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처럼"…오세훈-안철수 '단일화 핑퐁게임'의 속내 [홍영식의 정치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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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적합도, 유선전화 포함 여부 놓고
두 후보 '양보 게임' 벌이면서도 막판까지 '으르렁'
2002년 대선 때 '통큰 양보'로 판세 뒤집은
노무현 후보 만큼 효과 얻지 못을 듯
두 후보 '양보 게임' 벌이면서도 막판까지 '으르렁'
2002년 대선 때 '통큰 양보'로 판세 뒤집은
노무현 후보 만큼 효과 얻지 못을 듯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서울시장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은 엎치락 뒤치락하는 시소게임의 연속이었다. 후보 등록 시한(3월 19일)까지 단일화하겠다는 1차 마지노선이 무너진 이후 더욱 그랬다. 그 과정에서 보기드문 현상은 ‘양보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서로 상대가 100% 양보하겠다고 하면 “그게 양보냐. 내가 진짜 양보하겠다”고 ‘양보 핑퐁게임’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식이다.
처음 양측이 맞선 것은 여론조사 문항 문구를 놓고서였다. 오 후보는 ‘적합도’를, 안 후보는 ‘경쟁력’을 고수했다. 오 후보는 이 부분을 양보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 경선에서 오 후보가 승리하면서 보수 표 결집이 이뤄졌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파문에 확산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면서다. 오 후보는 박영선 후보와의 경쟁력에서도 밀리지 않게 되자 양보를 해도 괜찮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에서 유선전화 10%, 무선전화 90%로 섞어서 하자고 한 반면 안 후보는 무선전화만을 고수했다. 고령층 보유 비중이 높은 유선전화를 포함하면 오 후보에, 무선전화로만 조사한다면 안 후보에 유리하다고 여겨지면서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고, 협상은 깨졌다.
그러다가 안 후보는 지난 1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의 단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유선전화 10%를 포함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오 후보는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고 “(안 후보의 약속과 달리) 국민의당 협상팀은 경쟁력을 받겠다고 하면서 적합도는 사라져버렸고, 유무선 비율도 협상하겠다고 해 (우리 안을) 받은 게 아니다”며 “혼란만 가중했다”고 비판했다.
단일화 협상이 핑퐁게임을 지속하자 국민의힘 내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정권 심판을 바라는 시민들의 애타는 목소리에 부응하고, 정권교체의 희망을 살리는 것이 ‘공생과 대도의 길’”이라며 “23일까지 단일화를 하라”고 압박했다. 이재오·김무성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서울시장 야권후보 단일화는 시대적 소명이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데 대해 심각한 분노를 느낀다”며 역시 오 후보와 안 후보를 압박했다. 이에 두 후보는 19일 밤 직접 만나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25일 전에 단일화를 끝내자는 데 합의하면서 다시 협상의 물꼬를 텄다. 양측은 20일 경쟁력과 적합도를 조사해 합산하는 단일화 규칙에 합의했다.
서로 ‘양보 힘겨루기’를 한 것은 책임 회피성 차원으로만 볼 수 없다. 단일화라는 대의명분에는 두 사람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정치적 운명은 물론 소속 정당의 명운도 걸려 있는 문제다. 국민의힘으로선 제1야당이 주요 선거에 후보가 없는 상황이 되면 당의 존재감 상실로 인한 정치적 타격이 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안 후보를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이 탄력을 받으면 자칫 당이 해체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안 후보에게 단일화 전 당에 먼저 들어오라고 요구한 것도 그래서다. 안 후보로선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하면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의원 3석의 국민의당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문구 하나 하나 갖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이유다.
‘양보’경쟁을 한 이면엔 ‘내가 좀 더 대범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전략’도 숨어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 간 단일화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다. 당시에도 노 후보 측은 ‘적합도’를, 정 후보 측은 ‘경쟁력’을 문구에 포함하자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막판 노 후보가 양보를 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지던 노 후보는 이 양보로 오히려 역전의 계기를 잡았다. 노 후보가 막판 양보를 한 것이 국민들에게 ‘통 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이게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판을 뒤집고 본선에서도 승리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당 안팎의 많은 분들로부터 여론조사 문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노 후보와 같이 통 큰 양보를 통해 대범한 후보임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는 조언들을 많이 들었다”며 “오 후보도 그런 교훈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도 “안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벌인)단일화 실패 교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며 “이번엔 대범한 양보를 통해서라도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양보 경쟁에 뛰어든데다 그나마 막판까지 으르렁 거리면서 노 후보 만큼 ‘양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처음 양측이 맞선 것은 여론조사 문항 문구를 놓고서였다. 오 후보는 ‘적합도’를, 안 후보는 ‘경쟁력’을 고수했다. 오 후보는 이 부분을 양보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내 경선에서 오 후보가 승리하면서 보수 표 결집이 이뤄졌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땅 투기 파문에 확산되면서 국민의힘 지지율이 오르면서다. 오 후보는 박영선 후보와의 경쟁력에서도 밀리지 않게 되자 양보를 해도 괜찮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오 후보는 여론조사 방식에서 유선전화 10%, 무선전화 90%로 섞어서 하자고 한 반면 안 후보는 무선전화만을 고수했다. 고령층 보유 비중이 높은 유선전화를 포함하면 오 후보에, 무선전화로만 조사한다면 안 후보에 유리하다고 여겨지면서 양측은 팽팽하게 맞섰고, 협상은 깨졌다.
그러다가 안 후보는 지난 19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의힘의 단일화 요구를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유선전화 10%를 포함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요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이에 오 후보는 오후 1시 기자회견을 열고 “(안 후보의 약속과 달리) 국민의당 협상팀은 경쟁력을 받겠다고 하면서 적합도는 사라져버렸고, 유무선 비율도 협상하겠다고 해 (우리 안을) 받은 게 아니다”며 “혼란만 가중했다”고 비판했다.
단일화 협상이 핑퐁게임을 지속하자 국민의힘 내에서 거센 비판이 나왔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정권 심판을 바라는 시민들의 애타는 목소리에 부응하고, 정권교체의 희망을 살리는 것이 ‘공생과 대도의 길’”이라며 “23일까지 단일화를 하라”고 압박했다. 이재오·김무성 전 의원,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서울시장 야권후보 단일화는 시대적 소명이다. 야권후보 단일화가 무산된 데 대해 심각한 분노를 느낀다”며 역시 오 후보와 안 후보를 압박했다. 이에 두 후보는 19일 밤 직접 만나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인 25일 전에 단일화를 끝내자는 데 합의하면서 다시 협상의 물꼬를 텄다. 양측은 20일 경쟁력과 적합도를 조사해 합산하는 단일화 규칙에 합의했다.
서로 ‘양보 힘겨루기’를 한 것은 책임 회피성 차원으로만 볼 수 없다. 단일화라는 대의명분에는 두 사람 모두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정치적 운명은 물론 소속 정당의 명운도 걸려 있는 문제다. 국민의힘으로선 제1야당이 주요 선거에 후보가 없는 상황이 되면 당의 존재감 상실로 인한 정치적 타격이 크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안 후보를 중심으로 한 제3지대론이 탄력을 받으면 자칫 당이 해체국면을 맞을 수도 있다. 안 후보에게 단일화 전 당에 먼저 들어오라고 요구한 것도 그래서다. 안 후보로선 단일화 경선에서 탈락하면 그가 대표를 맡고 있는 의원 3석의 국민의당 존립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문구 하나 하나 갖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인 이유다.
‘양보’경쟁을 한 이면엔 ‘내가 좀 더 대범한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전략’도 숨어있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와 정몽준 국민통합21 대선 후보 간 단일화에서 교훈을 얻은 것이다. 당시에도 노 후보 측은 ‘적합도’를, 정 후보 측은 ‘경쟁력’을 문구에 포함하자고 주장하며 팽팽하게 맞섰다. 막판 노 후보가 양보를 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경쟁할 단일후보로서 노무현, 정몽준 후보 가운데 누구를 지지하십니까’라는 문구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 뒤지던 노 후보는 이 양보로 오히려 역전의 계기를 잡았다. 노 후보가 막판 양보를 한 것이 국민들에게 ‘통 큰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줬고, 이게 단일화 여론조사 경선에서 판을 뒤집고 본선에서도 승리하는 원동력이 됐다는 것이 당시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오 후보 측 관계자는 “당 안팎의 많은 분들로부터 여론조사 문구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노 후보와 같이 통 큰 양보를 통해 대범한 후보임을 보여주는 게 오히려 유리하다는 조언들을 많이 들었다”며 “오 후보도 그런 교훈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안 후보 측 관계자도 “안 후보는 2012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와 벌인)단일화 실패 교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다”며 “이번엔 대범한 양보를 통해서라도 아름다운 단일화를 이뤄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양보 경쟁에 뛰어든데다 그나마 막판까지 으르렁 거리면서 노 후보 만큼 ‘양보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