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근 한양대 교수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박재근 한양대 교수 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
“수천 가지 시스템 반도체를 다 하려고 하지 말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합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사진)은 15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세분화해 육성해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출신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재료공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반도체 전문가다. 삼성전자에 재직하던 1999년 세계 최초로 무결정결함 웨이퍼를 개발하는 성과를 냈다.

박 교수는 우선 대만과 한국의 반도체 산업 환경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 반도체 시장의 73%를 시스템 반도체가 차지하고 있고 제품 가짓수만 수천 개에 달한다”며 “대만은 시스템 반도체 중심으로 산업구조가 짜여 있어 파운드리 1위인 TSMC가 수많은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비중이 커 소량생산 제품까지 맡기엔 무리라는 설명이다.

시스템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려면 ‘한국식 모델’이 필요하다는 게 박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시스템 반도체 시장은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등 고가 대량생산 제품, 디스플레이구동칩(DDI) 등 중간 가격대 대량생산 제품, 아날로그 반도체 등 다품종 소량생산 제품으로 나눌 수 있다”며 “천문학적인 투자비가 들어가는 고가 대량생산 반도체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에 적합하다”고 했다.

기존 메모리 반도체 시설을 활용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미세화 공정을 위해 생산시설을 새로 짓고 있다”며 “이전 공정에 쓰던 시설에서 DDI 등을 제조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게임기 등 소형 정보기술(IT) 기기에 들어가는 반도체는 주로 팹리스와 스타트업이 설계한 뒤 파운드리 업체가 다품종 소량생산한다”며 “한국에도 실리콘밸리와 같은 반도체 스타트업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부도 단순히 연구개발(R&D)을 지원하는 것을 넘어 사업으로 이어지는 기술사업화(R&BD)를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이 같은 육성 방안은 차량용 반도체에도 유효하다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차량용 AP는 대기업이 맡고, MC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 등은 신생 업체들이 담당하는 식으로 분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자율주행차 한 대에 AP만 세 개가 들어가고 전체 반도체는 2000개 이상 쓰인다”며 “자동차 반도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