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로부터:

지난 주에 많은 비가 오더니 어제부터는 왠지 가을의 냄새가 느껴지고 있습니다. 출근한 사람들의 옷차림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거 같구요. 세월의 흐름 앞에서는 무더운 삼복 더위도, 매서운 동장군의 추위도 머리를 숙이고 물러가야 하는 것 같네요. 휴가는 잘 다녀오셨나요.

8월 18일자 서울신문에 실렸던 본인의 칼럼을 이 곳으로 옮겨 봅니다. 선진국의 휴가와 우리나라의 휴가는 그 의미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휴가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


기업의 해외영업직종에서 근무하는 사람 중에서 유럽 시장 담당자라면 여름은 비수기이다. 7월초에 시작된 유럽의 여름 휴가가 8월말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 기간 중에는 아무리 급한 사안으로 바이어에게 전화를 걸어도 “ 난 여름 휴가 중이니 9월 초에 다시 전화해 주시기 바랍니다 ” 라는 음성 메시지만을 듣기 일쑤다.



현지로 출장을 가서 바이어측의 담당자를 만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급한 결정을 뒤로 미룰 수도 없는 상황에 봉착하면 아주 난감해질 때도 많다. 긴박하게 진행되던 일을 한 순간에 내던지고 휴가를 떠나버리는 그들이 야속하기도 하고 참 책임감이 없는 사람들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휴가 기간 중에 자신의 업무가 잘못되지는 않을 지 걱정하고 같은 부서의 동료에게 업무를 철저하게 인계하고 떠나는 우리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어서 더 그렇다.



짧게는 4주, 길게는 8주까지 계속되는 유럽의 여름휴가는 우리에게는 실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사회적 생산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너무 긴 휴가는 우리의 실정에 맞지 않을 수 있지만 평소 하지 못했던 일을 하거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이라면 가보고 싶었던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 것만으로도 단순한 부러움의 단계를 넘어 동경까지 하게 된다.



유럽의 휴가는 그야말로 recreation의 진정한 의미를 구현한다. 휴가를 통해 일년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고 스스로를 ‘재탄생’ 시키는 계기를 만든다. 하던 일손을 놓고 일상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휴가를 의미하는 vacation이라는 단어는 어떤 것으로부터 해방되다 라는 뜻인 vacate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자신을 옭아 매었던 어떤 것에서 해방된 것과 같이 자유스러움을 느끼는 것이 휴식이고 휴가이다. 모든 것에서 해방되어 관조적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면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들도 의외로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



2년 전 태국의 휴양지에서 만났던 아일랜드 친구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 난 이 곳에서만 벌써 3주간 체류 중인데 내가 읽고 싶었던 책을 다섯 권째 읽고 있어요. 앞으로 세 권을 더 읽고 귀국하려고 해요 ” 휴양지에 가면 의례적으로 먹고 마시고 노래 부르는 우리의 모습과 비교할 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휴가기간의 길고 짧음을 논하기 전에 휴가라는 것을 단순히 즐기는 것이 아닌 자기를 계발하는 재충전의 기회로 생각한다는 사실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우리나라도 예전과는 달리 건전한 휴가문화가 정착되어가고 있지만 유럽의 그것에 비하면 아직도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휴가를 여유 있게 쉬면서 재충전한다는 의미보다는 향락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많다. 노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휴가가 끝날 때 즈음이면 몸과 마음이 휴가 전보다 더 지쳐서 돌아오는 경우도 있고, 철저한 사전 계획을 세우지 못해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휴식을 취하려면 세밀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올림픽의 열기가 한창인 요즈음 이미 휴가를 마치고 일상의 업무로 되돌아 온 사람들도 꽤 있다. 어떤 사람의 얼굴에는 예전에 볼 수 없었던 생기가 가득한 반면, 또 다른 사람의 얼굴에는 휴가를 떠나기 전과 다름없이 일에 찌든 모든 그대로이다. 똑같이 주어진 휴가를 사용하고도 이렇게 많은 차이를 나타내는 것을 보면 일년에 한번 밖에 주어지지 않는 여름 휴가를 실속 있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사회 생활의 경쟁력을 갖추는 일과 다름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