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너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나는 너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김종태


너에게 아무런 사연이 없이
나는 나대로
나에게 어떤 의미도 없이
너는 너대로
당연한 것처럼 우리들은
홀로 가고 있다
홀로 가는 너를 붙들고
나는 너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

나의 말 한 마디에
너의 모든 운명이 달려 있는
잃어버린 임금이 되고 싶다

따뜻한 둥 도닥임 한 차례에
너의 서러움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잃어버린 아버지가 되고 싶다

이팝나무 열매를 밤새 갈고 파내
삼백 예순 다섯 알의 목걸이를 걸어 주고
잃어버린 애인이 되고 싶다

너의 말이라면
틀린 줄 알면서도 맞장구 쳐주는
잃어버린 친구가 되고 싶다

지나칠 때마다 빙긋이 웃고
측백나무로 담을 낸
있으면 미덥고 없으면 허전한
잃어버린 이웃이라도 되고 싶다

아무렴
홀로 가는 따로따로 보다는
조금은 밑지는 것 같아도
어우러지며 함께 갈
나는 너의 무엇이라도 되고 싶다