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윤의 정책프리즘] 치료 현장과 제도가 헛돈다, 첨단재생바이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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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재생바이오법이 시행된 지 반년이 지났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여전히 규제에 가로막혀 제품 개발이 어려운 상황이다. 규제가 진취적인 도전을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안전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첨단재생바이오법)’이 2019년 8월에 국회를 통과하고 시행령이 2020년 8월 시행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도 첨단재생바이오 의료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미래사회의 가장 중요한 분야의 하나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으니 국민의 기대도 매우 높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보다 설계와 도입에 6년이 늦었던 이 제도에는 첨단도, 재생도, 바이오도 없는 것 같다. 첨단을 추구하는 과학연구와 기업가정신을 촉발하지도 못하고, 재생 특유의 의료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의 바이오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도 없다.
치료술 없이 어떻게 재생을 하나
첨단재생바이오법 제2조 정의에 따르면 첨단재생의료란 “사람의 신체 구조 또는 기능을 재생, 회복 또는 형성하거나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하기 위하여 인체세포 등을 이용해 실시하는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조직공학치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세포·조직을 생물학적 특성이 유지되는 범위에서 단순분리, 세척, 냉동, 해동 등의 최소한의 조작을 통해 시술하는 것’은 제외하고 있다. 최소한의 조작은 시술에 해당한다고 보며 치료제와 치료술의 범위를 따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치료제’와 ‘치료술’에 대한 관련법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효과와 안전성의 평가방법과 절차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치료제는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라 조건부 허가를 받아 임상 적용이 가능하지만 치료술은 ‘의료행위’이니 의료법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치료술(최소 조작하여 이용하는 연구)에 해당할 경우에는 신의료기술평가 규정에 따라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만 임상 적용이 가능하다는 우려인 것이다.
첨단재생의료가 기존 의약품 및 의료기기와 차별되는 점은 살아있는 세포가 주재료로서 복합적인 작용기전을 가지며, 동물실험으로 안전성·유효성 평가가 어렵고, 의료시술과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즉 재생의료는 맞춤형 세포치료제, 생체조직, 바이오장기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므로 치료제와 치료술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제도하에서는 재생의료를 수행하는 연구자와 의료인에게 혼란을 가중시킬뿐더러 재생의료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1 CFR Section 1271.10’에 규정된 ‘인체 세포, 조직 또는 세포 및 조직기반제품(HCT/Ps)’으로 정하고 있다. HCT/Ps 중 최소한의 조작일 경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절차와 생물의약품허가신청(BLA) 절차를 생략하고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HCT/Ps의 분류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우리와 제도의 안목이 다르다.
위험의 정도에 규제의 강도가 상응하지 못한다
2016년 법 제정 과정에서 리스크 수준에 따른 임상연구의 규제 차별화가 시도됐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저위험(사람의 생명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잘 알려져 있고 그 위험도가 미미한 임상연구) 연구계획에 대한 심의위원회 심의면제가 빠지면서 임상연구를 위험도에 따라 나눈 것이 무색해졌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2조에서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에 대한 위험도를 3단계로 나누어 정의하고 있으나, 초기 의안 검토과정에서 저위험 임상연구에 대한 첨단재생의료심의위원회 심의 면제조항이 삭제됐다.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위험도가 미미한 연구조차 고위험의 연구와 차별없이 동일한 심의를 받아야 하도록 최종 결론을 낸 것이다. 즉 3단계 모두 일괄적으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공동소속, 이하 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고, 고위험군 임상연구는 추가적으로 식약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본은 2013년 11월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재생의료법)’의 제정과 동시에 ‘의약품·의료기기 등의 품질, 유효성 및 안전성의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약품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해 재생의료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실용화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자유 진료 및 임상연구 분야를 관리하는 재생의료법에서는 재생의료 리스크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당연히 리스크 수준에 따라 심의 절차가 다르다. 제1종 재생의료는 의료기관이 제공계획을 ‘특정 인정 재생의료 등 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후 후생노동성 대신의 허가를 받아 실시해야 한다.
제2종 재생의료는 제공계획을 심의받은 후 후생노동성 대신에게 제출하고 실시하면 된다. 제3종 재생의료는 제공계획을 ‘인정 재생의료 등 위원회’의 의견을 들은 후 후생노동성 대신에게 제출하고 실시하면 된다. 특히 재생의료법에서는 고위험군인 제1종의 경우 의료기관이 후생노동성 대신에게 계획을 제출하면 후생노동성 대신이 ‘후생과학심의회’의 의견을 들은 후에 허가한다. 즉 일본은 각각의 위험 수준에 맞는 심의 절차를 갖춘 유연한 규제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우리 체계는 6년이나 늦었지만,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첨단을 시도하나?
일본의 의약품의료기기등법(구 약사법)은 재생의료 제품의 특성을 고려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실용화를 진행하기 위한 ‘조건부 조기승인제도’를 도입했다. 심각한 질환에 대해 환자 수가 적어 임상 3상 등 임상시험이 어려운 의약품에 대해 유효성이 추정되고 안전성이 확인된다면 승인해주는 것이다. 2015년 9월 환자 본인의 세포를 채취해 협심증을 치료하는 하트시트(HeartSheet)가 처음으로 조건부 조기승인을 받았다.
물론 조건부 조기승인제도에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있다. 즉 조건부 조기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쌓인 임상연구 데이터(Real World Data)가 필요할뿐더러, 조건부 조기승인 후에는 7년 이내에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기업은 그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재생의료 범위의 조건부 조기승인 대상을 사전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았다. 과감한 시도와 엄정한 책임을 조화시켜놓은 것이다.
우리 법 제37조에서도 신속처리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며, 신속처리 과정에는 우선심사, 조건부 허가, 맞춤형 심사가 포함된다. 하지만 조건부 허가 대상의 범위가 기존 ‘의약품의 품목허가규정’ 제58조 및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 심사규정’ 제4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품목허가대상 범위와 유사해 조건부 허가제도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한다. 첨생법 나름대로 촉진하는 조건부 허가의 대상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바이오의 포인트는 데이터이다
정부가 과학자 및 업체와 함께 장기추적조사에 대하여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첨단재생바이오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은 데이터와 지식에 있다.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장기추적조사제도를 규제나 과중한 부담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과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30조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줄기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동물의 조직·세포를 포함하는 첨단바이오의약품, 투여 후 일정 기간 이상사례의 발생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해 장기추적조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 즉 장기추적조사 대상으로 지정된 의약품은 임상 1상 단계에서부터 장기추적을 실시해야 하며, IND와 별개로 장기추적조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임상단계에서의 장기추적조사 기간은 제품의 특성에 따라 나뉜다. 줄기세포치료제는 5년 이내, 유전자치료제는 15년 이내, 동물의 조직·세포 등을 포함하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은 30년 이내이다. 다만 장기추적조사의 경우 기간이 비교적 짧아도 수억대의 비용이 소요된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21조 제2항에 따르면 정부는 장기추적조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해 주지만 자세한 지원 비용은 고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단순 지원이 아닌 정부와 기업 간 공동수행이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추적조사를 임상 1상 시험부터 적용하는 것은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에게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첨단재생의료의 특성상 줄기세포 혹은 동물의 세포를 포함하거나 위해도가 높은 유전자 치료가 다수이므로, 대부분의 의약품이 장기추적대상으로 지정될 것이고, 많은 바이오의약품 개발 벤처기업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 데스밸리(death valley)에 정부가 든든한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장기추적조사과정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지원해 첨단재생바이오와 관련된 공공의 이해와 지식 및 데이터를 축적해서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민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는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입장이 흔히 보인다. 이런 논리로는 파트너가 아니라 지원-수혜 관계가 된다. 수십년 전 과거 경제개발단계의 논법이다. 첨단, 바이오, 의료 융합의 과학기술과 산업은 몇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유망 핵심전략 분야다. 우리 모두가 공동 운명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정부는 체계적인 위험을 감당하고 민간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불확실성을 경감시킬 의무가 있다. 과학기술인, 의료인, 산업, 국민이 이러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리드해 나아가야 한다.
<저자 소개>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일본보다 설계와 도입에 6년이 늦었던 이 제도에는 첨단도, 재생도, 바이오도 없는 것 같다. 첨단을 추구하는 과학연구와 기업가정신을 촉발하지도 못하고, 재생 특유의 의료현실도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데이터 기반의 바이오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도 없다.
치료술 없이 어떻게 재생을 하나
첨단재생바이오법 제2조 정의에 따르면 첨단재생의료란 “사람의 신체 구조 또는 기능을 재생, 회복 또는 형성하거나 질병을 치료 또는 예방하기 위하여 인체세포 등을 이용해 실시하는 세포치료, 유전자치료, 조직공학치료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을 말한다. 다만, ‘세포·조직을 생물학적 특성이 유지되는 범위에서 단순분리, 세척, 냉동, 해동 등의 최소한의 조작을 통해 시술하는 것’은 제외하고 있다. 최소한의 조작은 시술에 해당한다고 보며 치료제와 치료술의 범위를 따로 구분하고 있다.
문제는 ‘치료제’와 ‘치료술’에 대한 관련법이 상이하다는 것이다. 효과와 안전성의 평가방법과 절차에도 큰 차이가 생긴다. 치료제는 첨단재생바이오법에 따라 조건부 허가를 받아 임상 적용이 가능하지만 치료술은 ‘의료행위’이니 의료법을 따라야 한다. 따라서 치료술(최소 조작하여 이용하는 연구)에 해당할 경우에는 신의료기술평가 규정에 따라 신의료기술평가를 거쳐야만 임상 적용이 가능하다는 우려인 것이다.
첨단재생의료가 기존 의약품 및 의료기기와 차별되는 점은 살아있는 세포가 주재료로서 복합적인 작용기전을 가지며, 동물실험으로 안전성·유효성 평가가 어렵고, 의료시술과 연관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즉 재생의료는 맞춤형 세포치료제, 생체조직, 바이오장기 개발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되므로 치료제와 치료술의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현 제도하에서는 재생의료를 수행하는 연구자와 의료인에게 혼란을 가중시킬뿐더러 재생의료산업의 비약적인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21 CFR Section 1271.10’에 규정된 ‘인체 세포, 조직 또는 세포 및 조직기반제품(HCT/Ps)’으로 정하고 있다. HCT/Ps 중 최소한의 조작일 경우 임상시험계획(IND) 승인 절차와 생물의약품허가신청(BLA) 절차를 생략하고 임상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HCT/Ps의 분류에 포함된다는 점에서 우리와 제도의 안목이 다르다.
위험의 정도에 규제의 강도가 상응하지 못한다
2016년 법 제정 과정에서 리스크 수준에 따른 임상연구의 규제 차별화가 시도됐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저위험(사람의 생명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잘 알려져 있고 그 위험도가 미미한 임상연구) 연구계획에 대한 심의위원회 심의면제가 빠지면서 임상연구를 위험도에 따라 나눈 것이 무색해졌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2조에서 첨단재생의료 임상연구에 대한 위험도를 3단계로 나누어 정의하고 있으나, 초기 의안 검토과정에서 저위험 임상연구에 대한 첨단재생의료심의위원회 심의 면제조항이 삭제됐다. 시민단체 등의 반대로 위험도가 미미한 연구조차 고위험의 연구와 차별없이 동일한 심의를 받아야 하도록 최종 결론을 낸 것이다. 즉 3단계 모두 일괄적으로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 심의위원회’(보건복지부장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의 공동소속, 이하 심의위원회)에서 심의를 받고, 고위험군 임상연구는 추가적으로 식약처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일본은 2013년 11월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재생의료법)’의 제정과 동시에 ‘의약품·의료기기 등의 품질, 유효성 및 안전성의 확보 등에 관한 법률(이하 의약품의료기기법)’ 개정을 통해 재생의료의 안전성을 확보하고 실용화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자유 진료 및 임상연구 분야를 관리하는 재생의료법에서는 재생의료 리스크에 따라 3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당연히 리스크 수준에 따라 심의 절차가 다르다. 제1종 재생의료는 의료기관이 제공계획을 ‘특정 인정 재생의료 등 위원회’의 심의를 받은 후 후생노동성 대신의 허가를 받아 실시해야 한다.
제2종 재생의료는 제공계획을 심의받은 후 후생노동성 대신에게 제출하고 실시하면 된다. 제3종 재생의료는 제공계획을 ‘인정 재생의료 등 위원회’의 의견을 들은 후 후생노동성 대신에게 제출하고 실시하면 된다. 특히 재생의료법에서는 고위험군인 제1종의 경우 의료기관이 후생노동성 대신에게 계획을 제출하면 후생노동성 대신이 ‘후생과학심의회’의 의견을 들은 후에 허가한다. 즉 일본은 각각의 위험 수준에 맞는 심의 절차를 갖춘 유연한 규제체계를 도입한 것이다. 우리 체계는 6년이나 늦었지만, 여전히 경직되어 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불가능한데 어떻게 첨단을 시도하나?
일본의 의약품의료기기등법(구 약사법)은 재생의료 제품의 특성을 고려해 신속하고 안전하게 실용화를 진행하기 위한 ‘조건부 조기승인제도’를 도입했다. 심각한 질환에 대해 환자 수가 적어 임상 3상 등 임상시험이 어려운 의약품에 대해 유효성이 추정되고 안전성이 확인된다면 승인해주는 것이다. 2015년 9월 환자 본인의 세포를 채취해 협심증을 치료하는 하트시트(HeartSheet)가 처음으로 조건부 조기승인을 받았다.
물론 조건부 조기승인제도에는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가 있다. 즉 조건부 조기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장기적으로 쌓인 임상연구 데이터(Real World Data)가 필요할뿐더러, 조건부 조기승인 후에는 7년 이내에 유효성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며 그렇지 못한 기업은 그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게 된다. 그러나 재생의료 범위의 조건부 조기승인 대상을 사전적으로 제한하지는 않았다. 과감한 시도와 엄정한 책임을 조화시켜놓은 것이다.
우리 법 제37조에서도 신속처리제도를 규정하고 있으며, 신속처리 과정에는 우선심사, 조건부 허가, 맞춤형 심사가 포함된다. 하지만 조건부 허가 대상의 범위가 기존 ‘의약품의 품목허가규정’ 제58조 및 ‘생물학적제제 등의 품목허가 심사규정’ 제41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품목허가대상 범위와 유사해 조건부 허가제도의 정신을 구현하지 못한다. 첨생법 나름대로 촉진하는 조건부 허가의 대상이 사실상 없는 것이다.
바이오의 포인트는 데이터이다
정부가 과학자 및 업체와 함께 장기추적조사에 대하여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첨단재생바이오 정책의 또 다른 핵심은 데이터와 지식에 있다. 정부가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예를 들자면, 장기추적조사제도를 규제나 과중한 부담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하는 적극적인 과정으로 접근할 수 있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30조에 따라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줄기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동물의 조직·세포를 포함하는 첨단바이오의약품, 투여 후 일정 기간 이상사례의 발생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는 첨단바이오의약품에 대해 장기추적조사 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 즉 장기추적조사 대상으로 지정된 의약품은 임상 1상 단계에서부터 장기추적을 실시해야 하며, IND와 별개로 장기추적조사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임상단계에서의 장기추적조사 기간은 제품의 특성에 따라 나뉜다. 줄기세포치료제는 5년 이내, 유전자치료제는 15년 이내, 동물의 조직·세포 등을 포함하는 첨단바이오의약품은 30년 이내이다. 다만 장기추적조사의 경우 기간이 비교적 짧아도 수억대의 비용이 소요된다. 첨단재생바이오법 제21조 제2항에 따르면 정부는 장기추적조사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해 주지만 자세한 지원 비용은 고시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단순 지원이 아닌 정부와 기업 간 공동수행이 필요하다.
이렇게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추적조사를 임상 1상 시험부터 적용하는 것은 바이오의약품을 개발하는 기업에게 부담이 된다는 지적이 많다. 첨단재생의료의 특성상 줄기세포 혹은 동물의 세포를 포함하거나 위해도가 높은 유전자 치료가 다수이므로, 대부분의 의약품이 장기추적대상으로 지정될 것이고, 많은 바이오의약품 개발 벤처기업에게는 과중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이 데스밸리(death valley)에 정부가 든든한 다리를 놓을 수 있다. 장기추적조사과정을 정부가 전면적으로 지원해 첨단재생바이오와 관련된 공공의 이해와 지식 및 데이터를 축적해서 보다 광범위하게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 것이다.
민관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는 정부의 지원을 요구하는 입장이 흔히 보인다. 이런 논리로는 파트너가 아니라 지원-수혜 관계가 된다. 수십년 전 과거 경제개발단계의 논법이다. 첨단, 바이오, 의료 융합의 과학기술과 산업은 몇 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유망 핵심전략 분야다. 우리 모두가 공동 운명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정부는 체계적인 위험을 감당하고 민간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불확실성을 경감시킬 의무가 있다. 과학기술인, 의료인, 산업, 국민이 이러한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리드해 나아가야 한다.
<저자 소개>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서울대 경영학과에서 학사를,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정책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서 사업평가국장으로 근무했고, 대통령직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과 간사위원을 역임했다. 한국규제학회 회장을 지냈으며 행정, 경영, 경제를 두루 섭렵한 석학이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3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