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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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오세영 시 2월 중에서),
시인의 말대로 새해를 맞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2월이 가버렸다. 새해에는 소중한 일들을 계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다짐했었지만 제대로 이룬 것이 없다. 자연은 추위 속에서 매화꽃을 피우는 훌륭한 일을 했지만 나는 1, 2월에 한 일이 별로 없다. 게으름 탓이다. 반면에 아내는 많은 일을 했다.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던 아내가 “2월은 잃어버린 달”이라고 아쉬운듯 말했다. 설 명절치레와 집 계약 갱신, 새내기 직장인이 된 아들 제금내기 등 아내의 손이 닿지 않으면 안 될 일이 유난히 많은 2월이었다.
아내의 독백에는 집안의 잡다한 일을 치다꺼리를 하다 보니 자신에게 투자한 시간이 별로 없었다는 아쉬움과 함께, 한편으로는 분주하게 움직인 탓에 어느 정도 일을 정리했다는 안도감이 함께 섞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에 추어탕에 소주 한잔하러 가자고 집 밖으로 같이 나오긴 했지만 아내의 아쉬운 마음을 전환시켜주지는 못한 것 같다.
아내가 집안일을 처리하느라고 자신의 일은 모두 미뤘고, 자기를 위해 쓸 시간도 갖지 못한 50대 중년의 아쉬운 심정이 “2월은 잃어버린 달”이었다고 느낀 것 같다.
그런 아내에 비해 나는 2월에 무엇을 했나? 실상 별로 한일이 없다. 연초에는 몇년 전 출간된 책의 개정판을 내기 위해 늦어도 2월까지는 교정을 마무리 해서 출판사에 넘기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루지 못했다. 게으름 탓이다. “소중한 일을 먼저하라”는 성공습관을 가르치는 한 사람으로써 제 앞가림도 제대로 못한 자신이 부끄럽다.
‘하루에 새벽이 두 번 없고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좋은 때를 잃지 말아야 한다(一日難再晨 歲月不待人 及時當勉勵)’고 했는데 나는 2월을 결실 없이 보낸 것이다. 게으름을 피우고 산 결과이다.
사람들은 핑계를 잘 찾고 그것으로 책임을 회피하거나 위안을 삼으려는 경향을 갖는다. 나도 2월에 하고자 마음먹었던 일을 제대로 못해서 무언가 핑계거리를 찾아 게으름을 합리화해보려는 못된 마음까지 들었었다.
핑계가 있든 없든, 내가 2월에 했어야 할 숙제가 없어지지 않았다. 그 숙제는 3월로 미뤄져서 내가 3월에 짊어질 짐이 더 크고 무거워진 것이다. 게으름을 피운 당연한 결과이다.
아내는 2월을 집안을 위해 생산적으로 잃어버렸지만 나는 소중한 나의 주체성을 소중하지 않은 일로 잃어버린 2월이었다. 크게 반성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