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메모리 경쟁력 세계 1위…더 이상 통하지 않는 상황 올 것
“반도체는 ‘산업의 쌀’을 넘어 ‘국가안보의 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메모리 반도체 부문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사진)는 14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인공지능(AI)에 관한 국가안보위원회(NSCAI)’가 최근 발간한 보고서 얘기부터 꺼냈다. 위원회는 첨단 기술 분야의 강력한 경쟁자로 중국 등을 꼽고 중국과 가까운 대만에서 미국의 핵심 반도체가 생산되는 것에 우려를 표했다. 황 교수는 “미국이 첨단 기기·무기를 구성하는 반도체의 중요성에 주목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본토에서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기 위해 40조원을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의 자국 반도체 육성 정책은 한국에 ‘양날의 검’이 될 것이란 게 황 교수의 전망이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억누르는 건 긍정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미국이 마이크론 등 자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지원을 강화하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큰 위협이 될 것이란 우려도 동시에 나온다. 그는 “‘한국의 메모리 기술력은 세계 1등’이란 전제가 통하지 않는 상황이 올 것”이라며 “미국이 반도체를 국가안보의 중요 요소로 보는 것은 한국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반도체산업 육성 움직임에 대응해야 하는 한국 반도체산업의 현실은 어떨까. “척박하다”는 게 황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정부가 반도체 분야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시작했지만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며 “AI 반도체 분야 지원은 초라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은 NSCAI의 보고서를 접한 이후 300억달러 규모 반도체산업 지원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근 한국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산업 대책은 AI 반도체 지원 1253억원, 시스템 반도체 금융 지원 6500억원에 그친다.

한국 반도체산업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인력난은 심각 단계를 넘어 존립 기반을 위협하는 수준이라는 게 황 교수의 평가다. 그는 “학계에서 길러내는 반도체 우수인력은 대기업 수요의 20%에 불과하다”며 “소재, 장비, 부품 분야는 더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가 설계 관련 경력 직원을 뽑으면서 중소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의 인력난은 더 심화됐다”며 “국내 대학에 대한 지원을 통해 인력 양성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반도체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과 전문인력 양성 지원을 ‘특혜’로 보는 시선은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술이 국가 미래를 좌우하는 시대”라며 “기술과 과학의 영역엔 ‘정치적 잣대’를 들이댈 게 아니라 국제 정세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토대로 경제적인 판단과 대응을 하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