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터 / 사진=한경DB
양자컴퓨터 / 사진=한경DB
슈퍼컴퓨터보다 연산능력이 훨씬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양자컴퓨터가 주식시장의 '판'을 바꿀까요. 독일 증권거래소(도이체뵈르제)가 신기술 전략의 일환으로 증권거래소의 각종 리스크 분석업무에 양자컴퓨터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섰습니다. 기존 슈퍼컴퓨터로도 최장 10년이 걸리던 분석업무가 30분 이내의 짧은 시간 안에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소식입니다.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도이체뵈르제는 최근 양자컴퓨터와 관련한 초기 파일럿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양자컴퓨터 관련 핀테크 회사인 JoS퀀텀과 협력해 비즈니스 리스크 모델과 관련한 양자 알고리즘을 개발키로 한 것입니다.

도이체뵈르제가 개발을 추진 중인 양자 알고리즘은 금리변화나 무역 분쟁 같은 거시경제 상 큰 이벤트나 경쟁 구도의 변화, 신규 규제의 도입과 같은 외부 요인에 의한 금융시장의 충격을 예측하고 분석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같은 거시경제 모델에는 수백 개의 변수가 존재하며, 각 단계에서 가정을 변경할 경우 리스크 수준도 천차만별로 바뀝니다.
독일 증권거래소의 양자 컴퓨터 도입 추진 보도 기사/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홈페이지 캡쳐
독일 증권거래소의 양자 컴퓨터 도입 추진 보도 기사/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 홈페이지 캡쳐
이와 관련한 컴퓨터 분석은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이라 불리는데 기존 컴퓨터에선 모델의 복잡도와 매개변수 수에 따라 계산시간이 몇 분에서 몇 시간, 때로는 며칠까지 다양하게 걸린다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에선 계산이 며칠이 걸리면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최소한 하루 이내에는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이체뵈르제 측은 기존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에서 최대 10년이 걸린다는 1000개의 매개변수를 집어넣어도 30분 이내의 이른 시간 안에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JoS퀀텀과 도이체뵈르제 측은 2025년께면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리스크 분석이 상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도이체뵈르제의 클라우드 비즈니스 담당자인 미하엘 기르크는 "양자 컴퓨터가 비즈니스 활동의 위험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계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빼어난 연산능력을 자랑하는 양자컴퓨터는 그동안 스텔스기 설계나 고성능 인공지능(AI) 개발 등을 위해 록히드마틴, 구글과 같은 미국 대기업이 주로 사용해 왔습니다. 양자컴퓨터의 활용 분야는 매우 넓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배송업체의 경우, 가장 효율적인 배송노선을 실시간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같은 원리로 도심의 자동차 정체 해소, 빠른 길 찾기에도 유용합니다. 상습 정체 지역을 운행하는 자동차의 위성항법 시스템(GPS) 데이터를 수집해 양자컴퓨터가 주행 중인 수백 대 차량이 목적지까지 가는 최적의 길을 실시간으로 찾아낼 수 있게 됩니다. 과거에는 다수의 차량이 최적의 길을 동시에 찾으려면 슈퍼컴퓨터를 이용하더라도 수십 분이 소요됐지만,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수초 안에 계산이 끝난다고 합니다. 자율주행차 개발 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관련 업계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각종 신소재 개발, 개인별 특성에 맞는 맞춤형 온라인 광고, 리스크 분석을 마친 금융상품 개발, 신약개발, 안면·홍채 인식 등 보안 분야에서도 높은 활용도가 예상됩니다.

양자컴퓨터라는 개념은 1982년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먼 교수가 처음 제시했습니다. 이어 1985년 데이비드 도이치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구체적인 개념을 정리했다고 합니다. 기존 컴퓨터와 달리 전자 등 양자역학적 물리현상을 이용해 자료를 처리합니다. 2011년 디웨이브시스템스라는 회사가 세계 최초로 양자컴퓨터를 상용화했습니다.
기존 컴퓨터 대비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양자컴퓨터/도이체뵈르제 홈페이지 캡쳐
기존 컴퓨터 대비 탁월한 성능을 보이는 양자컴퓨터/도이체뵈르제 홈페이지 캡쳐
복잡한 세상이 말 그대로 눈 돌릴 새 없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일, 현실성이 없거나 경제성이 없다고 여겨지던 일들도 어느 순간부턴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시대의 변화에 한번 뒤처지면 쫓아가는 것은 그만큼 더 어려워집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분야를 막론하고 미래에 관한 관심과 대비가 소홀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주린이'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주식이 전 국민의 관심사가 된 시점이지만 주식거래의 기반환경, 상품개발의 근간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부진해 보이기도 합니다. 눈 크게 뜨고 세상 변화에 미리부터 대비해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