 주식시장에서 284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코스닥시장에선 160억원을 순매수했지만 유가증권시장에서 3005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날도 연기금은 오전까지 순매수를 이어가다가 오후에 순매도로 돌변했다. 동시호가 시간대인 오후 3시20분 직전까지 1000억원대를 순매수하던 연기금은 이후 10분 만에 4000억원어치에 육박하는 매물을 쏟아냈다.

연기금의 순매도는 작년 12월 24일 시작돼 석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이 기간 14조9771억원어치를 팔았다. 연기금의 매도세가 자산배분 차원의 행동임을 감안할 때 증권업계에선 앞으로 연기금이 최소 15조원대의 추가 매물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올해 국내 주식 목표비중(16.8%)과 작년 말 실제 비중(21.2%)에 따른 올해 말까지의 예상 매도 금액이 33조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매도 물량은 상반기 내내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국민연금 국내 주식 자금을 위탁 운용하는 한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는 “국민연금 측에서 지난해 말 시장이 급등하며 주식 비중 축소를 전혀 진행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연초부터 강도 높은 포트폴리오 축소 지시를 내리고 있다”며 “시장의 변동성을 키우는 오전 매수, 오후 매도 전략도 포트폴리오 축소 과정에서 수익률 하락을 최소화하라는 운용 지시에 운용사들이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연기금의 기계적인 매도가 끝없이 계속되면서 기관투자가들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현재의 자산배분 계획이나 운용전략은 철강과 화학 등 경기순환주가 국내 시장을 이끌던 2000년대 수립된 것”이라며 “주가의 등락이 반복되는 이들 종목에서는 매도 타이밍을 정확하게 잡고 필요할 때 되사는 전략이 유효하지만, 지금처럼 국내 증시가 성장주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에서는 오히려 기업들의 주가 모멘텀을 깨뜨리는 결과만 낳는다”고 지적했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