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분
고두현

아침 출근길에
붐비는 지하철
막히는 도로에서 짜증날 때
20분만 먼저 나섰어도……
날마다 후회하지만
하루에 20분 앞당기는 일이
어디 그리 쉽던가요.

가장 더운 여름날 저녁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과
사람에 쫓기는 자동차들이
노랗게 달궈놓은 길 옆에 앉아
꽃 피는 모습 들여다보면

어스름 달빛에 찾아올
박각시나방 기다리며
봉오리 벙그는 데 17분
꽃잎 활짝 피는 데 3분

날마다 허비한 20분이
달맞이꽃에게는 한 생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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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년에 한 살씩 나이를 먹는다. 1년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그러나 천왕성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84년이나 걸린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감안할 때, 우리의 일생은 천왕성의 1년과 같다.

먼 우주의 행성과 비교하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 길가에 핀 달맞이꽃을 보자. 달맞이꽃에게는 20분이 한 생이다. 우리 인생은 한 번밖에 없다. 연습할 수도, 반복할 수도 없는 일회성의 시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날마다 허둥대며 산다.

마음먹고 하루에 20분만 아껴보자. 사흘이면 1시간, 한 달이면 10시간을 벌 수 있다. 1년이면 120시간이나 된다. 120시간은 온전한 5일이다. 남들이 쓸 수 있는 날은 1년에 365일이지만 내가 활용할 수 있는 날은 370일이나 된다.

날마다 허비하는 시간이 20분뿐일까. 아무 생각 없이 흘려보내는 자투리 시간들이 날마다 2시간은 된다. 그 시간을 유익하게 쓴다면 1년에 한 달을 벌 수 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하루 24시간. 시간을 지배하는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도 지배한다고 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한 시간도 헛되게 보내지 않았다.

시간을 관리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벼락 이론’까지 생겼다. “한 달 후 벼락에 맞아 죽을 운명이라면, 우리는 그 남은 한 달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이 말을 듣고 나면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공부나 일에서도 마찬가지다. 어떤 일을 그냥 열심히 하는 것과 일머리를 알고 효과적으로 하는 것은 다르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는 데도 똑같은 원리를 적용할 수 있다. ‘1년 안에 영어를 마스터하자’는 목표를 잡았다 치자. 기간이 1년이나 되기 때문에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누구나 게으름을 피우게 된다. 그러다 연말이 되면 초조해진다.

이럴 때 전문가들이 권하는 것이 ‘엘리펀트 테크닉’이다. 코끼리처럼 큰 목표는 멀리 있을 때 작아 보이지만, 그걸 한 번에 잡아먹는 건 불가능하다. 오늘 얼마, 내일 얼마, 이런 식으로 매일 조금씩 잘라 가면 마침내 한 마리를 다 먹을 수 있다.

1년에 영어 단어 2400개를 외워야 한다면 기부터 팍 꺾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엘리펀트 테크닉’을 활용하면 하루에 7개만 외우면 된다. 하루 7개면 지하철 안에서도 외울 수 있다. 2400개라는 코끼리를 하루 7개씩 잘라 먹는 방식이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 같아서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다. 그러나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은 달라진다.

러시아 과학자 알렉산드르 알렉산드로비치 류비셰프(1890~1972)는 ‘시간을 정복한 남자’로 불린다. 그는 26세 때부터 죽을 때까지 50년 이상 ‘시간 통계’ 노트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몇 배나 풍요롭게 살았다.

그의 업적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전공인 곤충분류학과 해부학뿐만 아니라 진화론, 수리생물학 등 수많은 분야에서 70여 권의 저서와 100권 분량의 논문을 남겼다. 철학과 과학, 문학, 예술에 대해서도 막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매일 자신이 쓴 시간을 집계하고 분석했다. 일기에다 ‘곤충분류학: 알 수 없는 곤충그림을 두 점 그림(3시간 15분), 어떤 곤충인지 조사함(20분)’ 등의 일과를 꼼꼼하게 적었다.

그는 주어진 시간에 집중하면서 시간의 질과 효율을 높였다. 곤충 채집은 주로 산책 시간에 했다. 잠은 하루 8시간 이상 푹 자고, 산책과 운동을 즐기며, 피로하면 충분히 쉬고, 아이들에게 자상한 아빠 역할까지 하면서도 탁월한 연구 성과를 거뒀다. 시간을 지배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고대 로마 철학자 세네카도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하면서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