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여 년간 알츠하이머, 루게릭 등 신경 퇴행성 질환의 주요 원인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1992년 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응집이 알츠하이머를 발생시킨다는 ‘아밀로이드 가설’이 나오면서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일라이릴리, 로슈, 존슨앤드존슨 등 다국적 제약사들은 아밀로이드를 표적으로 하는 치료제 개발에 나섰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잇단 치료제 개발 실패로 아밀로이드 가설이 힘을 잃어가고 있는 가운데 신경 퇴행성 질환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제시됐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은 병증이 나타나는 신호 전달 경로에 주목했다. 지금껏 아밀로이드와 같이 병증의 ‘원인 단백질’에 집중해온 연구와는 다른 접근이다. 연구진은 ‘MARK2’라는 효소가 세포의 스트레스 반응을 활성화하는 스위치 역할을 한다고 국제학술지 ‘플로스 바이올로지’ 3월 11일자에 발표했다.

뇌세포의 스트레스 반응은 알츠하이머, 루게릭병 등 신경 퇴행성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여러 종류의 스트레스 가운데 ‘단백질 이상 스트레스’가 뇌질환과 큰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단백질 이상 스트레스는 돌연변이, 노화, 유해 화학물질 노출 등에 의해 단백질의 구조가 변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상황에 놓이면 세포는 주요 단백질의 합성을 감소시킨다. 단백질 이상 스트레스가 장기화되면 세포가 손상을 입고 결국 사멸에 이른다.

이전부터 신호전달물질인 ‘키나아제(인산화효소)’가 이 반응의 핵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여러 종류의 키나아제 중 어떤 키나아제가 이상 단백질을 감지하고, 정상 단백질 생산을 막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연구를 통해 이상 단백질에서 세포 사멸까지 이르는 메커니즘이 일부 밝혀진 것이다.

논문에 따르면 ‘PKC-델타(δ)’라고 불리는 키나아제가 이상 단백질을 감지하는 센서 역할을 한다. PKC-델타가 이상 단백질을 감지해 또 다른 키나아제인 MARK2를 활성화한다. 단백질은 여러 단계를 거쳐 만들어지는데, MARK2는 가장 마지막 단계를 결정하는 신호전달물질이다. 연구를 주도한 지우 왕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번 연구는 단백질의 항상성 조절이 신경 퇴행성 질환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임을 증명한 것”이라며 “뇌질환 병증에 대한 이해를 확장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특히 루게릭병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SOD1’ 유전자 변이가 MARK2를 활성화하는 주요 물질이라고 밝혔다. 루게릭병 환자의 약 10%는 유전적으로 SOD1 돌연변이를 가진다. 연구진은 SOD1 돌연변이를 가진 쥐 모델을 관찰한 결과, 정상 쥐에 비해 활성화된 MARK2 양이 현저하게 증가한 것을 확인했다. SOD1 변이가 PKC-델타에서 MARK2로 이어지는 신호전달 경로를 활성화한 것이다. MARK2가 활성화된 쥐는 운동 뉴런의 기능이 떨어지는 등 루게릭병 증상을 보였다.

왕 교수는 “실제 이 경로가 질병을 치료하는 표적이 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연구를 다양한 뇌질환 모델을 통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지원 기자 j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