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홍대거리의 관광특구 지정을 두고 지방자치단체와 지역 상인, 문화·예술인들이 갈등을 겪고 있다. 지자체와 상인들은 특구 지정이 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지만 문화·예술인들은 임대료 상승으로 문화예술 공간이 사라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5년 만에 특구 재추진

15일 서울 마포구에 따르면 구는 서교·상수·합정동 등 홍대지역 1.02㎢ 일대를 관광특구로 지정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시에 특구 지정을 신청했고, 시에서 타당성 용역을 진행 중이다.

특구로 지정되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에서 숙박시설, 상가시설 등에 대한 보조금을 받는다. 차 없는 거리 조성, 옥외영업 제한 완화 등의 혜택도 있다. 서울 내 관광특구는 중구 명동·남대문, 동대문구 패션타운, 용산구 이태원동, 종로구 종로·청계천, 송파구 잠실,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 등 6곳이 있다.

마포구는 2016년에도 특구 지정을 추진했으나 문화·예술인들이 “임대료가 치솟아 명동이나 강남처럼 거리 특색이 사라질 것”이라고 반대해 무산됐다. 구 관계자는 “상권 활성화 목적으로 관광특구 지정을 5년 만에 재추진하게 됐다”며 “특구로 지정되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로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특구 지정이 임대료 상승과 젠트리피케이션을 유발한다는 근거는 없다”고 했다.

문화예술인 “개성 사라질 것”

1990년대 홍대는 소규모 공연장 중심으로 독특한 상권을 조성했다. 인디밴드 힙합 등 서브컬처 문화가 이곳에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최근 라이브클럽과 소규모 공연장은 대부분 클럽, 라운지펍 등으로 바뀌고 있다. 개성 있는 카페와 식당도 홍대거리 중심인 서교동에서 벗어나 연남동, 망원동으로 옮겨갔다.

문화·예술인들은 “코로나19로 집합금지가 이뤄져 문화·예술인들이 설 공간은 더 줄고 있다”며 “특구 지정이 임대료 상승을 부추겨 이 같은 상황을 가속화할 것”이라고 했다.

시민단체와 문화예술인으로 이뤄진 ‘홍대 관광특구 대책회의 준비위원회’는 지난 11~12일 홍대 관광특구 추진에 관한 질의서를 서울시장 후보들에게 전했다. 질의서에는 시민단체 36곳, 문화예술인 200여 명이 참여했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지난해 공연장 절반이 폐업했는데, 구는 관광특구 지정만 추진할 뿐 문화예술인 공간을 어떻게 마련할지 등을 고민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인들은 ‘환영’

상인들은 특구로 지정되면 코로나19로 위축된 상권이 살아날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홍대·합정 상권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8.6%로 전년 동기(5.4%) 대비 3.2%포인트 늘었다.

10년째 서교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A씨는 “코로나19로 한 달 매출이 80% 넘게 줄었다”며 “특구 지정 시 외국인 관광객이 더 올 것이란 기대가 있다”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특구 지정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다만 각종 개발을 추진하기 전에 임차인과 임대인 상생 협약 등을 통해 임대료 상승 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