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두 번 다시 이런 일 일어나지 않게 다짐하는 날 되길"
유족 "저승에서 온 영혼에 묵례…재판부와 검찰에 감사"


70여 년 전 제주4·3사건 당시 억울하게 옥살이한 피해자 335명이 한날에 다 함께 누명을 벗었다.
제주4·3 수형인 335명 한날에 '70여 년 억울함 풀었다'
제주지법 형사2부(장찬수 부장판사)는 16일 국방경비법 위반 및 내란실행 등의 혐의로 억울하게 수감됐던 수형인 335명에 대한 공판을 열고 이들 모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21개 사건으로 나뉘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법정에 오른 피고인은 행방불명 수형인 333명과 생존 수형인 2명으로 대부분 유족이 재판에 참여했다.

재판은 고(故) 박세원 씨 등 4·3 행방불명 수형인 13명에 대한 공판을 시작으로, 재판 1건당 10∼20분씩 진행됐다.

검찰은 공소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재판마다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다.

재판부는 특수한 사항을 고려해 검찰 구형 후 이례적으로 곧바로 모든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날 첫 재판인 2020재고합1호 사건에서 무죄 판결 이후 "국가로서 완전한 정체성을 갖지 못한 시기에 일어난 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 피고인들은 목숨마저 빼앗기고, 그 유족은 연좌제의 굴레에 갇혀 살아왔다"며 "오늘 선고로 피고인들과 유족에게 덧씌워졌던 굴레가 벗겨져 앞으로 마음 편히 둘러앉아 정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또 "우리들도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는 날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제주4·3 수형인 335명 한날에 '70여 년 억울함 풀었다'
유족 대표로 발언권을 얻은 박세원 씨의 아들 박영수 씨는 "오늘 재판을 받기 위해 저승에서 온 330여 명의 영혼에 절을 올리려고 했는데 법원 내에서 절을 올리는 것은 금지라고 해 대신 지금 묵례를 올리겠다"면서 묵례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는 "무죄 판결을 해준 재판부와 무죄 구형을 내려준 검찰에 정말 감사드린다.

가슴이 떨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심경을 표현했다.

이번 재판에서 335명 모두에게 무죄 판결이 나면서 첫 재심 재판이 열린 2019년 이후 지금까지 4·3사건에 휘말려 억울한 옥살이를 한 수형인 371명이 70여 년 만에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게 됐다.

오임종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4·3 수형인의 명예 회복을 위한 실마리를 마련해 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면서 "하지만 아직도 명예 회복을 하지 못한 희생자가 많다.

앞으로도 오늘과 같이 무죄를 선고받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오 회장은 "제주4·3 특별법 전부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앞으로는 4·3 수형인과 유족은 법무부와 협의를 통해 일괄 직권 재심을 하거나 개별 특별재심을 통해 명예 회복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며 "단 한 명도 소외되지 않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 충돌과 군경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양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이 기간 적게는 1만4천 명, 많게는 3만 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에서도 4·3 수형인은 당시 불법 군사재판으로 영문도 모른 채 서대문형무소와 대구·전주·인천 형무소 등 전국 각지로 끌려가 수감된 이들을 말한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수형인명부에는 2천530명의 명단이 올라 있으며, 상당수가 행방불명되거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dragon.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