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서 석사 또는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몇 가지 요건을 만족해야 한다. 우선 전공 교과목을 이수해 소정의 학점을 취득해야 하고,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며, 마지막에는 다년간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학위논문에 대한 심사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이 심사과정에서 연구의 목적, 방법, 결과와 결론에 대해 설명하고 나면 심사위원들의 날카로운 질문과 지적이 이어진다.

물론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지도해주신 지도교수도 참석하지만, 질문에 대한 답변은 피심사자인 학생이 독자적으로 해야 한다. 홀로서기의 시작이다. 즉 연구 내용과 학위논문으로서의 적절성에 대한 공격이 시작되면 학생은 그동안 쌓은 지식과 적절한 논리로 적극적인 방어(설명)를 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학위논문 심사를 영어로 ‘defense(방어)’라고 한다. 연구자로서의 인생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일 것이다.

한편 미술이나 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교과과정 중에 수시로 자신이 완성한 작품에 대해 비평을 받고 ‘defense’를 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과목의 담당 교수는 학과 내의 다른 교수를 초청하기도 하고, 그 수업을 같이 듣는 학생들과 함께 비평가로 참여한다. 그야말로 공개 평가다.

작품에는 전문적인 기법이 표현되기도 하지만 창의성이 들어 있기 때문에 보는 이에 따라 호평과 혹평이 갈리기도 하고, 보는 시각이 작가의 의도와 크게 다른 경우도 많다. 분명 본인의 작품에 대한 평가인데 작가 자신에 대한 공격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따라서 화가 나거나 마음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다른 학생의 작품에 대한 심사를 할 때는 보복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의 비판에 조금씩 익숙해지고 다음 작품을 만들 때엔 이런 비판과 시각을 좀 더 의식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마음을 단련하는 좋은 과정이다.

우리나라의 초·중등 교육과정에는 학생의 학업 성과에 대해 이런 ‘교육적’ 공격을 통해 ‘방어력’을 키우는 훈련이 부족하다. 대체로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은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크게 혼나본 적이 없다. 즉 공격을 받아본 경험이 드물고 그만큼 방어력을 키울 기회가 없다. 따라서 성인이 된 이후 남들이 자신의 성과나 행위에 대해 비판적인 지적을 하면 큰 충격을 받거나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받기도 한다. 이를 이겨내지 못하는 경우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전문지식 못지않게 강인한 정신력과 단단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지식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지만 정신력과 단단한 마음은 다양한 경험과 크고 작은 시련을 통해 길러질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의 치열한 토론과 방어는 학습자의 내적 강인함을 길러주는 훈련과정이다. 고등교육은 본래 학습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문교육을 담당해야 하지만, 젊은이들에게 강인한 정신력과 방어력을 키우기 위한 다양한 체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