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하루 열리는 동네 알뜰장에서는 생선, 야채, 과일, 반찬 등 먹을거리를 주로 판다. 좌판 사이를 걷고 있던 중에 생선판매원과 물건을 사러온 주부 사이의 대화에 관심이 끌렸다.

주 부 : “어! 오늘은 왠 일이야 생대구도 다 있고, 근데 한 마리만 남은 거예요?”
판매원 : “예, 오늘 열 마리 갖고 왔는데 금방 다 팔리고 그거만 남았네요.”
주 부 : “이거 싸주세요, 거봐요 싱싱하고 큰 것 가져오니까 금방 팔리죠.”
판매원 : “그러게 말이 예요.”
주 부 : “이 동네 한두 번 오는 것도 아닌데, 가느다란 냉동갈치 같은 것 가져와서 만원에
네 마리 판들 누가 사간다고요. 만원에 두 마리를 팔더라도 싱싱하고 먹음직스러우면
사가지요.”
판매원 : “맞아요, 하여튼 우리 사장님은 변화를 두려워 한다니까요.”
주 부 : “엄마들이 원하는 것을 가져와야 잘 팔리지요.”

나는 두 사람간의 대화에 중요한 경영원리와 교훈이 담겨있음을 알았다. 즉 구멍가게라도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제공」해야 하고, 소비자는 「지불하는 금액 이상의 가치」를 원한다는 것을 새삼 곱씹어보게 되었다. 특히 판매원이 “우리 사장님은 변화를 두려워 한다”는 말이 경이로웠다.

내가 보았던 그 상황을 아내에게 확인해 보니, 대체로 알뜰장터에 가져오는 생선들은 잘고 가늘기 때문에 손질하가 쉽지 않아서 싸지만 사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것들을 종합해 보니 그동안 알뜰장터에서는 주부들 마음에 드는 생선을 제공하지 못했고, 그럼으로 인해 생선코너에서는 매상이 오르지 않으므로 사장은 생선코너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일주일 후에 다시 열린 알뜰장터를 관심 있게 봤던 아내의 말은 다음과 같다. “오늘 가져온 생선 중에서 생태가 크고 먹음직스러워서 금방 팔렸고, 다른 생선들의 신선도가 좋아진 것 같다”는 것이다. 종업원이 걱정했던 대로 사장님은 재고로 남을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무릅쓰고 팔릴만한 생선으로 교체시키는 변화를 실천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겠다.

생선을 사는 주부들은 단순히 생선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저녁식단」을 사는 것이다. 따라서 알뜰장터 사장은 단순히 생선을 파는 것이 아닌, 가족을 위한 「좋은 식단」을 팔아야 한다. 그러므로 안 팔릴까 봐 걱정되어 싱싱한 생선을 떼어 오지 않고, 질이 안 좋은 생선만 떼어 온다면 주부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원리는 생선가게 판매원도 다 알고 있다. 그런 변화의 필요성을 직장인들은 얼마나 실천하며 사는지 생각해 봐야겠다. 새로운 변화의 시도는 크건 작건 간에 언제나 실패라는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라서 모두가 꺼려하는 것이다. 특히 실패에 대한 책임을 두려워하는 분위기에서는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흔치 않게 되며, 평상시에 해오던 업무에서 모순이 발견된다 하더라도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지 않게 된다. 또 업무를 개선하려고 아이디어를 내 놓았을 때, 책임질 사람이 누구인가부터 따진다면 모두들 변화를 거부하고 변화에 소극적이게 된다.

혁신의 가장 큰 장애는 고정관념이라도 한다. 대체로 직장인들은 어제 했던 일을 오늘도 반복하는 경향이 크며, 새로운 시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변화를 억제시킨다. 변화는 익숙한 것을 포기하는 아픔과 두려움, 또 새롭고 서툰 것을 익히는 고통이 따르기 때문에 저항이 상존한다. 그렇다고 변화는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창조성의 시대’에서 살아남고 당당히 세상과 겨룰 수 있기 위해서는 창의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새로운 상품, 새로운 시장, 새로운 기술을 끊임없이 모색하기 위해서는 일상에서의 작은 변화부터 시도해보는 것이 창의력 발휘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큰 변화가 두렵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자. 마치 알뜰장터 사장처럼 싱싱한 생대구, 생태를 떼어 오니 금방 팔렸듯이, 작은 것부터 행동으로 실천해 보는 것이다.

외국 속담에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변명이 보인다’고 했다. 하찮고 작은 일에서도 새로운 것을 모색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 지혜가 생긴다.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에서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면, 그건 내가 게으르고 나태했고 또 변화를 두려워 했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