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과 11월에는 가을축제가 많이 열린다. 그 중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국악의 본고장에서 열린 ‘소리축제’들이었다. 그 뿌리를 남원, 구례, 순창 등 섬진강 동쪽 지역에 둔 동편제 축제였다.

남원과 구례를 끼고 있는 지리산 서북능의 깊은 계곡에는 그곳에서 ‘목을 틔운’ 국창(國唱)과 명창(名唱)들의 수련 사연을 새긴 바윗돌을 볼 수 있고, 철쭉으로 유명한 바래봉 아래에는 신라시대에 이르는 맥의 원천을 기념한 ‘국악의 성지’가 있다.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의 배경 지역으로써 뿌리 깊은 고장이기에 국립국악원, 국악방송국 등 국악과 소리문화의 인프라와 컨텐츠도 풍부한 곳이다. 주기적인 공연은 물론이고 우리 소리를 가르치는 교육기관도 여러 개가 있으며, 국악단이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공연도 하고 있다.

이렇게 귀중한 우리 것을 알리는데 있어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다름 아닌 외국인 관객에 대한 배려가 약하다는 점이다. 필자는 지난 가을 남원의 흥부전축제와 구례의 소리축제에 네델란드에서 온 한 가족을 안내했었다. 손님들이 지극히 한국적인 것을 보고 싶어 했으므로 우리의 이야기, 우리의 집, 우리의 건축술, 우리의 놀이들을 품고 있는 광한루공원을 돌아보고 남원과 구례를 오고가며 창극을 안내했다.

손님들은 멋진 오페라요 뮤지컬이라며 극찬했으나 뭔가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그것은 가슴을 절이는 애절함이나 가슴이 뻥 뚤릴 박장대소의 흥겨움을 함께할 노랫말의 전달이 안 되기 때문이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뿐 마음으로 느낄 수 없었던 것 같다. 즉 가사전달의 매개체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중국 베이징의 建國호텔에서는 경극(京劇)이 상시 공연되고 있다. 필자도 그곳에서 손오공이 등장하는 서유기를 관람할 기회가 있었는데, 친절하게도 무대 옆 큰 스크린에서는 일본어, 영어로 동시에 소개되는 자막이 시종 흘러주었다. 서유기(西遊記)는 어느 정도의 줄거리를 아는데다 극 전체의 빠른 전개와 스피드 있는 배우들의 행동은 지루함을 느낄 수 없게 했다. 게다가 수시로 자막을 보며 배우들의 꼬부라지는 가성도 어떤 뜻인지를 알 수 있게 해준 것에서 감흥도를 더욱 높일 수 있었다. 대사를 주요 외국어로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하여 실시간 흘려주는 배려 덕분이었다.

이에 비교할 때 우리의 취약점은 크다. 빠른 전개와 무대 위를 뛰고 달리는 경극과 달리 창극은 전개속도가 느리고 출연자가 부르는 노래의 가사를 일반인들은 거의 알아들을 수도 없다. 오직 전체적인 스토리를 알고 있으므로 감으로만 ‘지금 어느 대목을 노래하는구나’ 정도이다. 한국 사람이 이 정도라면 외국인은 더 지루하고 노랫말에서 얻는 감흥은 없고 배우의 표정만 보고 감을 잡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서양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고 동양에는 성춘향과 이도령이 있다”는 말로 우리 것의 세계화를 부르짖지만 뭔가 2%부족하다면 세계화를 이룰 수 없다. 전체적인 흐름뿐만 아니라 중요한 대목대목의 노랫말 전달에도 신경을 써주는 배려가 더해진다면 좋지 않을까?

판소리와 창극의 본고장에 자리 잡고 있는 전용극장에서 마져도 노랫말의 의미를 전달할 번역된 가사와 전달할 도구를 갖추고 있지 못한 현실은 아쉽다. 세계화를 위한 경쟁력의 한 요소를 하루빨리 보강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