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정을 걷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정을 걷고 있다. 사진=뉴스1
현 정부 들어 주 40시간 이상 근무하는 ‘풀타임(전일제) 일자리’가 195만개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주 40시간 미만 단시간 근로자는 213만명 폭증했다. 근로시간을 반영한 고용 지표인 ‘풀타임 환산 고용률(FTE 고용률)’은 2018년 역대 최저로 떨어져 이후로도 매년 하락하고 있다. 정부가 일주일 15시간 남짓 일하는 재정일자리를 대거 늘린 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강제적 근로시간 단축'이 확산된 영향이다.

전체 취업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등 고용 지표가 겉으로는 양호해 보이지만, 세부 상황을 들여다보면 고용 시장이 곪을대로 곪았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강제 워라벨'로 단시간 근로자만 양산

21일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실이 통계청 고용동향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당 근로시간 40시간 이상 근로자는 2017년 2084만명에서 작년 1889만명으로, 3년새 195만명 감소했다. 주 40시간 이상 근로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풀타임 근로자 기준이다. 주 5일 기준 하루 8시간 일하는 ‘온전한 일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주 40시간 미만 근로자는 2017~2020년 213만명 늘었다. 이 덕분에 전체 취업자는 18만명 증가했지만, 온전한 일자리는 대거 사라지고 고용의 질이 크게 나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2017년 4년간은 주 40시간 이상 근로자가 214만명 늘고, 주 40시간 미만 근로자는 72만명 줄었던 것과 대비된다.

15세 이상 기준 ‘풀타임 환산 고용률(FTE)’도 2017년 65.1%, 2018년 63.0%, 2019년 62.0%, 작년 58.6% 등 급격한 하락세다. 3년새 6.5%포인트 떨어졌다.

FTE 고용률은 주 40시간 일한 것을 ‘취업자 1명분’으로 보고 산출한 ‘근로시간 반영 고용률’로, OECD 공식 통계다. ‘고용률 x 주당실제근로시간/40시간’으로 계산한다. 20시간 일하면 0.5명, 80시간 일하면 2명으로 친다. 1주일에 1시간을 일해도 취업자 1명으로 치는 일반 고용률의 한계를 보완한 것이다. 실제 근로시간을 반영하지 않는 일반 고용률은 2017년 60.8%, 2018년 60.7%, 2019년 60.9%, 작년 60.1% 등 하락폭이 적은 편이다.

FTE 고용률은 2010~2017년엔 66.5%에서 65.1%로, 1.4%포인트 내려가는 데 그쳤다. 최근 3년간의 고용 악화가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코로나19 핑계를 대기도 어려운 것이 2018년(63.0%)에 이미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전 최저 기록은 2013년의 64.4%다. 15세 이상 취업자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도 2017년 42.8시간에서 작년 39.0시간으로 떨어졌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자연스러운 근로시간 단축이 아닌 재정일자리 확대와 노동 규제 강화, 경기 침체가 만들어낸 ‘강제 워라벨’”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영국 등은 풀타임 근로자 증가하는데

정부는 FTE 고용률 하락은 근로시간 단축 등 시대적 흐름에 따른 자연스러운 것이며, 세계 주요국도 마찬가지라고 주장한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작년 “세계적으로 경제 규모와 고용 환경이 변화하면서 단시간 일자리는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작년 10월 FTE 고용률 하락을 들어 고용 악화가 심각하다고 주장한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을 향해 “가짜뉴스로 국민을 호도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국제기준인 15~64세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FTE 고용률은 2017년 64.2%에서 2019년 65.5%로 상승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67.5% → 68.9%, 영국은 68.4% → 69.3%로 개선됐다. 유 의원은 “2010년대들어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과도한 근로시간 단축 정책이 고용의 질을 악화시켰다는 반성이 커지면서 최근 들어선 풀타임 근로자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했다.

반면 2017~2019년 한국의 15~64세 FTE 고용률은 72.3%에서 69.0%로, 3.3%포인트 떨어졌다. OECD 35개국 중 하락폭이 가장 컸다. 2019년 기준 영국(69.3%), 스웨덴(69.5%) 등에 역전당했다.

"세금일자리 대거 늘려 '통계 분식'"

전문가들은 현 정부 들어 단시간 근로자만 늘어나고 고용의 질이 크게 악화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진단한다. △정부 재정일자리(직접일자리) 공급 확대 △최저임금 급등으로 '강제적 근로시간 단축' 확산 △경기 침체로 양질의 민간 일자리 부족 등이다.

직접일자리 확대는 전체 취업자 수를 늘려 고용 시장이 양호한 것처럼 보이게 착각하게 한 주범으로 꼽힌다. 직접일자리는 정부가 취약계층에게 세금으로 인건비를 지급해 만든 단시간 계약직 일자리다. 대부분 계약기간은 1년 미만, 근로시간은 주 30시간 미만이다. 교통 안내, 쓰레기 줍기, 방역 활동 도우미 등 일을 한다. 노인 대상 사업이 많아 직접일자리와 노인일자리가 동의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정부는 이런 직접일자리 공급량을 본예산 기준 2017년 61만7000개에서 지난해 94만5000개로 늘렸다. 작년엔 추가경정예산으로도 최소 30만개 이상이 추가 공급됐다. 이를 합치면 작년 공급량은 최소 124만개에 이른다. 3년새 60만개 이상 불어난 것이다. 2011~2017년엔 6년간 증가량이 14만5000개에 그친 점을 감안하면 폭증 수준이다.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취약계층은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해도 직접일자리 공급량이 너무 많아 세금으로 ‘통계 분식’을 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국회예산정책처도 작년 6월 '2020년도 제3회 추가경정예산안 분석' 보고서에서 "직접일자리 확대 물량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근로시간 쪼개기 만연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강제적 근로시간 단축으로 단시간 근로자 증가에 기여했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2018년 16.4%, 2019년 10.9% 올렸다. 2018년 인상률은 역대 최대였다. 인건비 부담이 커진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주휴수당이라도 아껴보려 직원의 근로시간을 줄이는 시도가 확산됐다.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는 주휴수당을 안 줘도 되기 때문이다. 2019년 1월 소상공인연합회 설문조사 결과 소상공인의 77.2%가 “주휴수당 미지급을 위해 주 15시간 미만으로 근로시간을 줄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중소 경비·청소업체 등 사이에선 인건비 부담을 못 이기고 직원을 아예 해고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여기에 2019년부터 본격화한 경기 침체까지 겹쳐 취업난이 더욱 가중됐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정부 들어 청년의 단시간 근로 시장 유입이 크게 늘었다”며 “경기 침체 등으로 민간 정규직 일자리 시장이 얼어붙어 ‘아르바이트라도 하자’는 청년이 늘어난 탓”이라고 말했다. 실제 20대의 FTE 고용률은 2017년 59.2%에서 2019년 56.8%, 작년 52.5%까지 하락했다. 이는 20대 미취업자가 늘었음은 물론, 그나마 취업한 사람도 단시간 근로자가 크게 증가했음을 뜻한다. 30대의 FTE 고용률도 2017년 81.8%에서 작년 76.1%로 낮아졌다. "정부의 고용 정책 실패로 청년의 타격이 특히 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최모씨(31)는 "2019년초 졸업 이후 40개가 넘는 회사에 지원서를 썼지만 모두 탈락했다"며 "3년째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병행하고 있는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