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이 사랑한 예술가, 파블로 피카소[김희경의 7과 3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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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한 사람의 이름을 자주 발견하게 됩니다. 너무도 익숙한, 그러나 들을 때마다 감각적이고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인물이죠. 현대 미술의 거장이자 입체파 대표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입니다.
국내에서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장했던 '도라 마르의 초상'이란 작품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피카소가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를 그린 것인데요. 피카소의 많은 연인 시리즈 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1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선 피카소의 ‘창가에 앉은 여인’이 1억3400만 달러(약 1600억 원)에 낙찰됐는데요. 2021년 진행된 경매 중 최고 낙찰가를 자랑합니다. 이 작품을 비롯해 피카소의 그림들은 경매 시장에 나올 때면 매번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합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화가 피카소. 그는 새로운 시선과 감각으로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화폭에 현실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력까지 담아내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죠. 워낙 창조적인 인물이다 보니, 많은 기업인들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피카소를 열렬히 좋아했던 얘기도 잘 알려져 있죠. '아비뇽의 여인들' '게르니카' 등 그의 대표작은 지금까지도 혁신적인 작품들로 꼽힙니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타고난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요. 미술 교사이자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12살이 되던 해, 붓을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을 능가하는 아들의 실력에 감탄하며 그의 교육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피카소는 13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피카소 스스로도 이런 말을 했는데요. "나는 결코 어린 아이처럼 데생을 그리지 않았다. 이미 12살 때 라파엘로만큼 그림을 그렸다."
실력은 유년 시절 이미 어른 예술가들을 뛰어 넘었지만, 그는 평생 어린 아이의 시선을 간직하려 노력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그 본질에 직관적으로 다가갑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 방법을 잊고 자꾸만 복잡한 셈법을 하게 되는데요. 피카소는 이를 경계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피카소의 작품 특색은 시기별로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크게는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흑색 시대, 입체주의 시대로 나눠집니다. 청색 시대(1901~1904년)엔 그의 작품에 초록과 검푸른 색이 주로 사용됐습니다. 이를 통해 노숙자 등 하층민의 참혹한 삶과 고통을 담았죠. 장밋빛 시대(1904~1906년)엔 곡예사, 광대 등을 분홍빛으로 표현했습니다. 색채가 밝아졌다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웃음에만 집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 내면의 깊은 아픔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흑색 시대(1906~1907년)는 그가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시기를 이르는데요. 피카소는 선배 화가이자 경쟁자였던 앙리 마티스가 갖고 있던 아프리카 조각상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를 접목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피카소의 유명한 말은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잡스가 이 얘기를 인용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리고 1907년 마침내 피카소는 '아비뇽의 여인들'로 입체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에서 매춘부들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이들은 발가벗은 채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고 캔버스 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의 얼굴은 왜곡돼 있는데요. 특히 오른쪽 여성들의 얼굴엔 아프리카 조각상과 독특한 기하학적 특성이 결합돼 나타나 있습니다.
더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볼까요. 오른쪽 앞줄의 여성은 등을 보이고 앉아 있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해 있습니다. 맨 왼쪽 여성도 어딘가 이상합니다. 몸은 옆으로 돌아서 있는데, 눈은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피카소가 기존 전통 회화의 문법을 모조리 해체시킨 겁니다. 원근법과 명암법은 회화의 절대 공식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를 전부 무너뜨립니다.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 보지 않고,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의 부분 부분을 다시 합쳐 재구성 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는데요. 그럼에도 피카소는 "창조는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비롯된다"며 입체주의의 길을 당당히 걸었습니다. 표현법은 추상적이지만, 피카소가 그린 것은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늘 현실을 직시하고 통렬한 심정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1937년 그린 '게르니카'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의 참상과 비극을 담고 있는데요. 작품에 전투기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커다란 공포와 절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흑백으로 표현해 죽음의 비통함을 극대화하기도 했죠.
92세에 생을 마감한 피카소는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가 남긴 작품 수는 회화, 조각, 판화 등 총 5만여 점에 달합니다. 피카소가 뛰어 넘은 건 캔버스의 제약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 세상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내고자 했던 열망. 이를 통해 그는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한계까지 넘어섰던 게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국내에서도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소장했던 '도라 마르의 초상'이란 작품이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피카소가 연인이었던 도라 마르를 그린 것인데요. 피카소의 많은 연인 시리즈 중에서도 가치가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1년 영국 크리스티 경매에선 피카소의 ‘창가에 앉은 여인’이 1억3400만 달러(약 1600억 원)에 낙찰됐는데요. 2021년 진행된 경매 중 최고 낙찰가를 자랑합니다. 이 작품을 비롯해 피카소의 그림들은 경매 시장에 나올 때면 매번 치열한 경쟁률을 기록합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고 기억하는 화가 피카소. 그는 새로운 시선과 감각으로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화폭에 현실을 바라보는 깊은 통찰력까지 담아내 20세기 미술사에 한 획을 그었죠. 워낙 창조적인 인물이다 보니, 많은 기업인들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피카소를 열렬히 좋아했던 얘기도 잘 알려져 있죠. '아비뇽의 여인들' '게르니카' 등 그의 대표작은 지금까지도 혁신적인 작품들로 꼽힙니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타고난 천재였던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는데요. 미술 교사이자 미술관 큐레이터였던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12살이 되던 해, 붓을 놓기로 결심했습니다. 자신을 능가하는 아들의 실력에 감탄하며 그의 교육에만 전념하기로 한 것이죠. 그리고 피카소는 13살에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피카소 스스로도 이런 말을 했는데요. "나는 결코 어린 아이처럼 데생을 그리지 않았다. 이미 12살 때 라파엘로만큼 그림을 그렸다."
실력은 유년 시절 이미 어른 예술가들을 뛰어 넘었지만, 그는 평생 어린 아이의 시선을 간직하려 노력했습니다. 어린 아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에 호기심을 갖고 있으며, 그 본질에 직관적으로 다가갑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그 방법을 잊고 자꾸만 복잡한 셈법을 하게 되는데요. 피카소는 이를 경계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예술가다. 다만 문제는 그들이 성장하면서도 여전히 예술가로 남아 있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죠.
피카소의 작품 특색은 시기별로 다르게 나타나는데요. 크게는 청색 시대, 장밋빛 시대, 흑색 시대, 입체주의 시대로 나눠집니다. 청색 시대(1901~1904년)엔 그의 작품에 초록과 검푸른 색이 주로 사용됐습니다. 이를 통해 노숙자 등 하층민의 참혹한 삶과 고통을 담았죠. 장밋빛 시대(1904~1906년)엔 곡예사, 광대 등을 분홍빛으로 표현했습니다. 색채가 밝아졌다고 해서 겉으로 보이는 웃음에만 집중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들 내면의 깊은 아픔에 다가가려 했습니다.
흑색 시대(1906~1907년)는 그가 아프리카 미술에 빠진 시기를 이르는데요. 피카소는 선배 화가이자 경쟁자였던 앙리 마티스가 갖고 있던 아프리카 조각상을 보고 충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를 접목한 작품들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유능한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는 피카소의 유명한 말은 이런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잡스가 이 얘기를 인용해 더욱 화제가 되기도 했죠. 그리고 1907년 마침내 피카소는 '아비뇽의 여인들'로 입체주의 시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피카소는 이 작품에서 매춘부들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이들은 발가벗은 채 도발적인 자세를 취하고 캔버스 밖을 응시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의 얼굴은 왜곡돼 있는데요. 특히 오른쪽 여성들의 얼굴엔 아프리카 조각상과 독특한 기하학적 특성이 결합돼 나타나 있습니다.
더 중요한 특징들을 살펴볼까요. 오른쪽 앞줄의 여성은 등을 보이고 앉아 있지만, 얼굴은 정면을 향해 있습니다. 맨 왼쪽 여성도 어딘가 이상합니다. 몸은 옆으로 돌아서 있는데, 눈은 정면을 보고 있습니다. 피카소가 기존 전통 회화의 문법을 모조리 해체시킨 겁니다. 원근법과 명암법은 회화의 절대 공식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를 전부 무너뜨립니다. 하나의 시점으로 대상을 보지 않고, 다양한 시점에서 바라본 대상의 부분 부분을 다시 합쳐 재구성 했습니다. 결국 이 작품은 엄청난 혹평에 시달렸는데요. 그럼에도 피카소는 "창조는 모든 행위는 파괴에서 비롯된다"며 입체주의의 길을 당당히 걸었습니다. 표현법은 추상적이지만, 피카소가 그린 것은 현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늘 현실을 직시하고 통렬한 심정으로 화폭에 담았습니다. 1937년 그린 '게르니카'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내전의 참상과 비극을 담고 있는데요. 작품에 전투기 같은 것들은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표정에서 커다란 공포와 절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를 흑백으로 표현해 죽음의 비통함을 극대화하기도 했죠.
92세에 생을 마감한 피카소는 죽기 12시간 전까지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그가 남긴 작품 수는 회화, 조각, 판화 등 총 5만여 점에 달합니다. 피카소가 뛰어 넘은 건 캔버스의 제약만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으로 세상의 모습을 끝까지 담아내고자 했던 열망. 이를 통해 그는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한계까지 넘어섰던 게 아닐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