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논문 리뷰] K-Ras 저해제 개발의 현 상황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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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분자 물질을 이용한 표적 항암치료제 개발에서 요즘 가장 각광받고 있는 타겟은 K-Ras이다. 쉽지 않은 타깃이었던 K-Ras 타겟의 치료제 등장 배경을 세 편의 논문을 통해 소개한다.
K-Ras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중에서 최초로 발견된 유전자로 1980년대 초반부터 그 중요성이 알려졌다. 따라서 K-Ras가 중요한 항암 치료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때부터 알려졌다. 그러나 30여 년간의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K-Ras를 타깃으로 하는 표적 항암치료제는 쉽게 등장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K-Ras는 공략하기 힘든 타깃이었을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어떻게 결실을 맺어 이제 K-Ras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의 등장이 임박하게 되었는지 확인해본다.
게재일 2020.01.13
doi 10.1038/s43018-019-0016-8
Ras 유전자는 세포의 분화와 증식에 필수적인 신호 전달 과정을 전달하는 유전자로, 인간에게는 H-Ras, N-Ras, K-Ras 세 종류가 존재한다. 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암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처음 알려진 사례다. 지금까지 알려진 암 유발 돌연변이 중 가장 높은 비율로 암 조직에서 발견되는 것이 바로 K-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다.
폐암 환자의 약 30% 이상이 K-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며, 대장암이나 췌장암에서도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 Ras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정상적으로는 세포가 성장해야 할 때만 켜져 있어야 하는 세포의 성장 신호가 항상 켜져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세포 증식이 일어나며 이것이 암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K-Ras를 타깃으로 하는 암 성장을 억제하는 표적 항암치료제가 개발되기 힘들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K-Ras가 어떤 식으로 세포 내에서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하고 이것이 어떻게 돌연변이에 의해서 망가져서 암을 유발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K-Ras는 ‘Small-GTPase’ 패밀리로 분류되는 신호전달 단백질로, 세포 내에서 GTP 혹은 GDP가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K-Ras에 GTP가 결합된 상태는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활성화된 상태이고, GDP가 결합된 상태는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할 수 없는 비활성화 상태다. K-Ras에 GTP 혹은 GDP가 결합하는 것은 각각 RasGEF(Ras Guanine Exchage Factor·Ras 구아닌 교환인자) 혹은 RasGAP(Ras-GTPase Activating Protein·Ras GTP 분해효소 활성단백질)라는 별도의 단백질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정상 세포에서 세포가 성장할 때와 성장하지 않을 때는 K-Ras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K-Ras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 성장 조절에 바로 문제가 생긴다. 흔히 암세포에서는 K-Ras의 12번째 글리신(G12) 혹은 61번째 글루탐산(Q61)에 돌연변이가 발견된다. 이러한 돌연변이가 일어난 K-Ras는 정상적인 K-Ras와는 달리 GTP가 항상 붙어 있게 되고, GDP가 붙어서 신호가 꺼지지 못하게 된다. 즉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K-Ras가 항상 켜져서 세포 성장이 무절제하게 일어나게 되고, 결국 통제받지 않는 세포 성장에 의해서 암이 발생한다.
사실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세포 성장 신호를 항상 전달하게 되어 암을 일으키는 것은 K-Ras 이외에도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여러 가지 단백질 인산화효소에서도 일어나며, 이러한 단백질 인산화효소(키나아제)의 활성을 저해하는 물질을 이용하여 표적 항암치료를 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다. 그러나 단백질 인산화효소와는 달리 K-Ras의 활성을 저해하는 약물은 만들기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단백질 인산화효소는 ATP와 그리 강하게 결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ATP보다 단백질 인산화효소에 좀 더 강하게 달라붙는 화합물을 이용하면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활성을 저해하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었지만, K-Ras와 같은 단백질은 GTP에 매우 높은 결합력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이 결합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대안으로 K-Ras 단백질의 꼬리에 변형을 일으켜 K-Ras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번역 후 변형에 관여하는 효소인 단백질 파레니실화 효소를 억제하거나, Ras 이후의 세포 성장 신호 전달 단계를 저해하는 화합물을 이용하여 표적항암제를 만들려는 시도도 이뤄졌으나, 이들 모두 암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드는 데 성공적이지 않았다.
수십 년간의 시도에도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던 K-Ras를 억제하는 화합물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 보인 것은 2013년이었다.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케빈 쇼캇 교수팀은 K-Ras의 돌연변이체 중 12번째 글리신이 시스테인으로 바뀐(G12C) 경우 시스테인의 황과 공유결합을 통하여 결합하는 화합물이 K-Ras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시스테인과 화합물이 결합을 형성한 다음에는 이전의 K-Ras에는 존재하지 않던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포켓’이 K-Ras 단백질 표면에 형성되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를 이용하여 G12C K-Ras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쇼캇 교수를 공동창업자로 설립된 바이오텍 기업인 웰스프링 바이오사이언스는 이러한 연구에 기반하여 후보물질인 ‘ARS-853’과 ‘ARS-1620’을 개발하였고, ARS-1620은 배양세포와 환자 유래 암조직 이식 동물모델(PDX)에서 암 조직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G12C 돌연변이 K-Ras를 화합물로 저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여러 바이오텍 기업에서 K-Ras를 저해하는 화합물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2018년 암젠에서는 ‘AMG-510(소토라십)’이라는 후보물질을 치료 이력이 있는 G12C 돌연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및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개시하였다. 또한 미라티세라퓨틱스는 후보물질 ‘MRTX849(아다그라십)’를 비소세포폐암,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개시하였다.
한편 웰스프링 바이오사이언스는 개선된 후보물질인 ‘ARS-3248’을 이용하여 존슨앤드존슨과 협력하여 임상 1상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2018년경부터 시작된 임상시험은 2020년경부터 어느 정도 진행되어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게재일 2020.11.24
doi 10.1056/NEJMoa1917239
K-Ras G12C 저해제 개발 경쟁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암젠은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K-Ras 억제제 소토라십의 임상 1상의 결과를 요약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임상 1상에 참여한 129명의 환자(비소세포폐암 59명, 대장암 42명, 기타 고형암 28명)들은 평균적으로 3회의 항암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암 진행 단계가 높은 환자였다. 소토라십을 투여받은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32.2%가 암 조직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객관적 반응률) 효과를 보였으며, 전체 환자의 무진행 생존기간의 중간값은 6.3개월이었다.
한편 대장암 환자의 경우 7.1%의 반응률을 보였으며 무진행 생존기간의 중간값은 4개월이었다. 소토라십을 투여받은 전체 환자 중 3~4등급의 심각한 부작용은 11.6%의 환자에서 발생하였다.
암젠은 이후 비소세포폐암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결과를 지난 1월에 발표했다. 여기서도 37.1%의 객관적 반응률을 기록하였다. 임상 2상에 참여한 환자들의 81%는 기존에 백금계 화학요법제 및 면역 체크포인트 억제제 등의 치료를 받고도 암 진행이 계속된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이 기존의 치료 방법으로는 예후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소토라십은 K-Ras G12C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암젠은 650명의 K-Ras G12C 돌연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환자 650명을 대상으로 소토라십과 도세탁셀의 효과를 비교하는 임상 3상 대상자를 모집하여 임상 3상 시험을 지난해 7월 개시하였으며, 임상시험의 1차 종료 예정은 올해 11월경이다.
게재일 2021.01
doi 10.1158/2159-8290.CD-20-0142
K-Ras에 발생해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의 80%는 12번째 글리신에서의 변화이며, 이 중 35%는 글리신이 글루탐산으로 변화한 G12D, 29%는 글리신-발린으로 변화한 G12V, 그리고 21%가 글리신이 시스테인으로 변화한 G12C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소토라십이나 아다그라십과 같은 K-Ras G12C에 특이적인 저해물질은 G12C에만 존재하는 시스테인과 저해물질이 공유결합으로 결합하여 작용하기 때문에 시스테인이 없는 돌연변이인 G12D와 G12V에 의한 암에는 효과가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소토라십이나 아다그라십과 같은 약물은 K-Ras 돌연변이에 의한 암 중 약 20%에만 효과가 있으며, 다른 80%의 돌연변이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G12C 이외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일어나는 암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 가지 전략은 RAS 대신 RAS를 활성화하는 단백질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이용해 K-Ras와의 결합을 억제해 K-Ras를 활성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RasGEF의 일종인 SOS1은 K-Ras+GDP와 결합하여 GDP를 제거하고 GTP를 활성화한다. 즉 K-Ras+GDP와 SOS1의 결합을 억제시켜 K-Ras의 활성화 상태를 막는 원리다.
베링거인겔하임 연구팀은 약 170만 개의 화합물을 검색해 SOS1과 결합해 K-Ras와의 결합을 억제하는 선도물질인 ‘BI-68BS’를 발굴했다.
BI-68BS는 SOS1과 약 470nM 정도의 친화력으로 결합하며, 단백질-화합물 구조 분석 결과 이 화합물은 SOS1과 K-Ras가 결합하는 부위에 결합해 K-Ras의 결합을 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도출된 단백질-화합물 구조에 기반해 여러 단계의 화합물 최적화 과정을 진행함으로써 보다 더 강하게 SOS1에 결합하는 물질을 발굴했고, 최종적으로 도출된 후보물질인 BI-3406은 SOS1과 약 9.7nM의 친화력으로 강하게 결합하는 물질이었다.
BI-3406은 SOS1과 K-Ras의 결합을 시험관 내에서와 세포 내에서 억제하였으며, G12C 돌연변이를 가진 K-Ras 이외에도 G12D 돌연변이를 가진 K-Ras와의 결합도 억제했다. BI-3406을 K-Ras 돌연변이를 가진 세포주에 처리했을 때 예상대로 K-Ras의 신호 전달을 매우 효율적으로 저해하며, 이들 세포주의 성장을 억제했다. 환자 유래 암 조직 이식 동물모델에서 암 조직 성장의 억제 효과 역시 관찰되었고, 특히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Ras 하위 단계의 신호 전달 경로인 MEK를 저해하는 저해제인 트라메티닙과 함께 사용했을 때 보다 암 성장 억제 효과가 증가했다.
결론적으로 BI-3406은 G12C 이외의 K-Ras 돌연변이에도 효과적인 후보 화합물이며, 이와 MEK 저해제의 병용은 K-Ras 돌연변이에 의한 암 억제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베링거인겔하임은 개선된 SOS1 저해제인 BI-1701963과 MEK 저해제인 트라메티닙의 고형암 환자 대상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저자 소개>
남궁석 SLMS 대표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충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은 Secret Lab of Mad Scientist(SLMS)라는 이름으로 과학 저술 및 과학 관련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암 정복 연대기>의 저자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K-Ras는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암을 유발하는 유전자 중에서 최초로 발견된 유전자로 1980년대 초반부터 그 중요성이 알려졌다. 따라서 K-Ras가 중요한 항암 치료의 타깃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은 그때부터 알려졌다. 그러나 30여 년간의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K-Ras를 타깃으로 하는 표적 항암치료제는 쉽게 등장하지 않았다.
왜 이렇게 K-Ras는 공략하기 힘든 타깃이었을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어떻게 결실을 맺어 이제 K-Ras를 타깃으로 하는 치료제의 등장이 임박하게 되었는지 확인해본다.
K-Ras 저해제가 탄생하기까지 (A bright future for KRAS inhibitors)
저널 Nature Cancer(IF 53.03)게재일 2020.01.13
doi 10.1038/s43018-019-0016-8
Ras 유전자는 세포의 분화와 증식에 필수적인 신호 전달 과정을 전달하는 유전자로, 인간에게는 H-Ras, N-Ras, K-Ras 세 종류가 존재한다. 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해 암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 처음 알려진 사례다. 지금까지 알려진 암 유발 돌연변이 중 가장 높은 비율로 암 조직에서 발견되는 것이 바로 K-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다.
폐암 환자의 약 30% 이상이 K-Ras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가지고 있으며, 대장암이나 췌장암에서도 높은 빈도로 발견된다. Ras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하면, 정상적으로는 세포가 성장해야 할 때만 켜져 있어야 하는 세포의 성장 신호가 항상 켜져 있기 때문에 무분별한 세포 증식이 일어나며 이것이 암 발생의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K-Ras를 타깃으로 하는 암 성장을 억제하는 표적 항암치료제가 개발되기 힘들었던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K-Ras가 어떤 식으로 세포 내에서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하고 이것이 어떻게 돌연변이에 의해서 망가져서 암을 유발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K-Ras는 ‘Small-GTPase’ 패밀리로 분류되는 신호전달 단백질로, 세포 내에서 GTP 혹은 GDP가 결합된 상태로 존재한다. K-Ras에 GTP가 결합된 상태는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할 수 있는 활성화된 상태이고, GDP가 결합된 상태는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할 수 없는 비활성화 상태다. K-Ras에 GTP 혹은 GDP가 결합하는 것은 각각 RasGEF(Ras Guanine Exchage Factor·Ras 구아닌 교환인자) 혹은 RasGAP(Ras-GTPase Activating Protein·Ras GTP 분해효소 활성단백질)라는 별도의 단백질에 의해서 결정된다. 즉 정상 세포에서 세포가 성장할 때와 성장하지 않을 때는 K-Ras의 상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나 K-Ras 단백질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세포 성장 조절에 바로 문제가 생긴다. 흔히 암세포에서는 K-Ras의 12번째 글리신(G12) 혹은 61번째 글루탐산(Q61)에 돌연변이가 발견된다. 이러한 돌연변이가 일어난 K-Ras는 정상적인 K-Ras와는 달리 GTP가 항상 붙어 있게 되고, GDP가 붙어서 신호가 꺼지지 못하게 된다. 즉 세포 성장을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K-Ras가 항상 켜져서 세포 성장이 무절제하게 일어나게 되고, 결국 통제받지 않는 세포 성장에 의해서 암이 발생한다.
사실 세포 성장 신호를 전달하는 단백질이 돌연변이를 일으켜 세포 성장 신호를 항상 전달하게 되어 암을 일으키는 것은 K-Ras 이외에도 세포 성장에 관여하는 여러 가지 단백질 인산화효소에서도 일어나며, 이러한 단백질 인산화효소(키나아제)의 활성을 저해하는 물질을 이용하여 표적 항암치료를 하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다. 그러나 단백질 인산화효소와는 달리 K-Ras의 활성을 저해하는 약물은 만들기 쉽지 않았다.
대부분의 단백질 인산화효소는 ATP와 그리 강하게 결합하지 않는다. 따라서 ATP보다 단백질 인산화효소에 좀 더 강하게 달라붙는 화합물을 이용하면 단백질 인산화효소의 활성을 저해하는 물질을 개발할 수 있었지만, K-Ras와 같은 단백질은 GTP에 매우 높은 결합력으로 결합하기 때문에 이 결합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 대안으로 K-Ras 단백질의 꼬리에 변형을 일으켜 K-Ras 활성화에 영향을 미치는 단백질 번역 후 변형에 관여하는 효소인 단백질 파레니실화 효소를 억제하거나, Ras 이후의 세포 성장 신호 전달 단계를 저해하는 화합물을 이용하여 표적항암제를 만들려는 시도도 이뤄졌으나, 이들 모두 암을 억제하는 화합물을 만드는 데 성공적이지 않았다.
수십 년간의 시도에도 도저히 답이 보이지 않던 K-Ras를 억제하는 화합물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처음 보인 것은 2013년이었다. 201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UCSF)의 케빈 쇼캇 교수팀은 K-Ras의 돌연변이체 중 12번째 글리신이 시스테인으로 바뀐(G12C) 경우 시스테인의 황과 공유결합을 통하여 결합하는 화합물이 K-Ras의 활성을 억제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시스테인과 화합물이 결합을 형성한 다음에는 이전의 K-Ras에는 존재하지 않던 약물이 결합할 수 있는 ‘포켓’이 K-Ras 단백질 표면에 형성되는 것이 발견되었고, 이를 이용하여 G12C K-Ras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개발할 수 있었다. 쇼캇 교수를 공동창업자로 설립된 바이오텍 기업인 웰스프링 바이오사이언스는 이러한 연구에 기반하여 후보물질인 ‘ARS-853’과 ‘ARS-1620’을 개발하였고, ARS-1620은 배양세포와 환자 유래 암조직 이식 동물모델(PDX)에서 암 조직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여주었다.
G12C 돌연변이 K-Ras를 화합물로 저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이자, 여러 바이오텍 기업에서 K-Ras를 저해하는 화합물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했다. 2018년 암젠에서는 ‘AMG-510(소토라십)’이라는 후보물질을 치료 이력이 있는 G12C 돌연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및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을 개시하였다. 또한 미라티세라퓨틱스는 후보물질 ‘MRTX849(아다그라십)’를 비소세포폐암, 대장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을 개시하였다.
한편 웰스프링 바이오사이언스는 개선된 후보물질인 ‘ARS-3248’을 이용하여 존슨앤드존슨과 협력하여 임상 1상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2018년경부터 시작된 임상시험은 2020년경부터 어느 정도 진행되어 결과를 도출하고 있다.
G12C K-Ras 억제제인 소토라십(AMG-510)의 K-Ras G12C 고형암 환자의 1-2상 결과 (KRASG12C Inhibition with Sotorasib in Advanced Solid Tumors)
저널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IF 74.70)게재일 2020.11.24
doi 10.1056/NEJMoa1917239
K-Ras G12C 저해제 개발 경쟁에서 가장 앞서고 있는 암젠은 지난해 9월 국제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K-Ras 억제제 소토라십의 임상 1상의 결과를 요약한 논문을 발표하였다. 임상 1상에 참여한 129명의 환자(비소세포폐암 59명, 대장암 42명, 기타 고형암 28명)들은 평균적으로 3회의 항암 치료를 받은 경험이 있는 암 진행 단계가 높은 환자였다. 소토라십을 투여받은 비소세포폐암 환자 중 32.2%가 암 조직이 줄어들거나 없어지는(객관적 반응률) 효과를 보였으며, 전체 환자의 무진행 생존기간의 중간값은 6.3개월이었다.
한편 대장암 환자의 경우 7.1%의 반응률을 보였으며 무진행 생존기간의 중간값은 4개월이었다. 소토라십을 투여받은 전체 환자 중 3~4등급의 심각한 부작용은 11.6%의 환자에서 발생하였다.
암젠은 이후 비소세포폐암 환자 12명을 대상으로 한 임상 2상 결과를 지난 1월에 발표했다. 여기서도 37.1%의 객관적 반응률을 기록하였다. 임상 2상에 참여한 환자들의 81%는 기존에 백금계 화학요법제 및 면역 체크포인트 억제제 등의 치료를 받고도 암 진행이 계속된 환자들이다. 이 환자들이 기존의 치료 방법으로는 예후가 매우 좋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결과는 소토라십은 K-Ras G12C 돌연변이를 가진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하는 긍정적인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암젠은 650명의 K-Ras G12C 돌연변이를 가진 비소세포폐암 환자 650명을 대상으로 소토라십과 도세탁셀의 효과를 비교하는 임상 3상 대상자를 모집하여 임상 3상 시험을 지난해 7월 개시하였으며, 임상시험의 1차 종료 예정은 올해 11월경이다.
G12C 이외의 K-Ras 돌연변이에 대응하는 Pan-KRAS 저해 후보물질의 개발 (BI-3406, a Potent and Selective SOS1–KRAS Interaction Inhibitor, Is Effective in KRAS-Driven Cancers through Combined MEK Inhibition)
저널 Cancer discovery(IF 29.50)게재일 2021.01
doi 10.1158/2159-8290.CD-20-0142
K-Ras에 발생해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의 80%는 12번째 글리신에서의 변화이며, 이 중 35%는 글리신이 글루탐산으로 변화한 G12D, 29%는 글리신-발린으로 변화한 G12V, 그리고 21%가 글리신이 시스테인으로 변화한 G12C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소토라십이나 아다그라십과 같은 K-Ras G12C에 특이적인 저해물질은 G12C에만 존재하는 시스테인과 저해물질이 공유결합으로 결합하여 작용하기 때문에 시스테인이 없는 돌연변이인 G12D와 G12V에 의한 암에는 효과가 없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결국 소토라십이나 아다그라십과 같은 약물은 K-Ras 돌연변이에 의한 암 중 약 20%에만 효과가 있으며, 다른 80%의 돌연변이에 대해서는 대응하지 못한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G12C 이외의 돌연변이에 의해서 일어나는 암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한 가지 전략은 RAS 대신 RAS를 활성화하는 단백질에 결합하는 화합물을 이용해 K-Ras와의 결합을 억제해 K-Ras를 활성화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RasGEF의 일종인 SOS1은 K-Ras+GDP와 결합하여 GDP를 제거하고 GTP를 활성화한다. 즉 K-Ras+GDP와 SOS1의 결합을 억제시켜 K-Ras의 활성화 상태를 막는 원리다.
베링거인겔하임 연구팀은 약 170만 개의 화합물을 검색해 SOS1과 결합해 K-Ras와의 결합을 억제하는 선도물질인 ‘BI-68BS’를 발굴했다.
BI-68BS는 SOS1과 약 470nM 정도의 친화력으로 결합하며, 단백질-화합물 구조 분석 결과 이 화합물은 SOS1과 K-Ras가 결합하는 부위에 결합해 K-Ras의 결합을 막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도출된 단백질-화합물 구조에 기반해 여러 단계의 화합물 최적화 과정을 진행함으로써 보다 더 강하게 SOS1에 결합하는 물질을 발굴했고, 최종적으로 도출된 후보물질인 BI-3406은 SOS1과 약 9.7nM의 친화력으로 강하게 결합하는 물질이었다.
BI-3406은 SOS1과 K-Ras의 결합을 시험관 내에서와 세포 내에서 억제하였으며, G12C 돌연변이를 가진 K-Ras 이외에도 G12D 돌연변이를 가진 K-Ras와의 결합도 억제했다. BI-3406을 K-Ras 돌연변이를 가진 세포주에 처리했을 때 예상대로 K-Ras의 신호 전달을 매우 효율적으로 저해하며, 이들 세포주의 성장을 억제했다. 환자 유래 암 조직 이식 동물모델에서 암 조직 성장의 억제 효과 역시 관찰되었고, 특히 단독으로 사용하는 것보다는 Ras 하위 단계의 신호 전달 경로인 MEK를 저해하는 저해제인 트라메티닙과 함께 사용했을 때 보다 암 성장 억제 효과가 증가했다.
결론적으로 BI-3406은 G12C 이외의 K-Ras 돌연변이에도 효과적인 후보 화합물이며, 이와 MEK 저해제의 병용은 K-Ras 돌연변이에 의한 암 억제를 위한 새로운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베링거인겔하임은 개선된 SOS1 저해제인 BI-1701963과 MEK 저해제인 트라메티닙의 고형암 환자 대상의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저자 소개>
남궁석 SLMS 대표
고려대 농화학과를 졸업한 뒤 동 대학원에서 생화학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예일대와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충북대 농업생명과학대 축산식품생명과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지금은 Secret Lab of Mad Scientist(SLMS)라는 이름으로 과학 저술 및 과학 관련 컨설팅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자가 되는 방법>, <암 정복 연대기>의 저자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