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제왕적 대통령제가 낳은 '윤석열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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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보다 인물을 중시하는 大選
현실 타파할 비정치권 기대주란
'구세주 열망' 피할 수 없어
대통령제 권력구조 그냥 둔다면
'또 다른 윤석열' 계속 나올 것
김인영 <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현실 타파할 비정치권 기대주란
'구세주 열망' 피할 수 없어
대통령제 권력구조 그냥 둔다면
'또 다른 윤석열' 계속 나올 것
김인영 <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
정작 본인은 정치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대선 적합도 여론조사 1~2위다. 정치 전문기자, 칼럼니스트, 심지어 일반인까지 그가 가야 할 정치 행보를 이구동성으로 제안하고 있다. 가히 ‘윤석열 현상’이다.
제안을 보면 ‘당신은 대통령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되니’ ‘정치하지 마시라’는 협박성 주문과 야권을 통합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 달라’는 읍소로 양분된다. ‘정치하지 말라’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선주자로 띄웠기 때문에 지지율은 거품이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또 정치 세력도 없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경제와 외교에 대한 식견이 없음도 문제시한다. 반대로 ‘정치에 나서 달라’는 요청은 정치를 선언하지 않아도 고공 지지율인데 목소리를 내고 중도·보수세력을 규합하면 지지율은 더 높아질 것이므로 대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셈법에 기초한다.
하지만 지지율 상승론은 혹독한 검증 과정에서 지지율 추락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 거품론은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데 1년이면 충분하며 그가 대학 시절 이후 쌓은 폭넓은 경제와 외교 상식을 인정하지 않은 결함이 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공정과 법치의 아이콘이 됐다는 사실도 애써 외면한다.
그러면 윤석열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정몽준,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현상’이 반복돼 나타나는 구조적 이유는 뭘까? 우리는 ‘윤석열 현상’을 만들어 내는 한국 정치의 본질적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원인은 대통령제와 대통령 선거의 특질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선 선거가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 개인에 대한 지지로 치러지기 때문에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비정치권 기대주가 주목받게 된다. 따라서 정치학자 강원택의 주장처럼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한 대통령에 투영된 ‘구세주(savior) 열망’은 피할 수 없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구세주 열망’의 결과였다. 미 중서부와 북동부의 제조업이 몰락한 러스트벨트(rust belt)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보호 무역주의와 반이민 정책을 주장한 트럼프는 지역을 구할 구세주였다. 또 박근혜 하야 촛불시위에 나타난 ‘나라를 바로 세워줄’ ‘구세주 열망’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였다. 그 열망이 허망으로 끝난 지금 국민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또 다른 영웅 출현의 기대감을 투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현실정치 타파 필요성 메시지를 내놓을수록, 또 정권의 핍박이 커질수록 적합도가 수직 상승한다.
하지만 대통령제와 달리 내각제에서는 홀연히 나타난 카리스마의 기대주가 ‘별의 순간’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혁명》이라는 책을 내며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이 독일 내각제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연방의회 선거에 당선된 지 15년 만에 총리가 됐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의회에 진출한 지 14년 만에, 일본의 아베 신조는 의원이 된 지 13년 만에 총리가 됐다. 내각제에서는 총리가 되기 위해서 먼저 당의 리더가 돼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되돌아볼 때 윤석열 현상은 밀어냄과 당김이라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여당은 윤석열에게 ‘검찰 쿠데타’의 프레임을 씌워 징계하고 사퇴를 강요했고, ‘검수완박’으로 검찰 해체를 허용한 검찰총장이란 불명예를 씌우는 순간에 그는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로 내몰린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 대적할 만한 대선 주자가 없는 보수·중도는 지지율 정체로부터 구원해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이유로 윤석열을 강하게 당기고 있다. 결국 ‘윤석열 현상’은 대통령제 선거제도의 부산물임이 본질이다.
‘예측 가능한 정치’라는 측면에서 5년마다 ‘윤석열급’ 의외의 인물이 다시 나오는 현상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현상의 재발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제 권력 구조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내각제냐 대통령제냐의 선택은 국민의 몫이고 국민은 압도적으로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또 5년 뒤 다른 윤석열의 등장이 숙명처럼 느껴진다.
제안을 보면 ‘당신은 대통령이 될 수도 돼서도 안 되니’ ‘정치하지 마시라’는 협박성 주문과 야권을 통합해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 달라’는 읍소로 양분된다. ‘정치하지 말라’는 주장은 ‘문재인 정부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선주자로 띄웠기 때문에 지지율은 거품이라는 추정에 근거한다. 또 정치 세력도 없고 지도자가 가져야 할 경제와 외교에 대한 식견이 없음도 문제시한다. 반대로 ‘정치에 나서 달라’는 요청은 정치를 선언하지 않아도 고공 지지율인데 목소리를 내고 중도·보수세력을 규합하면 지지율은 더 높아질 것이므로 대선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셈법에 기초한다.
하지만 지지율 상승론은 혹독한 검증 과정에서 지지율 추락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 또 거품론은 지지 세력을 결집하는 데 1년이면 충분하며 그가 대학 시절 이후 쌓은 폭넓은 경제와 외교 상식을 인정하지 않은 결함이 있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로 공정과 법치의 아이콘이 됐다는 사실도 애써 외면한다.
그러면 윤석열 현상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 정몽준, 안철수, 반기문, 윤석열 ‘현상’이 반복돼 나타나는 구조적 이유는 뭘까? 우리는 ‘윤석열 현상’을 만들어 내는 한국 정치의 본질적 문제점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
원인은 대통령제와 대통령 선거의 특질 때문이다. 대통령제에선 선거가 정당에 대한 지지보다 개인에 대한 지지로 치러지기 때문에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비정치권 기대주가 주목받게 된다. 따라서 정치학자 강원택의 주장처럼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한 대통령에 투영된 ‘구세주(savior) 열망’은 피할 수 없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구세주 열망’의 결과였다. 미 중서부와 북동부의 제조업이 몰락한 러스트벨트(rust belt) 지역의 노동자들에게 보호 무역주의와 반이민 정책을 주장한 트럼프는 지역을 구할 구세주였다. 또 박근혜 하야 촛불시위에 나타난 ‘나라를 바로 세워줄’ ‘구세주 열망’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였다. 그 열망이 허망으로 끝난 지금 국민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 또 다른 영웅 출현의 기대감을 투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그가 현실정치 타파 필요성 메시지를 내놓을수록, 또 정권의 핍박이 커질수록 적합도가 수직 상승한다.
하지만 대통령제와 달리 내각제에서는 홀연히 나타난 카리스마의 기대주가 ‘별의 순간’을 잡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이 《혁명》이라는 책을 내며 39세의 나이로 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일이 독일 내각제에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은 연방의회 선거에 당선된 지 15년 만에 총리가 됐고, 영국의 토니 블레어는 의회에 진출한 지 14년 만에, 일본의 아베 신조는 의원이 된 지 13년 만에 총리가 됐다. 내각제에서는 총리가 되기 위해서 먼저 당의 리더가 돼야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되돌아볼 때 윤석열 현상은 밀어냄과 당김이라는 두 가지 설명이 가능하다. 여당은 윤석열에게 ‘검찰 쿠데타’의 프레임을 씌워 징계하고 사퇴를 강요했고, ‘검수완박’으로 검찰 해체를 허용한 검찰총장이란 불명예를 씌우는 순간에 그는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로 내몰린 것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에 대적할 만한 대선 주자가 없는 보수·중도는 지지율 정체로부터 구원해줄 인물이 필요했고 그 이유로 윤석열을 강하게 당기고 있다. 결국 ‘윤석열 현상’은 대통령제 선거제도의 부산물임이 본질이다.
‘예측 가능한 정치’라는 측면에서 5년마다 ‘윤석열급’ 의외의 인물이 다시 나오는 현상이 바람직한지 의문이다. 하지만 윤석열 현상의 재발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제 권력 구조를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내각제냐 대통령제냐의 선택은 국민의 몫이고 국민은 압도적으로 대통령제를 선호한다. 또 5년 뒤 다른 윤석열의 등장이 숙명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