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인생에도 낭비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실업자가 10년 동안 무엇 하나 하는 일 없이 낚시로 소일했다고 치자. 그 10년이 낭비였는지 아닌지, 그것은 10년 후에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낚시를 하면서 반드시 무엇인가 느낀 것이 있을 것이다. 실업자 생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견뎌 나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내면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헛되게 세월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무엇인가 남는 것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헛되게 세월을 보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 훗날 소중한 체험으로 그것을 살려 가느냐에 있다.”
– 이병철, 삼성 창업자


이병철은 <호암자전>에서 ‘사업의 전기’를 이렇게 밝힌다.

“사람은 일생을 통해 몇 번은 전기를 맞게 마련이다. 스스로 그것을 만드는 때도 있지만 느닷없이 찾아 올 때도 있다. 그 느닷없이 찾아오는 전기를 어느 날 맞이하게 되었다. 그날도 골패노름을 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밝은 달빛이 창 너머로 방 안에 스며들고 있었다. 그 때 나이 26세. 이미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 있었다. 달빛을 안고 평화롭게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문득 악몽에서 깨어난 듯한 심정이 되었다. 잠자리에 들긴 했으나 그날 밤은 한잠도 이룰 수 없었다. 온갖 상념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리고 뜻을 굳힌 것이 사업이었다. 사업에 투신하자는 결단은 오랫동안 생각한 결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순간적인 작심이라고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결심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결과적으로 큰 전환점이 되었다. 삼성그룹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 삼성은 한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이다. 그러나 그 태동은 자식을 양육하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었다. 고요히 잠든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을 바라보면서 충만된 비장함이 사업의 전기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 남는 것이 있는 법. 그래서 역사는 움직이는 자의 몫인가?

* 이병철(1910~1987) 삼성 창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