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춘삼월이라 찬바람은 물러가고 훈풍이 도심의 빌딩숲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봄기운만 도래한 것이 아니라 총선과 새 정부의 내각인선으로 분주한 정치의 계절이기도 하다. 유비무환은 마음을 훈훈하고 여유롭게 만든다. 인생을 멋있게 살고 비즈니스도 잘 하려면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니 가끔 엉뚱한 상상을 펼쳐본다. 돈도 들지 않고 나름대로 빈 시간을 소화할 수 있어서 좋다.




세상의 대세에서 정치가 하한가를 맞이하면 정치에 대한 상상이 내면에서 올라오기 시작한다. 어린 새싹들에게 미래의 꿈을 물어보면 간혹 대통령이란 소릴 듣는다. 바로 ‘내가 만약 대통령이라면’으로 시작하는 상상이다. 집으로 향하는 경춘선 기차에서 문득 대통령이란 단어가 다시 떠올랐다.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응시하다 이내 잡히는 생각이 있다. ‘사람들을 편안하게 하면 좋겠다.’ 그럼 내각인선은? 주변에 훌륭한 지인도 있고 재야에 평판이 좋은 분들도 많으니 가려 쓰면 되겠군. 그 들을 설득할 기준은 이렇다. ‘당대와 특히 후대에도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소릴 듣고 싶은가.’




정치신인들의 면면을 바라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평범하게 살면 드러나지 않을 치부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도 그렇고 현재 직함보다 낮은 보수를 받는 분들이 많을 텐데 썩 현명한 판단 같지 않아 보인다. 최근 정치 행보를 바라보면 대한민국이라는 공간에 국민들을 가둬두고 정부와 기업이 합심으로 이런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다. “꼼짝 마. 다 내꺼야.” 그래서 마음이 편치 않다.




‘김대리 CEO되기’ 칼럼을 연재한지 1년이 되었다. 이 칼럼의 효용성에서 필자 위치가 나름대로 의미 있는 것은 여러분보다 반보 정도 앞서 나아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너무 유명한 분이나 연배가 높은 분은 ‘김대리’ 감각을 회복하기 쉽지 않다. 직장문화도 두루 경험했고 ‘CEO되기’의 좋은 모델을 만들기 위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여러분과의 간극이 넓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5년 사이 필자의 꿈 여정에 대한 주요 터닝 포인트를 들려드린다.




2000년에 약 10년간 재직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벤처기업에 입사했다. 이 후 몇 개의 업체를 더 거치게 된다. 스스로 미래를 내다볼 수 없으니 이런 경험들이 약이 되고 개똥이 되는지 여부는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에 달려있다. 꿈을 놓고 살면 고귀한 경험들이 파편이 되어 사라지고, 꿈의 불씨를 살려 활활 타오르도록 노력하면 과거의 모든 경험이 꿈에 복종하게 된다.




시간이 약이 될 수도 있다. 첫 직장에서 동료들이 술안주로 회사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표현할 때는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벤처기업으로 자리를 옮기고 난 후 대기업에서 배우고 젖은 시스템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다. 당시 현장에서는 느낄 수 없던 일이다. 이렇듯 현재 위치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미래의 연결고리가 어떻게 과거와 연결될 지 알 수 없으므로 희망의 꿈을 놓아서는 안 된다. 필자에게 고생 많았던 15년 직장생활 경험은 미래의 보물창고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거친 세상에 나와 가장 먼저 품었던 꿈은 칼럼니스트였다. 워낙 책을 좋아했고 그 동안 나름대로 습작을 한 경험이 있어 도전하고 싶은 꿈이었다. 제일 먼저 진행한 작업은 개인명함을 만들고 거기에 버젓이 칼럼니스트라고 명기한 일이다. 아직 정식 데뷔도 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후 만나는 사람마다 명함을 나눠주었다. 이것이 필자가 꿈을 이루는 방식 중의 하나다. 성격이 낙천적이고 생각과 실천의 시간차가 매우 넓은 성격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이렇게 대국민 선포라는 극약처방을 하지 않으면 안됐다. 이런 식으로 미래의 꿈을 앞 당겨 현실에 투영하면 양심이 자극을 받아 몸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위 지인들도 필자의 소망이 무엇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기 때문에 도움 줄 여건이나 상황이 되면 손을 내밀게 된다. 주변에 내 꿈에 대해서 얘기하지 않으면 타인이 도와 줄 힘이 있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어느 날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언론사에 근무하는 지인의 연락을 받았다. “이 곳에 칼럼 한 번 써보지. 제목은 뭐로 할 까.” 이렇게 해서 칼럼니스트로서 첫 발을 내딛게 되었다.




칼럼니스트 데뷔시기는 30대의 후반이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도전테마가 시작되는데 ‘나이 마흔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 사실 이 목표는 처음부터 세부적인 실천과제 같은 것을 염두 해 둔 것이 아닌 접대용의 인사성 멘트였다. 말만 무성했지 실천은 없었다. 그리고 직장인이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홀로 광야의 길을 가는 결심이 쉬운 일인가?




시간이 흘러 바야흐로 말의 성찬이 양치기 소년이 될 시기가 다가오니 불안하기 시작했다. 원래 말 많은 사람 싫어하고, 언행일치를 모토로 살아왔는데 자신을 배반하면 되겠는가 라는 생각이 마음의 심층에서 올라왔다. 진지한 고민과 더불어 조금씩 준비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 타인을 이롭게 하고 장기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란 창업기준을 가지고 몰입하게 되었다.




드디어 마흔 나이의 봄에 사무실 개소와 사업자등록을 하고 세상에 다시 뛰어 들었다. 내성적인 성격의 필자가 이렇게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용기’가 준 힘이었다. 머릿속에서 우주를 날아다녀도 몸이 움직이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한다. 이제 3년이 지났고 그래서 여러분보다 반보 앞이다.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현재 직장인들의 자기계발을 위한 매체를 만드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돈 되는 일은 아니다. 필자의 셈법은 좀 독특하다. 지금까지 직장인들을 위한 강연회 등 행사를 5년간 꾸준히 진행해 왔다. 봉사로 한 일이니 돈을 만지지 못한 행사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행사가 만약 천 만 원의 가치가 있고 그 돈이 하늘의 선한금고에 저금되어 있다면, 언젠가는 다시 현실의 ‘캐시백’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세상의 통장에 선명하게 찍한 숫자는 빈약하지만, 하늘의 선물 캐시백을 생각하면 큰 부자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봄의 기운처럼 마음도 훈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