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 피팅모델 기용 잦은 국산 브랜드에 소비자 불만

백인 여성. 173㎝. 착용 사이즈 S.
국내 한 패션 브랜드 웹사이트의 청바지 상세 페이지에 등장하는 여성 피팅 모델 정보다.

모델이 입은 청바지는 발목을 덮는 기장에 적당한 핏(fit·맺음새)으로 잘 어울렸다.

그러나 인터넷에서 같은 옷을 사려던 국내 소비자들은 구매 버튼을 누르기 전 멈칫하게 된다.

키가 훤칠한 백인 모델이 청바지를 입은 모습은 멋있어 보였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바지가 길지 않을지, 핏은 적절할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 패션, 화장품 브랜드가 한국 소비자와 체형이나 피부색이 다른 서양인 모델을 주로 기용하는 것을 지적하는 누리꾼이 늘어나고 있다.

서양인 피팅 모델 사진으로는 대다수 국내 소비자가 옷 기장이나 핏을 예측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 "뭘 보고 사야 할지"…도움 안 되는 '모델 샷'에 소비자 불만
누리꾼 지적 대상이 된 국내 A 패션 브랜드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신장 170㎝ 이상 서양 여성들을 피팅 모델로 내세우고 있다.

남성 피팅 모델도 185㎝를 넘는 서양 모델들이다.

모델 신장은 2019년 기준 한국 여성과 남성 평균 신장 약 161㎝, 173㎝보다 각각 10㎝가량 크다.

서양인과 동양인은 신장뿐 아니라 체형도 다르다.

동양인은 서양인에 비해 비교적 넓은 골반과 짧은 하체, 긴 허리를 갖고 있어 같은 옷을 입어도 상당히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국내 B 화장품 브랜드도 현재 서양인 모델만 기용하고 있다.

상품 상세 사진을 살펴보면 대다수 국내 소비자에 비해 하얀 피부와 깊은 아이홀, 짙은 쌍꺼풀을 가진 모델들 모습만 확인할 수 있다.

누리꾼들은 국내 브랜드들이 대다수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 채 피팅 모델을 선정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 익명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쇼핑할 때 모델 사진을 보는 것은 감성적이고 멋진 화보를 구경하려는 것이 아니라 옷을 입었을 때 어느 정도 길이인지, 어떤 핏인지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키가 크고 기본 체형이 전혀 다른 모델 사진으로는 내가 이 옷을 입었을 때 어떻게 보일지 예측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모델 사진 속 화장품 색감이 내 피부에는 절대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며 "색조 화장품은 색상이 가장 중요한데 무엇을 보고 사라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모델과 피부색이 달라 색조 화장품의 실제 발색이 다르고, 안면 골격 차이로 동일한 제품을 사용해도 음영 감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 전문가 "한국 모델 늘리고 정보 제공 강화해야"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브랜드가 추구하는 콘셉트와 상품을 매력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서양인 모델을 활용한다고 해명했다.

옷을 입었을 때 일반적으로 핏이 좋아 보이는 서양인 모델을 더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A 패션 브랜드 관계자는 "아메리칸 캐주얼을 표방하는 브랜드 콘셉트에 맞춰 서양인 모델을 기용하고 있다"며 "상품에 따라 한국인 모델 사진도 적절히 활용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B 화장품 브랜드 관계자는 "상품별로 콘셉트에 맞는 모델을 선정하는 것"이라며 "국내 소비자를 위해 정확한 발색 차트를 제공하고 국내 인플루언서와 협업을 활발하게 진행해 상품 이해를 돕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판매하는 브랜드라면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국내 모델 활용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득이하게 서양인 모델을 활용한 경우 실측 사이즈 등을 상세하게 제공해 구매자들이 맞지 않는 상품을 반품하는 번거로움을 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은 모델 사진을 보고 옷을 판단해 구매한다"며 "구매 욕구를 자극하기 위해 이른바 '핏이 좋은' 서양인 모델을 통해 옷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교수는 "그렇지만 상품을 판매할 때는 (상품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실측 사이즈를 제시한다면 옷을 펼쳐서 쟀는지, 마네킹에 입히고 쟀는지 구체적으로 표기하거나 모델 사진과 실제는 다를 수 있다고 명시하는 등 장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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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