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 히트상품] ‘K제약’의 대표주자, HK이노엔의 ‘케이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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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방송에서 귀가 닳도록 떠드는 ‘K 시리즈’는 사실 10년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었다. 반도체, TV 등 전자·정보기술(IT) 분야를 빼면 세계시장을 주름잡는 한국산(産)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물꼬가 트이자 ‘K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푸드, 뷰티, 게임 분야로 넓어지더니 이제는 방역에도 K를 붙일 정도로 흔해졌다.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입지를 넓혀가는 산업에는 자연스럽게 K란 접두어가 따라붙게 됐다. K를 달고 태어난 국산 신약
2019년 3월 ‘대한민국 30호 신약’으로 세상에 나온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K-CAB·성분명 테고프라잔)은 태어날 때부터 K를 달고 나왔다.
‘한국이 만든 P-CAB(Potassium-Competitive Acid Blocker·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 치료제’란 의미다. ‘위식도역류질환 시장에서의 K팝 같은 존재가 되자’는 염원을 이름에 새겼다고 한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딱 2년 된 ‘새내기 신약’이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K제약’의 시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단 출시 2년 만에 국내 시장을 완전히 접수했다.
출시 첫해인 2019년 298억 원이었던 원외처방액을 지난해 725억 원으로 끌어올리면서 연간 9000억 원에 달하는 국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의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누적 처방액 1000억 원을 달성하는데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31개 국산 신약 중 가장 빠른 속도다.
올해 매출은 1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예상대로 되면 LG화학의 ‘제미글로’(당뇨병 치료제)와 보령제약의 ‘카나브’(고혈압 치료제)에 이은 ‘국산 3호 블록버스터’가 된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케이캡
케이캡은 이름에 걸맞게 해외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15년 중국에 9500만 달러(약 1140억 원)짜리 기술수출을 성사시켰고, 2019년에는 멕시코 등 중남미 17개국에 8400만 달러(약 1008억 원)어치 수출계약을 맺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몽골 싱가포르에서도 허가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케이캡이 손을 뻗은 나라는 모두 24개국.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았다. 조만간 유럽과 일본 시장도 노크할 계획이다.
이 중 HK이노엔이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중국이다. 중국의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은 3조 원 규모로 세계 시장(20조 원)의 15%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은 ‘넘버2’다.
중국 출시 시점은 내년 1분기로 잡았다. 케이캡은 중국에서 임상 3상을 끝마치고, 역류성 식도염 신약으로 허가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같은 계열의 경쟁 의약품은 중국에서 ‘해외 도입 신약’(분류5)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케이캡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한 덕분에 ‘중국 또는 해외 시장에 등재되지 않은 혁신신약’(분류1)으로 심사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일정 기간 제네릭(복제약)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자료독점권’ 기간을 경쟁업체보다 넉넉히 갖게 돼 중국 사업의 수익성이 높아진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케이캡 약진의 원동력은 뛰어난 약효
케이캡이 나오기 전까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의 주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넥시움’ 등 프로톤 펌프 억제제(PPI) 계열 제품이었다. 기전은 이렇다. 위산은 위의 벽세포가 활성화되면 세포막에 있던 프로톤 펌프가 수소 이온과 칼륨 이온을 맞교환하면서 분비된다.
PPI 제품들은 이때 프로톤 펌프의 활동을 억제하는 식으로 위산 분비를 막는다. 프로톤 펌프가 본격 가동한 뒤에야 약이 힘을 쓰는 구조인 만큼 약효가 늦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케이캡정은 PPI와는 기전이 완전히 다른 P-CAB 계열이다. 이 계열로는 2014년 나온 일본 다케다제약의 ‘다케캡’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신약이다. P-CAB 계열 약은 칼륨이온에 자석처럼 붙어 프로톤 펌프가 칼륨이온과 만날 수 없도록 방해해 사전에 위산 분비를 차단한다. 프로톤 펌프가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만큼 PPI에 비해 약효가 빨리 나타난다. PPI 계열은 약효가 나타나는 데 평균 4시간 걸리지만, 케이캡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HK이노엔 관계자는 “한밤중에 위산 역류로 잠에서 깨던 환자 중 상당수가 약효가 긴 케이캡을 복용한 뒤 숙면을 취하고 있다”며 “식사 여부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하루 1정만 먹으면 된다는 것도 케이캡이 약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HK이노엔은 케이캡의 뛰어난 약효를 알리기 위해 2019년 3월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케이캡정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한 임상 3상 논문을 SCI급 해외 학술 저널인에 실었다. 작년에는 같은 저널에 위궤양 환자에 대한 임상 결과가 게재됐다.
“K제약 대표주자 되겠다”
신약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수 없다. 케이캡도 10년 가까운 시간과 수십, 수백억 원의 개발비를 먹고 태어났다. 2010년 개발에 착수한 뒤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미란성위식도역류질환과 비미란성위식도역류질환에 대한 임상연구에 들어간 2015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탓에 임상시험이 중단될 뻔한 위기도 맞았다.
적응증에 위궤양을 넣느라 임직원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국내 임상시험은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에서만 진행할 수 있는데, 위궤양 환자는 거의 대부분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을 찾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위궤양 환자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2000명에 달하는 임상 대상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회사 관계자는 “임상 지원자를 1명 확보할 때마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애를 먹었지만 갖은 노력 끝에 임상을 끝냈다”고 설명했다.
케이캡은 이런 HK이노엔 직원들의 땀과 눈물 덕분에 미란성·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위궤양, 소화성 궤양, 만성 위축성 위염 환자에서의 헬리코박터파일로리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등에 대한 적응증을 갖게 됐다.
HK이노엔은 케이캡의 사용범위를 더 넓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후 유지요법과 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NSAIDs) 유발 위·십이지장 궤양 예방요법으로 쓰일 수 있도록 각각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백인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임상 1상에 들어갔다. 경쟁 약물과의 차별화 임상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물꼬가 트이자 ‘K 시리즈’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푸드, 뷰티, 게임 분야로 넓어지더니 이제는 방역에도 K를 붙일 정도로 흔해졌다.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거나 입지를 넓혀가는 산업에는 자연스럽게 K란 접두어가 따라붙게 됐다. K를 달고 태어난 국산 신약
2019년 3월 ‘대한민국 30호 신약’으로 세상에 나온 HK이노엔의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케이캡’(K-CAB·성분명 테고프라잔)은 태어날 때부터 K를 달고 나왔다.
‘한국이 만든 P-CAB(Potassium-Competitive Acid Blocker·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 치료제’란 의미다. ‘위식도역류질환 시장에서의 K팝 같은 존재가 되자’는 염원을 이름에 새겼다고 한다.
이제 세상에 나온 지 딱 2년 된 ‘새내기 신약’이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면 ‘K제약’의 시조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단 출시 2년 만에 국내 시장을 완전히 접수했다.
출시 첫해인 2019년 298억 원이었던 원외처방액을 지난해 725억 원으로 끌어올리면서 연간 9000억 원에 달하는 국내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의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누적 처방액 1000억 원을 달성하는데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금까지 나온 31개 국산 신약 중 가장 빠른 속도다.
올해 매출은 1000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예상대로 되면 LG화학의 ‘제미글로’(당뇨병 치료제)와 보령제약의 ‘카나브’(고혈압 치료제)에 이은 ‘국산 3호 블록버스터’가 된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케이캡
케이캡은 이름에 걸맞게 해외에서도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 2015년 중국에 9500만 달러(약 1140억 원)짜리 기술수출을 성사시켰고, 2019년에는 멕시코 등 중남미 17개국에 8400만 달러(약 1008억 원)어치 수출계약을 맺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몽골 싱가포르에서도 허가절차를 밟고 있다. 현재 케이캡이 손을 뻗은 나라는 모두 24개국.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임상 1상 시험을 승인받았다. 조만간 유럽과 일본 시장도 노크할 계획이다.
이 중 HK이노엔이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중국이다. 중국의 소화성궤양용제 시장은 3조 원 규모로 세계 시장(20조 원)의 15% 정도를 차지한다. 미국에 이은 ‘넘버2’다.
중국 출시 시점은 내년 1분기로 잡았다. 케이캡은 중국에서 임상 3상을 끝마치고, 역류성 식도염 신약으로 허가를 신청해놓은 상태다.
같은 계열의 경쟁 의약품은 중국에서 ‘해외 도입 신약’(분류5)으로 허가를 받았지만, 케이캡은 중국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한 덕분에 ‘중국 또는 해외 시장에 등재되지 않은 혁신신약’(분류1)으로 심사를 받는다. 이렇게 되면 일정 기간 제네릭(복제약)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자료독점권’ 기간을 경쟁업체보다 넉넉히 갖게 돼 중국 사업의 수익성이 높아진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케이캡 약진의 원동력은 뛰어난 약효
케이캡이 나오기 전까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의 주류는 아스트라제네카의 ‘넥시움’ 등 프로톤 펌프 억제제(PPI) 계열 제품이었다. 기전은 이렇다. 위산은 위의 벽세포가 활성화되면 세포막에 있던 프로톤 펌프가 수소 이온과 칼륨 이온을 맞교환하면서 분비된다.
PPI 제품들은 이때 프로톤 펌프의 활동을 억제하는 식으로 위산 분비를 막는다. 프로톤 펌프가 본격 가동한 뒤에야 약이 힘을 쓰는 구조인 만큼 약효가 늦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케이캡정은 PPI와는 기전이 완전히 다른 P-CAB 계열이다. 이 계열로는 2014년 나온 일본 다케다제약의 ‘다케캡’에 이은 세계 두 번째 신약이다. P-CAB 계열 약은 칼륨이온에 자석처럼 붙어 프로톤 펌프가 칼륨이온과 만날 수 없도록 방해해 사전에 위산 분비를 차단한다. 프로톤 펌프가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는 만큼 PPI에 비해 약효가 빨리 나타난다. PPI 계열은 약효가 나타나는 데 평균 4시간 걸리지만, 케이캡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HK이노엔 관계자는 “한밤중에 위산 역류로 잠에서 깨던 환자 중 상당수가 약효가 긴 케이캡을 복용한 뒤 숙면을 취하고 있다”며 “식사 여부에 관계없이 아무 때나 하루 1정만 먹으면 된다는 것도 케이캡이 약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HK이노엔은 케이캡의 뛰어난 약효를 알리기 위해 2019년 3월 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케이캡정의 유효성과 안전성을 평가한 임상 3상 논문을 SCI급 해외 학술 저널인
“K제약 대표주자 되겠다”
신약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 수 없다. 케이캡도 10년 가까운 시간과 수십, 수백억 원의 개발비를 먹고 태어났다. 2010년 개발에 착수한 뒤 수많은 실패를 거듭했다.
미란성위식도역류질환과 비미란성위식도역류질환에 대한 임상연구에 들어간 2015년에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탓에 임상시험이 중단될 뻔한 위기도 맞았다.
적응증에 위궤양을 넣느라 임직원이 밤잠을 설치기도 했다. 국내 임상시험은 대학병원 등 3차 의료기관에서만 진행할 수 있는데, 위궤양 환자는 거의 대부분 동네의원(1차 의료기관)을 찾기 때문이다. 대학병원에서 위궤양 환자를 만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2000명에 달하는 임상 대상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회사 관계자는 “임상 지원자를 1명 확보할 때마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로 애를 먹었지만 갖은 노력 끝에 임상을 끝냈다”고 설명했다.
케이캡은 이런 HK이노엔 직원들의 땀과 눈물 덕분에 미란성·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 위궤양, 소화성 궤양, 만성 위축성 위염 환자에서의 헬리코박터파일로리 제균을 위한 항생제 병용요법 등에 대한 적응증을 갖게 됐다.
HK이노엔은 케이캡의 사용범위를 더 넓히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위식도역류질환 치료 후 유지요법과 비스테로이드 소염진통제(NSAIDs) 유발 위·십이지장 궤양 예방요법으로 쓰일 수 있도록 각각 임상 3상을 진행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백인 성인 남성을 대상으로 임상 1상에 들어갔다. 경쟁 약물과의 차별화 임상도 별도로 진행하고 있다.
오상헌 기자 ohyeah@hankyung.com
*이 기사는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