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관현악 연주의 진수 보여준 한경필"
문자 그대로 향연(響宴)이었다. 지난 1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의 신춘음악회(사진) 말이다.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지중배 지휘자와 한경필하모닉의 브라스 어벤저스가 관현악 연주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중배는 작년 교향악 축제의 막판에 KBS 교향악단과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차이콥스키를 들려줬는데, 이번에 선보인 레퍼토리는 그보다 더 다채롭고 화려하고 극적이었다.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은 라벨의 편곡으로 빛나는 보석이다. 오페라에 능한 지휘자답게 지중배는 장면의 극적인 전환 때마다 극명한 대비를 보여줬다. 그리고 교묘한 연출력. 깊이를 모를 심연으로 몰고 가다가도 갑자기 숨이 멎을 듯한 충격에 빠트렸다. 기본적으로 거대한 구도와 느릿하고 장중한 템포였지만 갑작스럽게 짧은 호흡으로 끊어내기도 했다. 듣는 입장에선 흥미진진한 어드벤처였지만 연주자 특히 관악주자들의 고통은 도대체 얼마였으랴. 한경필하모닉의 기능적 완벽함과 합주력은 최강이었다.

전람회의 그림은 절친 하르트만의 유작 전시회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서거를 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답게 감정의 진폭이 남다르다. 지중배는 이 거대한 음화(音畵)를 더할 나위 없이 치밀하게 재현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꿈틀거리듯 눈앞에 펼쳐졌다. 금관악기의 활약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기에 스타급 솔리스트를 대거 영입한 기획력이 돋보였다. 서막을 서늘하면서 날카롭게 열어준 김승언의 트럼펫 연주, 고급스러우면서도 풍성하고 따사로운 음색으로 여유 넘치면서도 폭발력을 보여준 유선경의 호른 연주가 좋았다.

연주회의 출발은 신춘의 발랄한 분위기에 안성맞춤인 주페의 ‘경기병’ 서곡이었다. 기본적으로 오페레타의 서곡이기에 짧지만 장면마다 분명한 인상과 그것의 극적인 전환이 포인트인 작품이다. 누구보다 오페라에 능숙한 지중배의 활력 넘치고 교묘한 장면 전환 능력과 묘사력이 빛났다.

한경필의 신춘음악회는 너무나 많은 것을 한자리에서 보여줬다. 연주회의 마지막을 장식한 글링카 오페라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은 또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러시아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난 날렵한 변주였다. 목관악기에 포커스가 잡힌, 상쾌하고 산뜻한 디저트와 같은 연주였다.

이날의 협연자는 연초부터 크고 작은 무대에서 평단의 주목을 받아온 영재 한재민. 초절의 기교와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음울한 정서를 재현해야 하는 첼로 협주곡은 그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분출하는 데 더할 나위 없는 선곡이었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듯한 음색과 날렵하고 공격적인 운지가 인상적이었다. 시적인 우수가 깃들어야 할 느린 악장에서 음미하며 내면의 정서를 자아낼 만한 깊이를 기대했지만 이는 다소 무리였다. 솔리스트와 이중주로 작품을 전개하는 데는 호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노련하고 능란한 한경필의 연주가 젊은이에게 큰 힘이 됐다. 새봄을 우렁차게 시작한 이들의 올해 여정을 기대와 함께 지켜보련다.

김준형 < 음악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